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말고 일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많아지길
오웬으로부터
여행은 얼마나 좋은 곳을 갔는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얼마나 자주 그 장소에 가슴을 갖다 대었는가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하며 그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세상에는 시간을 쏟아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신비가 너무 많다. 가고 또 가고 , 또다시 가라 그러면 장소가 비로소 속살을 보여줄 것이다.
위 글은 제가 좋아하는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책의 일부분입니다. 업이라는 단 하나의 공통점으로 생각도 관점도 연차도 다 다른 멤버들이 모여 근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10개 이상의 깊은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경험은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제가 얻은 것은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나, 선배들의 직장생활 꿀팁들도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깨달음은 경직된 제 마음과 직면한 것이었어요. 저는 불만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늘 주어진 상황을 부정하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 받으며 일에 대한 즐거움을 좀처럼 쉽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불만 가득한 마음으로 업을 대하니 당연히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의심으로 이어졌고 그 끝에는 공허한 시간만 쌓여 따뜻함으로 가득해야 할 연말이 늘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번 글을 쓰고 또 읽으면서 처음으로 회사라는 공간에 가슴을 갖다 대어본 거 같아요. 마음속 불안을 처음 밖으로 내뱉어 보기도 했고, 제 속살을 스스럼없이 보여줬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런지 숨니가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해 주셨을 때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본다는 것이 정말 두려웠어요.) 이렇게 제 마음속 고민과 이야기를 훌훌 털어내고 나니 드는 기분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 반나절 이상을 몸담고 있는 이곳을 이토록 몰랐고, 또 알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구나" 말이죠.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이제 이곳은 저에게 직장이라는 좁은 의미보다 직업인으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필드이자 함께하는 동료들은 일로 만난 사이를 너머 같은 업을 고민하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더 나은 상태로 서로를 이끌어주는 조력자의 관계에 가까워진 거 같습니다. 팀!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며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신 숨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뜬금 수상소감�) 끝으로 팀도 이번 프로젝트를 하며 느낀 점을 간략하게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티제이로부터
'밥벌이의 지겨움'
제가 좋아하는 김훈 작가님의 수필 중 하나인데요 그중 일부입니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아마 저희 세대에게 '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정서는 대체로 저런 것들일 거예요. 힘들고 괴로운 것이지만 어찌할 수 없으니 해야 하는 것. 그러니 거기에 의미와 행복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이고 주어진 일을 주어진 깜냥대로 묵묵히 해 나갈 뿐인 거였죠.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나에게 맞는 일은 뭘까?부터 시작해서 이 일을 왜 해야 하는 걸까? 이 일을 하면 나는 어떻게 성장할까? 등 생전 해본 적 없는 낯선 질문들이 들려왔죠.
일의 개념이 바뀌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저에게 일은 생업이었지만, 지금 시대의 일은 밥벌이 이상의 그 무엇인 것 같습니다. AI가 열심히 우리의 일을 대신해주고 있으니 아마 일의 개념은 더 빠르게 바뀔 것 같네요. 그래서 이렇게 일에 대해 사색하며 탐구하는 여러분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의 이번 프로젝트로 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나올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일에 대해 탐구하면 할수록 일의 의미는 확장되고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일에 대한 여러분의 탐구가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라며, 그래서 여러분의 일이 더 행복하고 의미 있어지길 바랍니다.
솔로부터
숨니가 했던 <일을 하는 마음> 세션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일을 대하는 진지하고 깨끗한 마음이 담긴 질문들, 농도 깊은 답변까지. 그 세션이 좋았다는 분들이 참 많았지만 사실 제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이 세션이 강연자였던 숨니 자신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이었어요.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에 대해 고민할까요?
