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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팔구일 Apr 25. 2023

초록, 선, 결국

살아있는 지금이 소중하다, 그리고


매일 걷기를 시작했다. 서대문구에서 용산구까지 대략 6km다. 날씨는 변덕스러웠지만, 초록은 한결같이 무성했다. 언제나 그 모습으로 있을 것 같이 말이다. 2주차, 같은 풍경을 보는 게 지겹다고 생각됐다. 조금 새롭게 이 길을 보고 싶었다.

주로 도로를 걷는다. 보도블럭이 깔린 길을 보며 이 나무는 결국 정해진 ''을 따라 만들어진 거라 생각했다.


계절의 한바탕이 넘어가야 익숙한 풍경도 변한다.

나무의 초록잎이 알록달록해지거나 앙상한 가지로 남거나 하는 식으로.

이 선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하는 건 결국 바람과 풍랑, 뜨거운 햇빛, 내가 정말 싫어하는 고통과 위기 같은 거다.


나는 교회 상조부 위로예배팀에서 섬기고 있다. 오늘 장례가 있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풍성하다. 요즘 떠들썩한 전세 사기, 장례식장을 가려다 실수로 다른 지역으로 간 일 등등 권사님들, 집사님들은 담소를 나눈다. 죽음을 위로하러 가는 길이 무겁지만은 않다는 게 아이러니로 다가왔다. 도착한 장례식장에서 위로 예배가 진행됐다. 유가족의 울음이 무겁다. 상실의 울음이 퍼져나갔다. 이때 오열을 참으면 병이 생긴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분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길 바란다, 고인은 천국에서 하나님과 행복하게 지낼거다 라는 말이 힘이 될 수 있을까 ?진한 울음을 들으며 든 생각이다. 죽음의 한바탕이 삶을 뒤흔든다. 지겨운 풍경이 이토록 애틋한 거였는지, 돌아오지 않을 당신의 초록을 사는 동안 기억으로만 간직해야 한다는 건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다.


결국,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를 삶에서 죽음으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에서 천국이란 생명으로 이끄시는 거라고. 솔직히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삶으로 와닿지 않는 순간이 많다. 특히 장례식장에선 더욱 그런 거 같다. 그런데 이건 나의 경험, 느낌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진리다.

지금 흘리는 눈물이 상처와 상실로만 남지 않으리. 기도하고 이들의 눈물을 머릿 속에 담아본다.


장례식장에서 교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창문으로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의 나와바리같은 곳들이었다. 나의 20대 중반부터 10년의 시간이 필름처럼 보였다.

내가 지금, 누군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은 자리에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내가 어떤 애인지 잘 아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어느 새 나의 선이 미묘하게 다르게 그어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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