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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Oct 22. 2024

'안녕 프로젝트' , 아픈 엄마들의 숨 쉴 구멍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712528?sid=102


잘 들어가셨는지요.


밤늦은 시간까지 서로를 바라보며 말씀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마음속 깊은 상처와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자리에 함께할 때면, 위로라고 하는 건 전문가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가라앉는 배를 탄 사람에게 ‘잘하고 있다’ ‘괜찮다’는 말은 외려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해결책이 당장 보이지 않는 ‘느린 재난’에서 위로가 되는 것은 그 배를 타본 적이 있거나 함께 탄 사람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에 내 고통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내 슬픔을 동정하지 않는 사람 말이지요.


올해 초 파라다이스 복지재단에서 저를 찾아와 장애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은데 무엇을 하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제 대답은 그런 마음에서 시작됐습니다. “발달 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을까요?” 재단은 이미 자신들이 발달장애와 관련해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건 발달장애인을 중심에 둔 가족 지원 사업이잖아요. 그거 말고, 어머니를 위한 사업이요. 대한민국이 발달장애 자녀 돌봄을 그 가족들 특히 어머니들 어깨 위에 올려놓고 뒤에서 팔짱 끼고 있잖아요. 그런데, 돌보는 사람도 돌봄이 필요해요. 그 어머니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을 할 수는 없을까요?”


2020년도 장애인 실태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장애인을 주로 돌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 보면 지체장애인의 경우 배우자가 52.3%로 가장 높고 그다음으로 공적 돌봄이 20.4%였고, 시각장애인 역시 배우자가 37%이고 공적 돌봄이 31.7%입니다. 그런데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는 각각 부모가 66.4%, 76.3%로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물론 이는 2023년 기준으로 발달장애인 중 40세 이하 인구의 비중이 67.6%인데서 알 수 있듯이 당사자의 나이가 어린 이유도 있지만, 동시에 발달장애인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일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통계를 뒤집어 보면 발달장애인의 부모는 평생 돌봄의 부담을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노년이 되어 성장한 아이가 떠나가 삶이 허전하고 허무해지는 것을 ‘빈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발달장애 부모는 나이가 들어도 그 둥지가 비워지지 않습니다. 체력이 떨어지고 몸이 아픈데도 계속 성인이 된 자녀를 돌봐야 합니다. 이를 ‘꽉 찬 둥지 증후군’(crowded nest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다 보니, 노화와 돌봄 부담으로 인해 무너진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동안 연구를 진행하며 만났던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들은 우울증이나 수면장애로 치료를 받는 경우는 비장애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들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았지만, 아플 때 병원에 가는 비율은 압도적으로 낮았습니다. 더 많이 아프지만,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병원에 갈 시간은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단과 장애 자녀를 둔 부모 모임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 그리고 제 연구팀은 단 하루라도 ‘아픈 엄마’들이 편히 숨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몇 차례의 회의 끝에 프로젝트 이름을 ‘안녕 프로젝트’라고 지었습니다. 여러 뜻이 있었습니다. 서로 만나 반가워하는 인사로 안녕이고, 우리 모두 안녕하게 살아가자는 뜻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인가 자신의 자녀와도 작별을 해야 하는,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그 두려운 순간을 준비하기 위한 의미의 안녕이기도 합니다.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아픈 엄마들에게 그 작별은 언제인가 겪게 될 상상 속 미래가 아니라, 머지않아 겪게 될 두려운 현실이니까요.


4개월의 준비를 거쳐, 지난 10월17일 현재 암이나 우울증과 같은 중증 질환을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아픈 몸’을 가지신 어머니 여섯 분이 모였습니다. 1박 2일 동안 음식과 수영장과 스파와 숙소를 제공하고, 함께 하는 행사는 오로지 단 한번 모여 자신의 고통과 고민을 나누는 이야기를 하는 게 전부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리고 발달장애 자녀를 제외한, 자신이 가장 편안한 가족이나 친구를 한 명 동반하시도록 했습니다. 어떤 분은 장성한 비장애 자녀의 손을 잡고, 혹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와 함께, 또 누군가는 남편과 함께 캠프에 오셨습니다.


이 자리에는 김미하님도 참석했습니다. 2022년 김미하님이 기자회견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한해 전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남매를 키우던 김미하님은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다 뼈와 간으로 암이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김미하님이 찾아간 곳은 병원이 아니라 경기도청이었습니다. “내가 죽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으면 제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요.