함께 일하는 동료들, 믿고 일을 맡겨준 고객사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단정한 마음도 크게 한자리 있겠지만 사실 하루 8시간 이상 보내는 회사라는 장소가, 또 일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 아닐까요. 지금도 저는 친한 친구와 ‘일’이라는 하나의 주제만으로도 몇 시간을 두고 떠들곤 합니다. 작게는 무수히 다른 줄기로 뻗어가지만 크게는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동료들과도 이런 일 얘기를 솔직하게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우리 회사의 큰 장점이라고 보거든요. 흘러가던 말로만 나누던 걸 ‘눈에 보이는’ 무언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니! 듣기만 해도 너무 설렜어요. 그래서 바쁘디 바쁜 한 주임에도, 마감 3일 전에 합류한 라스트 멤버임에도 이런 꿀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드라마(지만 이젠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흑) <나의 아저씨>에 보면, 어두운 밤거리를 힘 없이 걷는 아이유 뒤로 동네 이웃들이 든든히 함께 걸어줍니다. 한 아이를 키워주는 데 필요한 것은 한 마을이고, 나를 직업인으로 키워주는 이는 선후배 동료들이란 생각을 자주 해요. 문장들을 읽으며, 서로의 마음을 살피며 함께 걸어주는 동료애를 느꼈습니다.
2016년, 지금의 오웬과 같은 2년 차 솔의 <일을 하는 마음> 글 덕분에 이노레드와 인연이 생겼었어요. 제겐 의미 있는 그 글을 남겨두며 이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작은 소망을 남겨두고 갑니다..�
셀리나로부터
어느 날, 퇴근하는 방향이 같아 오랜만에 지하철을 함께 탄 숨니가 대뜸 질문을 던졌습니다.
“셀리나야, 너는 둘 중에 누구랑 일하고 싶어?”
(2화 '어떤 사람과 일하고 싶나요?' 편 참고) 응당 이런 질문은 팀이 바뀔 때 사전 조사처럼 하는 것이라 불안하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죠. 숨니는 눈을 반짝이며 ‘일‘을 주제로 책을 만들 거라고 했어요. 지하철에서 내려 혼자 걸으면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그 질문이 아른거려 늦은 밤 숨니에게 카톡으로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로도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질문을 던져보며 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기도 했지요.
숨니와 오웬의 질문과 답변들을 보며 습관처럼 해오던 일들이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함께하는 동료들이 더 입체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스스로에게도 많은 질문들을 던져보게 되었어요. 처음 두 분의 글을 읽었을 땐 쏟아져 나오는 꼬리 질문과 생각들에 새벽까지 글을 쓰기도 했네요. (물론 지금도요)
저는 입사 초부터 지금까지 항상 ‘이 업이 나에게 잘 맞는 일일까?’라는 고민을 해왔어요. 주변에서 그렇다고 해도 쉽게 납득하지 못했죠. 회사에는 광고를 사랑하는 사람도, 브랜드를 디깅 하는 사람도, 컨텐츠를 다양하게 보는 사람도 많은데 저는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같았거든요. 어느 날 팀이랑 저녁을 먹으며 마땅한 해결책도 없는 질문을 무심코 던졌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머리를 띵 때렸습니다.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사람은
그 일을 좋아하는 거예요
아! 자기 일을 진짜 안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군요. 풀리지 않던 고민이 시원하게 해결됐습니다. 저는 이 일을 좋아하네요. 누군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열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고민에 고민을 더해줄지도 모르지만, 마땅한 해결책도 없는 여러 생각들을 숨니와 오웬처럼 솔직하게 풀어놓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숨니, 오웬 멋진 프로젝트에 끼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버릭으로부터
저도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책을 정말 좋아해요. 어쩌면 업이라는 개인의 목표아래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그저 각자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나의 무리 가 되어 날갯짓을 공유하는 우연의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신기하고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이 작은 공유가 앞으로 각자에게 어떤 시발점이 될지, 혹은 어떤 마침표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지 기대되기도 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참 많았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정말 불행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자고로 ‘사람이라는 것은 늘 불안 속에서 피어나고 꿈틀대는 존재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각자가 각기 다른 의문점을 품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만약 그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면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자리를 절대 가지지 않았겠죠. 때로는 의문을 품고, 스스로 혹은 타인에게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답을 갈구하는 것이 필연적 존재를 만드는 유일한 가치이지 않을까요?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
그리고 내 존재로 하여금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업을 통해 세상에 봉사하려는 것
겉으로 보기에 각자의 이기심과 금전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업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는 이 행위의 더 깊은 의미를 찾아야 하는 끊임없는 욕구를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1년이 흐르고, 5년이 흐르고, 10년이 흘러 또 다른 세상에, 또 다른 시간에, 또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해답을 찾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다시 이 시기를 뒤돌아볼 수 있는 발자취를 만들어 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네요.
