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생리대를 쓰면서 인생이 쓴걸 알았다
나는 생리통이 아주 심했다. 학창시절엔 조퇴도 몇 번 했을정도였는데, 그때마다 주변에선 유난을 떤다고 엄청 입을 댔다. 생리통이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저런대? 나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건 그렇다했지만, 이해는 커녕 비아냥대기 일쑤였던 부모님과 선생님의 따가운 눈초리와 말은 아직도 생채기가 깊게 남아있다.
그러다 보건선생님께서 '면생리대를 쓰면 냄새도 없고 생리통도 없어진다'고 하셨다. 하지만 집에서 쓰자니 일일이 빨기도 귀찮았고, 그걸 널어놓을곳도 변변찮았다. 남동생과 아버지가 있어서 민망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어 혼자 살게 되면서 면생리대를 쓰기 시작했다. 면생리대는 빨아쓰는것이 유일한 단점인데, 혼자사니까 한번에 몰아서 푹푹 빨아 주렁주렁 널어놔도 되니까 번거롭거나 귀찮지도 않았다. 어차피 속옷도 손빨래 하는데, 하는김에 좀 더 빠는거라 생각했다. 처음 3개월간은 별다른걸 느끼지 못했는데, 4개월째 되던 어느 날, 날이 궂어 생리대가 덜 말라 일회용생리대를 사서 썼다. 쓰자마자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고, 아랫배가 싸르르 아팠다. 면생리대를 쓰면서도 약간의 생리통은 있었지만 이전처럼 기간 내내 아프거나 일상생활이 힘들정도가 아니라 약간의 통증이 전부였다. 그런데 일회용생대를 오랜만에 쓰자마자 그 동안 괜찮았던게 화악 몰려왔다. 그땐 면생리대를 파는곳도 흔치않아서 바로 구매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 기간 내내 수업 외에 다른 활동은 다 취소하고 집에 누워만 있었다. 면생리대를 쓸때는 몰랐는데, 쓰다가 안쓰니까 대번에 표가났다. 이후 면생리대를 넉넉하게 구비해서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행을 갈땐 부득이하게 일회용을 쓰지만, 잘때는 꼭 면생리대를 썼다) 이후 면생리대 전도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간증'을 알렸지만 사람들은 심드렁했다. 간혹 관심을 가지는 이가 있었지만 당장 구매할때 드는 비용(보통 중형 하나가 1만원 초중반대)과 본인의 생리혈을 북북 빨아야한다는 것에서 손을 놓기가 일쑤였다. 장기간 본다면 생리대 구매비용이 결코 비싼것이 아니다. 면생리대 1만원 중형을 사면 보통 2-3년 이상 쓴다. 잘 관리하고 쓴다면 좀 더 쓸 수 있다. (나는 3년 주기로 새로산다.)
생리통은 이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아예 없어지진 않았다. 그 후 결혼하고 임신을 했다. 임신하고나서 알게 된 사실 두 가지. 하나는 나의 난소가 무척 건강해서 임신이 굉장히 잘, 된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자궁에 무려 6센치미터의 물혹이 있단다. 선생님은 이정도면 생리할때마다 엄청 아팠을건데 그걸 참았냐고 했다. 간혹 임신하면서 물혹의 크기가 줄어들기도 하고, 출산 시 떼어내면 되니까 걱정말라고 했다.
출산일에 있었던 일이다. 마지막 진료일에 담당선생님이 '못참을 정도로 진통이 오면 오세요'라고 했는데, 출산 당일 새벽 늘 겪던 생리통과 같은 아픔이라 '참을만 했고', 그렇게 꾹꾹 참다가 식은땀이 줄줄나서야 병원에 갔다. 아픈 간격이 5분, 4분으로 줄어드는걸 확인하고 나서야 이게 진통임을 알게 되었지만, 늘 겪던 생리통의 간격이 줄어서 아프다고 생각했지, 특별히 진통이라 막 아프진 않았다. 심지어 병원에 도착해서도 너무 멀쩡하게 혼자 진료실에 들어섰는데, 내진을 하자마자 선생님이 놀라며 벌써 40%이상 진전이 되어 바로 분만실로 가야한다고 했다. 나에게 이정도면 보통 산모들은 기어오거나, 애당초 이렇게까지 진행되기 전에 진즉 왔다면서 아프지 않았냐고 물었다. 평소 생리통이 이정도인데요? 라고 하니 선생님께서 안쓰럽게 보시며 '그 동안 얼마나 고생많았냐'고 위로해주셨다. 드디어 내 아픔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것에 눈물이 났다. 정말 펑펑 울었다. 뒤이어 도착한 남편과 엄마가 많이 아프냐고 달래줬지만 아픈것보단 긴 세월 혼자 힘들고 외로웠던 서러움의 눈물이었다.