그 당시에 병원의 간호사들이 김미하님을 많이 걱정했다고 합니다. 유방암 4기라는 진단명 때문이 아니었지요. 사흘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김미하님이 병원 복도를 걸으며 ‘어떡하지, 어떡하지‘를 계속 중얼거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작 본인은 그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모연대의 김남연 서울지부 대표는 그때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김미하님이 울음을 터트리며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반복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살려달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떠나면 홀로 남을 두 아이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안녕 프로젝트’에서 여러 장면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녁 메뉴로 숯불에 돼지고기를 비롯한 여러 음식을 구워 먹는데, 한 어머니가 소시지 떡꼬치를 굽다가 한쪽이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방금 수영을 마친 몸으로 고기를 굽던 어머니는 저희를 보면서, “어떡해요. 아까워서”를 자꾸 외치셨습니다. “이런 걸 처음 해봐서 잘 못 구워요. 이렇게 빨리 타면 어떡해!” 숯불에 구우면 소떡이 빨리 탄다는 사실은 저도 처음 알았지만, 그렇게 아쉬울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모인 자리에서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아이 없이 내가 쉬려고 오는 여행은 처음이었어요. 어젯밤부터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결혼 전날보다 더 설렜어요.” 그리고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암에 걸린 게 나쁜 게 아니었네요. 그래서 이런 날도 온 거잖아요.”


함께 모인 자리에서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연대의 김종옥님이 사회를 맡았습니다. “오늘 자리는 아픈 엄마들이 모인 자리잖아요. 우리 각자 아픈 거 자랑 좀 해 봐요.”


말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말해도 되는 자리였기 때문일까요. 일상에서는 누구와도 나누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울고 웃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장애 자녀를 키우며 돌보지 못했던 비장애 자녀에 대한 미안함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누군가는 그를 위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발달장애 형에 밀려 모든 게 뒷전이었던 동생이, 그 상처로 어른이 된 이후부터는 엄마와 연락을 끊고 지내는 자신의 아이에 대한 후회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누군가는 비장애 자녀에게 미안한 게 당연히 있지만, 그래도 수십 년간 하루하루 어떻게 살았는지 지켜보고도 자신을 원망하며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솔직히 서운하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30대가 되어 덩치가 자신보다 훨씬 더 커버린 지적장애 아들을 돌보는 한 어머니는 요즘 자신을 자꾸 때리는 아이가 무서울 때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어머니는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통제됐었는데, 작년부터는 아이를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있다가는 모두가 죽을 것 같아 결국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고 힘겹게 고백했습니다. 이제 한 달이 지나가는데, 몸은 편해졌지만 매일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다며, ‘과연 그동안 내 인생은 무엇이었나’라는 생각이 든다고요. 병원에서 어떻게 지낼지 생각하면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데리고 오는 일은 너무 무섭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한 어머니는 아이를 키우는 내내, 잠을 잘 수 없어 우울증약을 먹고 견뎠는데 어느 겨울 자동차 창문을 닫고 운전을 하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결국 몇 차례 사고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어머니가 20년간 하루 2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는데 운전을 하다가 그런 느낌이 오면 근처 아무 주차장이나 들어가서 실신하듯이 1시간은 쓰러져 있다가 나와야 한다는 노하우를 전했습니다.


혼자 해결하려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경험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때마다 부모연대의 김남연 대표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가 만들어 온 제도의 이름을 하나씩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메모지에 받아 적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이미 있는 제도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계속 등장했고, 모임은 침묵에 휩싸였습니다. 그 적막 속에서, 김남연 대표가 입을 열었습니다. “걱정 말아요. 저희가 겪었던 일들 여러분들은 겪지 않을 거예요. 저희가 만들고 바꾸어 놓을 거니까.”


2019년 강서구에서 장애인 학교인 ‘서진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었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김남연 대표는 ‘작은 엄마’들은 뒤로 빠지고 ‘큰 엄마’들이 앞장서기로 했다고 합니다. 작은 엄마들은 발달장애 자녀가 아직 고등학생이 안 된 이들입니다. 큰 엄마들은 그 과정을 다 겪고 아이가 이미 성장한 이들입니다. 무릎을 꿇고 온갖 욕설을 들어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작은 엄마들에게는 한 마디, 한 마디가 평생의 트라우마가 됩니다. 그래서 앞서 숱하게 욕설을 들으며 견뎌왔던 큰 엄마들이 그 자리를 감당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선택한 적 없는, 주어진 무대 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는 어찌할 바 없이 서로의 이야기에 기대어 나누고 버티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견디며, 그 고통의 크기를 잘 아는 사람들이 다음 세대의 누군가는 같은 슬픔을 겪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어 나갑니다.


다음 날 새벽 홀로 산책을 나섰다가 비장애 자녀와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며 걷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들숨과 날숨처럼 이어지며 계속되었습니다.


부디, 숨 쉬고 견디고 평안 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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