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는 정말 환경보호가 될까?
언젠가부터 각종 증정품이나 행사 기념품 중 빠지지 않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에코백이요 또 다른 것이 텀블러다.
특히 텀블러는 "환경보호를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합시다"는 슬로건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이 언급되는 대체품이다.
초기엔 굉장히 무난하면서 종류도 몇 가지 없었는데, 요즘은 다양한 소재에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것들이 참 많이 나왔다.
거기다 빨대가 달려있다던가(빨대도 플라스틱 아닌 유리나 스테인리스가 많다), 뚜껑도 오목한 것, 납작한 것, 뚜껑에 뚜껑이 달린 것 등등 참신하고 예쁜 것들이 즐비하다.
나는 10년째 한 개의 텀블러를 쭉 쓰고 있다. 당시 남자친구(현 아이아빠)가 선물로 받았다고 준 것인데, 스테인리스 바디에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스타벅스 텀블러다. 스테인리스라 뜨거운 것을 담아도 되고, 용량이 470ml라 엔간한 음료는 넉넉히 담을 수 있다. 뚜껑엔 손잡이 겸 주둥이마개가 있어 들고다니기도 편하다. 무엇보다 입구부분이 넓어서 음료 외에도 밀폐용기 대용으로 과일이나 간단한 간식을 담고 다니기도 좋다. 아랫부분은 찌그러지고 스타벅스 로고 세이렌의 눈이 없지만(손때타서 지워짐) 내부는 수시로 세척을 해서 새것같다. 녹슨곳도 없고 뚜껑이 튼튼해서 겉보기만 그렇지, 앞으로 10년은 더 너끈히 쓸 수 있다.
이 텀블러만 쓰다보니 주변에서 '넌 이거만 쓰네', '다른거 없니?'라고 말한다. 텀블러가 옷이나 가방같은 패션아이템도 아니고,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춤한 텀블러가지고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10년 동안 나도 선물로, 증정품으로 많은 텀블러를 받았다. 개중엔 가격이 꽤 비싼 보온겸용도 있었고, 반대로 받자마자 몸체가 부숴져서 버린 것도 있다. 보통 증정품은 받지 않거나 판촉사원분에게 드린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받아온 것은 뒀다가 그래놀라나 수제청을 담가서 덜어 선물할때 쓰고, 알뜰장터에 내놓고, 집에 놀러온 이들 중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줬다. 빨대가 달린 가벼운 텀블러는 아이들 물병으로 쓰고 있는데, 손잡이가 달려있지 않는 것을 빼면 아이물병으로 딱 좋다.
하루는 '텀블러를 쓰는 것이 진짜 일회용품과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데 일조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처럼 한 개의 텀블러를 꾸준히 쓴다해도 내가 24시간 텀블러를 끼고 다니지 않는 이상 부득이하게 일회용컵을 쓰는 일이 생긴다. 세척 후 집에 두고 나왔는데 음료를 주문하게 되거나 배달음식을 사는 경우, 코로나19 이후엔 위생적인 문제 때문에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등 자의와 타의에 의해 일회용품을 쓰게 된다. 요즘은 식당에 가도 '감염병 확산 방지'와 가게 편의를 위해 종이컵을 내놓은 곳이 부쩍 늘었다. 단체로 식사하러 가서 종이컵을 쓰는 곳에 '저는 텀블러 쓸게요'하고 혼자 텀블러를 쓸 정도로 담대하지 못해서 그럴땐 그냥 종이컵을 쓴다. (아까워서 슬쩍 들고 와 사무실에서 썼다.)
각설하고, 나로썬 텀블러를 정말 그 용도로 쓰려면 24시간 들고 다녀야하고, 한 가지를 적어도 10년 이상은 써야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재질에 따라 깨지거나 갈라져 쓸 수 없을 수도 있고, 내구성이나 환경호르몬 문제로 플라스틱을 썼다가 스테인리스나 유리 등으로 바꿀 수도 있다. 때로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쓰일때도 있다. 작년에 스타벅스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고자'실시한 리유저블컵 이벤트가 그것이다. 본 취지는 일회용품 사용을 하지 않는 날을 지정해 일회용컵 대신 리유저블컵을 준다는 행사였는데,(리유저블컵을 증정한다고 음료가 더 비싸진 않았음)그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스타벅스 오픈 전부터 수 십명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컵을 되파는 사람도 생겼다. 플라스틱컵의 내구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고, 오히려 플라스틱컵을 장려하는 이 행사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한탄하기도 했다. 나는 스타벅스 커피를 사러 간 김에 컵을 받았는데, 컵을 되파는 욕심에 무분별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어 좋은 취지의 행사가 변질되어 안타까웠다.
이후 리유저블컵의 프리미엄은 3일 천하로 끝났고, 나중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스타벅스에 자주 드나드는데 그 컵을 정작 가지고 오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질 못했다. 떠들썩한 행사에 비해 '마케팅효과'만 있을 뿐, 본 취지는 흐려져서 안타까웠다.
그로부터 몇달 뒤, 동네 카페에 갔는데 그곳에서 '도돌이컵'을 봤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울산ubc방송국 대표 프로그램인 "지구수다"에서 하는 다회용컵 사용독려 프로젝트라고 한다. 보증금을 내고 컵을 쓴 후에 도돌이컵 가맹점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받을 수 있다면서 나에게 권했다. 나는 들고 다니는 텀블러가 있다고 했더니 감탄하면서 '좋은일 하시네요'하고 칭찬해주셨다. 칭찬에 머쓱해하고있는데 사장님이 도돌이컵은 텀블러처럼 휴대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세척도 반납할때 알아서 해주니까 무척 편하다고 했다. 누가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한건지! 비록 난 텀블러를 쭉 쓰고 있어서 앞으로 쓸 일이 있을까 싶지만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인만큼 널리 알려졌음 좋겠다. #도돌이컵 #지구수다
텀블러 사용과 환경의 상관관계는 결국 파악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제로웨이스트를 적극 실천하기위해 다회용컵을 사용하자 외치고, 어느 기업에선 이색 환경마케팅의 일환으로 무분별하게 컵과 텀블러를 만들어 더 많은 자원을 낭비하기도 한다. 텀블러를 쓴다해도 때마다 예쁜 md상품이 나오면 바꿔서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텀블러가 없지만 카페에 갈 때마다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고 카페컵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쪽이 진짜 환경을 보호하는 것일까?
우리동네에 스타벅스가 있는데, 늘 드라이브스루를 이용하다가 어제 처음으로 매장에 들어갔다.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는데 아차! 어제 쓰고 세척을 안한거다. 기껏 챙기면 뭐하냐, 이러면 안들고 오느니만 못하는데 하고 시무룩해있는데 카운터 옆에 못보던 기계가 있어서 봤더니 텀블러 세척기란다. 만세! 재빨리 텀블러 컵을 씻었다. 컵을 씻은 후 자신있게 커피를 시켰다. 자주 봐서 안면이 있는 점원이 웃으면서 "다음엔 그냥 카운터에 가져오시면 세척해드릴게요"란다. 점원의 말이 고마웠지만, 다음부턴 꼭 세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텀블러 좀 잘 써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