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안트베르펜 미술관
벨기에 안트베르펜 미술관은 루벤스와 브뤼허 같은 유명한 플랑드르 화가들의 작품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점은 이곳의 참신한 기획이었다.
먼저 아래 작품들을 보자.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간 예수를 땅으로 내려 애도하는 장면은 중세시대 이전부터 그림과 조각으로 만들어져 온 도상이다. 첫 번째 작품은 루벤스의 작업실에서 주문제작된 3단 제단화인데, 환하게 빛나는 예수의 몸과 마리아의 핏기 없는 표정이 슬픔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앤소니 반 다이크의 <죽은 예수를 위한 애도>는 예수의 수척한 몸을 통해 그가 견뎌낸 고통과 희생을 전달한다.
아래 작품은 미국의 사진작가 낸 골딘(Nan Goldin, 1953~)이 1990년대에 발표한 '에이즈 (AIDS)'시리즈 중 하나이다.
올해 일흔둘인 낸 골딘은, 성소수자로 살아온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그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으로 기록하고 발표해 왔다.
오늘날 미국은 사랑의 다양성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나라이지만, 이 사진이 발표된 1990년대는 미국 역시 에이즈를 마치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 받아야 할 벌처럼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런 사회적 낙인 때문에 치료약 개발은 늦어졌고, 환자들은 제때에 치료받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낸 골딘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친구이자 게이 커플인 '질과 가스초(Gilles and Gotscho)'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 성소수자들의 사랑과 존엄을 기록했다.
이 삼단 제단화 중앙에는, 십자가에 높이 매달린 예수와 그 아래에서 실신한 마리아가 있다. 그녀를 부축하고 제자 요한과 마리아 막달레나의 모습도 보인다.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니, 미술관 천장에 닿을 듯한 높이의 기둥이 우뚝 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꼭대기에는 벌거벗은 채 매달린 몸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제단화 속 십자가가 그림 밖으로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 작품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가족들로부터 격리되어 외롭게 죽어가던 환자들과 그들의 곁을 지킨 사람들을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이 작품들은 삶과 사랑과 죽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옆에 걸린 작품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연인에게 입 맞추는 '가스초(Gotscho)'는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제단화 속 '마리아'를 다시 보게 만들었고, 실신한 마리아 위에 내려진 예수의 몸 위로 수척한 '질(Gilles)'의 팔이 겹쳐 보였다.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 전시를 보고 나오며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편견과 낙인으로 죽음을 방조하고 잇지는 않은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병든 노인과 장애인, 그리고 성소수자들은 우리 시대 대표적인 소외 계층이다.
타인의 삶에 찬성하거나 반대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권장해야 할 삶의 방식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타인의 고통에 눈감는 일에 익숙한 삶의 '정상성'을 묻게 하는 것이 이 전시의 가치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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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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