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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래 Oct 31. 2021

치킨과 주공아파트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의무를 지닌 이들에게


오래전부터 꿈꾸던 아빠의 모습그대로, 퇴근길 저녁 치킨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아파트로 빽빽한 신도시의 한산한 인도에서 한사람이 서성이고 있었다.  서성인다기보다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고 보아야 맞을 것 같다. 바삐 집으로 향하는데 남자가 말을 걸어 왔다.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 밖에 없었다. 160정도 키에 60대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머리는 하얗게 세었고 지나치게 몸이 말라 얼굴의 광대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광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움푹 패여보이는 볼우물이 깊었다. 눈꺼풀이 얇은 가죽만 남아 눈이 튀어나올듯 보였다. 그 까닭에 눈도 더 커보였다.  남자는 한번 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탁했는데 말투는 또박또박 명료했다.


‘주공아파트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나요?’


근처에 주공아파트는 하나 뿐이었는데 위치를 정확히 몰라 휴대폰의 지도를 꺼냈다. 네이버에서 아무리 인근 주공아파트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1분가량 시간이 흘렸다.  ‘주공’ 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아파트 이름이 등록되어있었다. 주거가치를 훼손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네이버 지도에는 ‘주공’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브랜드명으로 등록이 되어있었다.


‘네 어르신, 말씀하신 주공아파트가 OOOO아파트가 맞으시지요?  저쪽에 바로 있습니다.’  

나는 손으로 가까운곳에 높이 솟아 있는 아파트단지를 가리키며 알려드렸다. 그런데 그때 남자는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반대방향을 보면서 ‘저쪽이요?’ 라고 말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뇨, 이쪽을 보세요, 이쪽에 바로 있는 아파트가 주공아파트에요’


남자는 다시 90정도 방향을 돌며, ‘저쪽이요?’  라고 말했다.  이상했다.


‘어르신, 혹시 눈이 잘 안보이시나요?’


‘네.. 내가 눈이 어두워서..’


어떻게 바로 눈앞에 들고 있는 내 손가락이 안보일정도로 시력이 안좋단 말이지. 그런 눈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걸나올 수 있었던거지.  짧은 순간 몇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시간이 7시, 해가 방금 졌기 때문에 아마도 남자는 원래 시력장애도 있지만, 어두워지면 급격히 눈이 보이지 않는 심한 야맹증 증세가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아~ 그렇군요, 주공아파트 몇동으로 가세요? ‘


‘110동이에요’


‘지도를 보니 300미터 정도를 걸으셔야 되네요, 제 팔을 잡으세요,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깡마른 남자는 조심스럽게 내 팔을 잡았다. 길을 건너지 않고 바로 단지에 접할 수 있고, 단지 내에 들어가서 쭉 걸어 들어가면 단지내 끝에 위치한 동이었다. 출발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이 내 팔을 잡고, 내가 그의 눈이 되었다.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장애물이었다. 단지안에 오가는 몇대의 차들을 보니 단지내에서 차가 저렇게 빨리달렸었나 싶고,   단지 내 인도와 인도 사이에 있는 보도블럭과  인도와 차도 사이에 있는 맨홀 들이 모두다 장애물이었다. 인도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보도블럭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곳곳에 솟아오른 블럭이 있었다.  높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고 다닌다면 쉽게 다리에 걸릴 수 있는 높이였다.


반보씩 천천히 걸어나가는 속도는 내게 익숙치 않았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쯤  내 팔을 잡은 남자의 두손이 요동치며 떨리고 있었다.  매달리듯 조금씩 내 팔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빨라지는 속도에 위험을 느꼈던 것이다. 아차 싶었다.  


‘죄송합니다 걸음이 너무 빨라졌죠?’


‘아니에요 괜찮아요.’


남자는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아니, 이렇게 눈이 안보이시는데 어떻게 거기까지 나가셨어요?’


남자의 긴장감을 해소시켜주기도 하고, 마침 궁금하던 부분도 물어볼겸 조심스레 질문을 했다. 하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나무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대화를 할 수 없을만큼 온 신경을 발끝의 촉감에 집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질문 한것을 후회했다.  



‘이제 약간 내리막입니다.’, ‘3보앞에 블럭을 올라가야해요’ , ‘앞에 보도블럭 하나가 솟아있네요’, ‘차가 오니까 잠시 멈췄다가 갈게요’, ‘여기서 왼쪽으로 천천히 돌게요’, ‘앞에 주차장 바퀴 턱이 있네요 피해갈게요’



300미터는 긴 거리였다  20분여를 걸어 110동 앞에 도착했다. 입구쪽에 와서 층수와 호수를 물으니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는 집앞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고 싶었고, 남자는 낯선 사람이 자신의 집을 아는 것이 두려웠다. 호의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시대였다. 조심스레 1층 엘리베이터 앞까지 이르렀다. 어두웠던 단지내에 비해 엘리베이터 앞은 조금 밝았으나 남자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의 위치는 물론이고 버튼도 보지 못했다.  어떻게 엘리베이터에서 버튼을 누를 것이고, 집까지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인지, 이대로 보내도 괜찮은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그때 마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아는체를 했다. 50대후반쯤 되어보이는 쾌활한 목소리의 아주머니였다. 양손 가득 장을 보고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아시는 분이세요? 눈이 안보인다셔서 제가 모셔다 드렸는데 호수는 안가르쳐 주시네요’


‘아 네, 아시는 분이에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남자를 아주머니께 맡기고 돌아섰다. 남자는 약간 다른 방향을 보며 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3번 했다.  오묘한 기분이었다. 돌아나오는 길은 걸어서 5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5분이면 걷는 길을 남자는 혼자서 30분 이상을 헤맬것이었다. 그와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성경 한구절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도서 3:12-13



맞은편 아파트 벽에 걸린 '요양병원 건립반대' 대형현수막이 늦가을 바람에 차갑게 나부낀다. 요양병원이 들어온다고 집값이 떨어질 일인가. 집값이 떨어진다고 주변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오지 못하게 반대할 일인가. 함께 어울려져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들의 입장으로 바라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진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다 앞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집에 도착하니 치킨이 식어 있었다. 식은 치킨이 더 맛있는 날도 있구나.

노인의 저녁 식탁도 마음 깊이 풍요로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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