이 프로젝트에 긴급히 섭외당하며 숨니에게 티타임때 했던 말이 기억나는데, 저는 결국 인문학이 모든 것을 관통한다고 생각해요. 살아간다는 것에 정답은 정말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도, 좋은 업을 한다는 것에도 기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문화, 예술, 역사들은 모두 우리 서로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하고 끝맺음을 합니다. AI가 발전하고 더 빠르고 더 높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미래가 올수록 우리는 더 깊이, 더 심도 있게 인간다움을 찾아 헤맬 것 같아요.
불안함의 연속성, 완벽하지 않은 것 그 자체로 존재해야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를 공감하고, 서로를 의심하며 또 그렇게 끊임없이 해답을 갈구하는 가치 있는 사람의 연대를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숨니로부터
작년에 3년 차 미만 주니어 친구들 대상으로 <일을 하는 마음> 세션을 준비할 때입니다. 그간 쌓아 온 기록들을 열어보며 발표에 쓰일 내용들을 모아보는데 저는 참 한결같은 사람이더군요. 한결 같이 답답한 사람이요.
그놈에 일이 뭐라고
일은 일인데 나는 왜 이 일을 연애하듯 하고 있는지,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왜 이토록 마음을 쓰며 괴로워하고 있는지, 지나간 일을 굳이 회고까지 하면서 의미를 찾고 있는지, 모두가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그 쉬운 걸 왜 여태 못하는지, 심지어 연차가 이렇게나 쌓였는데도 왜 아직도 '일’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인 지 참 징글징글했어요.
세션을 준비하면서 주니어 친구들의 고민을 받았었어요. 그런데 제 예전 일기장에 쓰여있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세션이 끝나고 후기를 받았는데 다시 해볼 용기가 생겼다는 말에 선배의 노하우를 전해주러 간 자리에서 오히려 더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나만 그런 고민하는 게 아니구나, 나만 진심인 게 아니구나...
오웬과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오웬 참 부럽다’입니다. 혼자 해내보겠다고 끙끙거리지 않고 선배들과 더 많이 이야기했으면 즐겁게 일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요. 슬프게도 제가 혼자 고군분투하던 때 보다 더더욱 일에 대한 말을 아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일에 대해서 알려주는 게 조심스럽고, 서로의 성장을 독려하지 않죠. 그저 각자의 일의 가치관에 따라 알아서 성장하는 분위기예요. 그 분위기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때문에 일에 대한 대화를 아끼게 되는 건 속상한 일이에요.
대화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혼자 짊어진 고민과 불안을 나눌 수 있고, 외로웠던 마음에 위로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팀장과 팀 막내, 디렉터와 팀원, 타 팀, 경력직. 말을 아꼈기 때문에 알 수 없었지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요?
일을 잘 해내고 싶다
행복하게 일하고 싶다
이 책이 일을 잘하고 싶어 끙끙거리는 누군가에게 대화를 청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솔직한 질문과 경험을 나눠 준 분들께 무한 감사를 드리며, 이 책을 읽는 다음 멤버 분들의 코멘트가 더해져 더 많은 일담화가 오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