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뤼헐의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읽기
매미소리가 자지러질 듯 이어지는 여름의 끝이다. 매미는 일주일 남짓 나무에 붙어 울고 나서는 낙엽 지듯 툭 떨어지고 만다. 나는 시장을 다녀오다가 발에 차이는 곤충을 툭 걷어차고는 집에 들어와 에어컨 바람 아래 땀을 식히고 저녁을 준비한다. 7년 동안 땅 밑에서 몸을 바꿔가며 나무에 기어오른 매미의 죽음에는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내 머릿속엔 저녁에 먹을 오이냉국과 제육볶음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고 벌을 받지도 않는다.
매미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 비정한 세상이지만 정작 매미는 아무런 불평도 불만도 없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다음 해엔 또 새로운 매미들이 나무에 기어올라 울어젖힌다. 세상은 이런 무심함 속에 끊임없이 생겨나고 이어진다. 내가 세상에 쉬지 않고 내어놓는 것이라고는 무심함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내 불운과 불행이 풍선처럼 커져 보일 땐 세상을 향해 원망과 후회를 쏟아놓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슬그머니 화가 잦아진다.
피터 브뤼허가 그린 <이카루스의 추락>은 무심함 속에 굴러가는 세상사를 잘 보여준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물과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한 솜씨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신화를 일상 풍경 속에 능청스럽게 녹여낸 그의 서사 능력이 감탄을 자아낸다.
그림 안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들어 있다.
소가 끄는 쟁기를 붙들고 밭을 가는 농부는 땅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일에 몰두한다. 왼편 둔덕에 놓인 그의 허리띠는 그가 얼마나 집중해서 농사를 짓는지 보여준다. 그 아래에는 풀밭에 양 떼를 풀어놓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목동이 있다. 어쩌면 그는 이카루스가 바다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뿐이다. 언덕을 따라 시선을 좀 더 아래로 옮기면 바다를 향해 손을 뻗은 낚시꾼의 뒷모습이 보인다. 모두들 자기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풀을 뜯는 양들도, 나무에 앉은 매도, 밭을 가는 소도 마찬가지다.
그럼 그림의 주인공 '이카루스'는 어디에 있을까.
이카루스 신화는 인간의 교만을 경고하는 이야기로 자주 인용된다.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무시한 채 하늘 높이 날아오른 그는, 결국 바다로 추락하고 만다.
살려달라는 절박한 비명은 파도소리에 잠긴 채, 사방에서 그를 삼키려는 물고기 떼가 달려들었을지도 모를 순간이다. 그래도 농부는 밭을 갈고, 목동은 하늘을 쳐다보며, 낚시꾼의 눈은 물고기만 쫓고 있다.
브뤼허는 바다에 고꾸라져 허우적대는 이카루스의 다리와 그 주변에 흩날리는 깃털로 개인의 비극에 무심한 세상의 단면을 포착해내고 있다.
누군가에겐 절체절명의 순간도 다른 사람들에겐 평범한 일상이 흐르는 시간일 뿐이고, 반대로 나에겐 평범한 하루이지만 누군가에겐 목숨이 걸린 시간이기도 하다는 걸 우린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경험한다.
언젠가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일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적잖은 충격과 허탈함을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무관심 속에서 내 불행은 거품이 꺼지고,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해내면서 다시 한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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