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복도 창가에 겨우 앉아있던 수빈이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찬 바람이 유리창 너머로 스치고, 아이들의 발소리와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혼자 있고 싶었다.
그때, 귤 하나가 수빈이 앞에 톡— 하고 굴러왔다.
“이거… 네 얼굴이 너무 굳어 있어서.”
누군가가 말을 건넸다. 고개를 들자, 같은 반 친구 서아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 아침에 할머니가 싸주신 귤인데, 달달해. 너도 하나 먹어봐.”
수빈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귤을 받았다.
껍질을 까는 사이사이로 은은한 향이 퍼졌고,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에 수빈이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은 풀렸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맛이었다.
단지 귤 하나였는데…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
서아는 조용히 옆에 앉아 말을 이었다.
“수빈아, 요즘 너 좀 힘들어 보여서… 나도 예전에 영어학원 때문에 많이 울었거든. 그 기분 뭔지 알아.”
수빈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도… 진짜 힘들어. 근데 말할 데가 없었어.”
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빈이 어깨를 토닥였다.
“나도 그랬어. 엄마는 항상 ‘조금만 더 해봐’만 반복하고, 친구들은 잘해내는 것 같고... 나만 멈춘 느낌이었어. 근데 어느 날 선생님이 한 마디 해주셨어. '달리기 경주가 아니라, 네가 네 속도로 걷는 거야.' 그 말 듣고 조금은 편해졌거든.”
수빈이는 귤 껍질을 천천히 접어 손바닥에 올려두며 속으로 되뇌었다.
내 속도… 내 속도란 게 있었을까?
지금껏 모든 게 빠르게 지나가고, 모든 걸 맞춰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나만 천천히 걷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고, 뒤처지는 기분에 매일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누군가가 괜찮다고 해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우리… 서로 힘들 때만큼은 꼭 말하자.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응…”
그 말이 어쩌면, 지금의 수빈이에게 가장 필요한 한 마디였다.
그날 이후, 수빈이는 매주 화요일 아침마다 귤 하나를 가방에 챙기기 시작했다.
그건 서아에게 받은 위로의 기억이자,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기도 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수빈이의 화요일은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