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가 있는 - 본사는 이태원이지만 우리 부문은 강남역에 있다 - 강남역을 성화가 지나는 날이다. 곧 사무실 자리 이사를 할거라 강남역 치어를 나간 뒤 무려 두 달 반만에 회사에 가기로 했다. 그제부터 서울 봉송이었지만 회사에 간다고 하니 진짜 서울에 온 기분이 들었다.
오전에는 CP에서 31명의 강남경찰서 강력계 형사들과 소비자 몇 명을 주자로 맞이했다. 형사들은 영화에서 보던 것보다 더 세보이고 멋졌다. 주자가 봉송로에 나갈 때 보통 스탭들이 전부 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오늘처럼 세게 치는 사람이 많은 구간은 처음이었다. 강남구의 강력 범죄 발생 건수는 서울시 내에서 Top 3 안에 든다던데, 그래서 저런 에이스들을 모아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아주 허구가 아니구만!
토치키스 후 힘차게 소리치고 있는 강력반 형사들
오전 업무를 마치고 강남역에 도착해 슬랏을 찾아 지하도를 건너려는데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내 친구 대현이였다!!! 성화가 강남역을 몇 시경에 지나가니 담배 피울거면 맞춰 나와서 보라고 메시지를 보내놨는데 딱 나온 것이었다. 대현이가 커피까지 사들고 왔는데 길을 건너가면 나는 뛰어야 했기 때문에 ㅠㅠ 못 받고 올 수밖에 없었다.
방가방가
대현이와 잠깐의 만남을 뒤로 하고 돌아서서 세종부터 서울까지만 우리와 함께 하기로 되어있던 우리 스탭에게 나의 정말 친한 친구라고 말을 하니, 그 스탭이 화들짝 놀라는 것이었다. 내 나이를 가늠을 못하고 있었는데, 친구를 보니 내 나이를 실감하겠다나. 그래서 내 친구 몇 살로 보이냐고 했더니 서른 셋은 되어보인단다. 대현이가 그렇게 들어보이나? 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서른 셋이면 86이다. 우리보다 한 살 많은 거다. 대현이를 노안으로 본게 아닌거다. 하 우리가 어쩌다 서른 둘이 된거지??!!
강남역 근방에서 뛰는 우리 주자는 총 6명이었다. 두명은 소비자였고 그 중 한 명은 등록 때 주자 어머니에게 슬랏 위치를 설명했었는데 마침 대현이와 헤어진 후 지하도에서 우연히 만나서 슬랏으로 함께 이동했다. 그 주자는 추가 합격(ㅋㅋ)을 한 여학생이었는데 주자 어머니가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나까지 기뻤다. 나중에 귀가 후 우리 스탭에게 전화까지 하셨다. 고맙다고, 평생의 추억을 만들고 간다고.
소비자 주자 뒤에는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앵커인 이창훈씨를 포함해 총 네 명의 시각장애인 주자들이 봉송에 나섰다. 네 명 모두 전맹이라고 들었는데 한 분은 장애가 전혀 없는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시는데 동반인이 없었다면 몰랐을뻔 했다.
어쩐담 ㅠㅠ
두달 반 만에 들른 회사는 왠지 내가 또 한 번의 이직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쌀 것도 없는 짐을 후다닥 싸고, 봉송로에 있던 선배 짐도 싸고, 저녁에는 주자 운영팀 회식을 했다. 한 달간 진행한 마니또 발표 시간도 가졌는데, 나를 본인의 마니또로 뽑은 사람은 세종에서 서울까지 우리와 함께한 삼총사 중 막내였다. 내가 립밤을 엄청 많이 바르더라며 - 관찰력도 좋지! - 립밤과 바나나맛 우유 핸드크림을 선물로 줬다. 고맙고, 군대 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