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강사로 일하는 제자가.
더이상의 사교육시장 노동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어쩔 수 없게 됐다. 출근 2주차, 내 10대의 일부였던 학원 선생님들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첫번째 선생님. 검은 뿔테 안경에 키가 작았던 Deborah 선생님. 텍사스 출신의 원어민 선생님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늘 지쳐보이는 눈과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안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영어학원에서는 말하기와 쓰기를 집중적으로 가르쳤는데, 큰 글씨로 A4용지 한 장 정도는 채워야 할 정도의 장문 쓰기 숙제가 많았다. 정확히 어떤 말들이 적혀있었는지는 기억 이 안 나지만 선생님의 코멘트를 읽는 게 늘 기다려졌다. 그 코멘트 읽는 맛에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두번째는 커피담배 선생님. 커피냄새와 담배냄새가 동시에 나던 영어선생님이었다. 커피와 담배 냄새가 동시에 나면 왠지 찌든 냄새가 떠오를 수도 있는데 그 분은 그렇지 않았다. 난 그 냄새가 늘 향기로웠다. 그 선생님을 좋아하거나 동경하는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정직하게 그 냄새만 좋았다. 한 손에는 커피,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쥔 회사원들 무리를 지나칠때면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아보고 싶기도 하다.
세번째는 잘나가는 종합학원의 영어문법 선생님. 목소리가 참 카랑카랑하셨고 검은색 옷을 주로 즐겨 입으셨다. 그 선생님만큼 문법 잘 가르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수업교재로 “.zip”으로 끝나는 문법책을 쓰셨는데, 그 책을 요즘도 파는지 모르겠다. 뭔가 야매가 가득한 문법책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그때 배웠던 쏠쏠한 팁들을 학생들 수업에 써먹기도 한다.
네번째 선생님은 믹스커피를 수업 내내 홀짝이시던 70대 초중반의 할아버지 수학 선생님. 반년도 안 돼서 그 학원을 그만뒀고 그 이후에는 선생님과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근데 가끔 생각이 난다. 이유는 알 수 없는데, 왠지 세상에 계시지 않을 것 같다고 늘 생각해왔다. 확인한 적도 없고 확인할 방법도 없는 누군가의 죽음을 생각하면 이건 슬퍼해야 할지 어쩔지 모르겠다. 슬픈 마음이 막 드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슬프지 않은 건 또 아니다.
어제오늘 함께 수업한 학생들이 10년 뒤에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생각하다가 옛날 학원 선생님들까지 소환됐다. 10대 초중반의 사람과 잡담하는 게 20대 초중반 사람과 잡담보다 재밌을 때도 많다. 그들도 비슷할 것 같다. 나를 재밌고 신기해하는 거 같은데, 영어같은 거 말고 그냥 웃긴 이야기나 하고 싶다. 애들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너무 많은데 수업하느라 여유가 없다. 강렬한 기억까진 아니더라도 노잼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