늘 나는 '엄살이 심한 아이'라고 불렸는데, 엄살이 심한게 아니고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박한것이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생리통때 조퇴를 몇번 했다는 것 때문에 '작은것도 못참는 한심하고 엄살이 심한 애'로 조롱과 비아냥을 들어야했다. 그것도 '가족'한테. 나는 그게 항상 고통이었고, 아픈티를 내봤자 어차피 믿지도 않을 뿐더러 비웃음만 당하는것에 이골이 났고 그게 이어져 가족과 서먹하고 '그냥 사회적인 도리(자식의 도리)'만 하고 말자로 바뀌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출산 후에도 '살 안빼냐', '게으르다', '너만 애 낳았냐', '니가 무슨 우울증이냐'같이 스쳐 지나갈때마다 남도 안할 말들을 뱉어냈고, 남들보다 못하다고 말했더니 '남들은 '남'이니까 솔직하지 못하다', '남이니 좋은말만 하지 뒤에서는 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나를 물정모르는 바보취급 했다. (덕분에 내 주변엔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좋은 이웃이 많다. 그거 때문에 버텼다.)
예전에 동기가 나에게 '너는 왜 무슨 일이 있으면 혼자 해결해?'라고 했다. 그 동기는 내가 참 희한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작은 불편과 고충을 잘 이해하고 본인보다 더 나서서 도와주면서 ,정작 왜 너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혼자서 해결하느냐고. 고민이나 문제가 있으면 보통 부모님이나 가족과 의논하지 않니? 라는 말에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걸 듣고 있던 다른 선배와 후배가 너희가족만큼 우애롭고 좋은 가정이 어디있냐고 했다. 맞다. 친구같은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착한 동생, 부족하지 않은 평범한 중산층. 다른 사람들은 나의 부모님과 형제지간을 무척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그런 조용한 집안에서 혼자 모가 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밑바닥에는 아주 꺼내기 힘든 이유가 있다. 그건 나중에 다뤄보기로 하겠다.
출산 이후 모유수유를 했는데, 모유수유 덕분인지, 면생리대 덕분인지 생리를 한달 반 만에 했다. 담당의사가 '몸이 금세 회복되어 월경을 시작하는거니 좋은 일입니다'고 축하해주었다. 환자분이 면생리대를 쓴 덕분일것같다면서, 환경도 생각하고 본인 몸도 챙길 수 있는 좋은 일이라고 했다. 딱히 환경 생각은 해본적이 없는데요? 라고 답했더니 깔깔 웃으며 '말은 그래도 아닐걸요?'라고 했다. 뭐든 좋은 일이니 앞으로도 쭉 면생리대를 쓰겠다고 선생님과 약속했다. (며칠전 정기검진을 갔는데, 정작 선생님은 그때 일을 기억못하셨다. 면생리대를 아직쓴다고요? 와아 대단하세요! 라는 말만 들었다.)
첫째 출산 후에 많은 일이 있었다. 익숙치 않은 육아와 출산 후 달라진 몸의변화, 이전부터 쌓였던 주변인과의 갈등, 가족의 무심함과 툭툭뱉은 말과 행동이 곯을 대로 곯아썩어서 공황장애 초기 진단도 받았다. 정신건강센터에서 상담을 받았고, 중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상담받을 '여유'도 없었고, 약을 먹으면 무기력이 온다는 말에 '저는 애 봐야해서요'하고 먹지 못했다. 몸도 마음도 썩어 문드러졌다. 그러다 방광염이 심해져서 산부인과에 진료를 갔다가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다. 자궁적출이야기까지 나왔었지만 다행히 복강경 수술로 간단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수술 후 둘째가 생겼고, 걱정과 염려에도 불구하고 별탈없이 너무나 잘 크고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둘째를 낳고 나서도 모유수유를 했는데 한달만에 생리를 시작했다. 1년 만에 면생리대를 꺼냈다. 아이 둘을 케어하면서 내 몸조리도 못하는 주제에 면생리대를 쓰려고 하다니. 몸이 축나서 한약을 먹는다니 '한약먹으면 살찐다', '둘째살은 안빠진다는데 조절 좀 해라', 각종 공모전 응모,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니 '참 돈 안되는 짓을 한다', 아이가 열이 많이 나서 바지를 벗겨놨더니 '이러니 애가 감기에 걸리지'소릴 들었다. 이런 상황에 내가 면생리대를 계속 쓴다고 했다간 '진짜 쓸데없는 짓이다'는 말을 듣겠다싶어 어디에도 말하지 않았다.(간혹 내가 면생리대 쓰는 것을 아는 주변사람들이 물어보면 솔직하게 대답해준다. 주로 극찬이다. 꼭 써보라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강추한다.)
면생리대가 내 건강도 되찾아줬지만, 동시에 얼룩진 나의 인생도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고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