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에 핀 꽃 한송이 Nov 24. 2023

사람이 오는 풍경

소소한 일상 에세이

무더운 여름 오후였다.

나무 울바자가 서로 어깨를 겯고 든든히 버티고 선 울타리 앞에 옆집 할아버지와 반질반질한 큰 돌멩이에 나란히 앉아 나무꼬챙이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는데 낯선 할머니가 내게 다가왔다.

“아유, 예뻐라!”

치마를 입은 할머니는 얼굴도 갸루상처럼 하앴고 몸에서는 코를 찌르는 분냄새가 감돌았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내게 엿 하나를 내밀며 한발짝 다가온 할머니의 발이 내 그림을 밟았다. 할머니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달달한 엿을 넙죽 받아 입안에 홀랑 까넣고는 다시 그림기에 집중하려는데 할아버지가 옆에서 말했다. 고맙다고 해야지. 엿을 녹이며 고맙뜹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더니 할머니가 이내 아유,예뻐라, 손녀인가요 하며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내 입안에 엿이 녹기 전에 할머니는 내게 엿 하나를 또 꺼냈고 나는 고맙뜹니다, 엿을 받아 먹고 할머니는 아유,예뻐라를 반복하며 끝까지 내 그림을 밟은 발을 뒤로 빼지 않았다. 나는 그 할머니가 갈때까지 손에 녹아 진득하게 붙어난 엿을 계속 받아먹으며 그린 그림을 지우고 다른 그림을 그리기를 네 번이나 반복했다. 이듬해 할아버지가 다른 할머니와 재혼하고 나서 내 그림을 밟고 서서 엿만 자꾸 건네 주던 그 할머니의 분냄새가 문득 떠올랐다. 낯설고 싫었던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어느 사이 엿처럼 녹아내린게 신기해서 나는 한동안 엿을 먹을 때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때부터 어슴푸레 알게 된 한가지가 있다. 사람은 풍경처럼 모두 다른 감상으로 내 앞에 문득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가 시작이었다.

동급생이지만 별로 친하지 않은데 주말마다 내 책장 속 이야기책을 보러 왔던 아이는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책을 좋아하는 척 했고, 아빠 친구의 딸로 우리 집에 왔다가 말없이 나란히 앉아 그림만 그리고 갔던 아이는 훗날 나의 펜팔 친구가 되어 주었으며, 전날 아빠와 함께 밖에서 술 마시고 늦게 돌아온 남편 몸에서 다른 여자 분 냄새가 난다며 정말 술만 마셨는지 따지러 우리 집까지 한낮에 찾아와 통곡하던 아빠 동료의 아내는 사실 엄마에게 말 못한 아픈 사연을 터놓고 싶어했다. 점심 도시락으로 엄마가 싸준 부침개를 나눠 먹은 친구가 집에서 그 맛 그대로의 부침개를 만들어달라고 조른다며 간식 한꾸러미를 들고 와 수줍게 레시피를 물어보고 가던 친구 엄마는 사실 자신의 딸이 친하게 지내는 아이의 엄마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잠깐 일상에 걸어들어왔다. 그들에겐 내게 불쑥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각 자의 사정이 있었고 나는 그 사정들을 대개는 반겼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크없이 벌컥벌컥 문을 열고 내 공간에 들아왔는지, 그래서 내 유년시절은 꽤 즐거웠다.

어른이 되고 나서 사람이 찾아오는 풍경은 퍽이나 단조로워졌다. 그들은 대부분 어떠한 직업군이였다. 택배 아저씨거나 외식 배달원일 때가 가장 많았는데 그마저도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 문자 알림과 노크로 내가 주문한 물품이나 음식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보일러가 고장나 집에 방문했거나 에어컨을 설치해주는 기사 아저씨나 급하게 탄 택시를 운전하는 아저씨나 그들은 모두 생계의 일환으로 일시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위해 잠깐 같은 공간에 존재했다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들에겐 각자가 보여주는 풍경이 있었다. 그것이 삶에 고단한 자의 꿉꿉한 기분이든, 사소한것에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땀을 흘려가며 원상태로 기능을 돌려놓으려는 책임감과 꼼꼼함이였든, 그들은 부지중에 당신의 고유한 풍경을 보여주고 사라졌다.

바다를 보고 산을 보는 것도 힐링이지만 애초에 사람이 풍경이였다. 오늘의 만남을 위해 우리는 각자 정자였던 시절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생명 레이스에서 성공했다는 사뭇 진지하고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내가 오늘 처음 만난 당신에게 풍경이라고 생각하면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기억을 남길지 잠깐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예고없이 불쑥 나타난 풍경이였다고 해도 다시 머리를 돌려 보고 싶을만큼 특별하고 싶고 ,익숙한 풍경이라면 그리워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길을 걷다 보면 언제나 양 옆에는 풍경이 있다. 그건 도시 풍경의 한 조각일수도 있고 사람 사는 풍경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 풍경이 조금이라도 더 눈을 돌리고 싶을만큼 좋았다면 누군가는 길을 걷다가 이유없이 가분이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거나, 나올때 울적하게 만들었던 고민을 잠시 잊고 표정이 한결 편안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인의 핸드폰 속에 저장해두었다가 호출하면 언제든 목소리가 들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 되고 싶고 만나게 되면 두 눈을 반짝이며 어제 알았던 그와 오늘 알았던 그가 어떻게 다른지 틀린 그림 맞추기를 하듯 미세한 변화를 찾아내고 그 변화에 함께 감탄하고 기뻐하거나 놀라워하고 궁금해할 것이다.  좋은 풍경이 되려고 노력하는 한편 그 또한 내게 풍경임으로 고유한 그의 매력과 흔들림을 나는 잠잠히 보고 있으리라. 날 빤히 쳐다보는 그의 눈빛,미세하게 자주 바뀌는 표정, 자주 고르는 숨과 작은 손가락의 움직임이 오늘은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하는지 보다 보면 나는 어느새 어제와는 또 다른 그를 알아가고 이해하게 되겠지.


우리 그렇게 서로에게 풍경이 되자.

작가의 이전글 검정 양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