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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 Mar 29. 2021

2주 존댓말 선생님

학원에 출근한 지 딱 2주차 되던 날, 원장선생님이 잠깐 보자고 하셨다. 잠깐 보자는 말은 언제 누구에게 들어도 무서운 말이므로 나는 머릿속으로 지난 한 주를 몇 초간 되감기 해보았다. 딱히 짚이는 일은 없었다.


원장님은 학생 몇 명이 나를 조금 어려워한다고 하셨다. 특히 고학년 학생들이 내가 쓰는 존댓말을 낯설어 한다는 거였다. 학생들이 느꼈을 어색함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어색한 시간을 견디고나면, 나도 학생들도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학부 교직 수업때 교사의 권위를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교권은 무너졌는가’를 두고 찬반이 갈렸는데 그렇다고 생각하는 쪽이 압도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숙제를 내주고, 쓴소리도 하고,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은 모두 교사가 하는 일들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들이는 노력보다 학생이 교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 훨씬 크다. 이것에 있어선 장소불문 상황불문 예외를 내 인생에서 본 적이 없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에선 늘 위계가 발생한다.


위계에 너무도 익숙해진 우리가 약간의 어색함을 감수하더라도 위계에 조금 덜 익숙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교육 안에서 이루어지더라도. 불규칙동사 외워오라 하고, 단어 안 외우면 공부해봤자 소용없다며 꼭 주말에 숙제 해오라고 으름장을 놓는 나지만, 그런 말이라도 존댓말로 하면 조금 나을 것 같았다.



영화 <벌새>의 영지 선생님. 한문선생님이 이렇게 멋질 일인가. (출처: 영화 <벌새> 스틸컷)


어찌됐든 나는 그날부로 존댓말에서 반말로 빠르게 전환했다. 몇 몇 학생들은 반말이 훨씬 편한 눈치다. 지금쯤이면 내가 첫주에 열심히 존댓말한 것도 다 까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건 다 까먹어도 괜찮은데, “저 혹시 학생 책 잠깐 봐도 돼요? 어디까지 공부했는지 확인하려구요.” 이 말은 안 까먹어주면 좋겠다. 선생님이라고 해서 학생들의 책을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세상에 그런 권리는 없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는데 여러분이 그걸 알랑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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