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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WJ Apr 10. 2016

헬스를 끊고 10년만에 수영을 끊다.

자유를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운동, 수영을 다시 시작하다.

A River  Runs Through It - soundtrack.

요즘은 수영에 푹 빠졌다.

일요일 빼고 매일 아침 6시 반쯤에 일어나 수영을 하러 간다.

눈이 오거나 비가 와도 말이다.

근데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수영장에 가는 걸 싫어했을까.


내가 마지막으로 일반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했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 당시 체육 수행평가로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못했던 운동을 골라 한학기 동안 개인적으로 배우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학기 말에 운동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제출하면 선생님이 그것을 가지고 그동안 얼마나 연습을 해서 실력이 향상됐는지 평가하는 형식이었다. 어떻게 보면 참 무책임한 과제여서 당시에도 꽤나 툴툴거렸던 것 같다. 그래도 친구들 중에는 스케이트 보드 타는 것을 제출한 친구도 있었고 아이스 스케이팅 하는 모습을 찍은 친구도 있었다.


나는 수영을 했다.


부모님은 근처 수영장에 주말마다 수영하러 가시곤 했지만 나는 원래 수영하는 것을 싫어해서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한번도 따라 나서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수행평가고 하니 마지못해 수영하는 모습을 찍어서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이게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 이유는 체육 선생님이 모든 영상들을 감상하신 후에 우리반에 오셔서 수영했던 친구들을 언급했었기 때문이다. 전교생 중에 수영하는 것을 제출한 학생은 나를 포함해 2명 있었는데, 다른 여학생은 인어 같이 수영하든데 너는 좀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더라 하시며 선생님은 내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셨다.  


이런.. 나도 나름 어린이 수영단 출신인데 말이다.

photo,  "Cospomolitan, let's go swim."


중딩 때 구매해서 사용했던 오리발. 아직도 발이 맞길래 사용 중인데 진짜 초딩스럽다.


많은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나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까지 방학이 되면 수영장을 다녔던 거 같다. 왜 그렇게 다들 어릴 때부터 수영을 시키려 하는 걸까? 심심해서 글을 쓰기 전에 브런치에 수영에 대해 검색을 해봤는데 생존수영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가만.. 생존수영이라고?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그래, 생존하기 위해 수영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마치 수영을 배워놓으면 긴급한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생존 수영이란 단어에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단어가 내비치는 그 생각이 오해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이건 내 교육관과도 연관이 있는데,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교육시키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조금 남아있지만, 못하게 하는 것은 꼭 한번 해봐야하는 청개구리 같은 병은 초등학생 때 특별히 더 심해서 어리석은 짓을 할 때가 많았다. 하루는 계곡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날도 역시나 그랬다. 급류 쪽으로는 위험하니 절대 가지말란 말을 듣고 나는 기어이 급류 쪽에 가보고 싶어졌고 그렇게 호기심에 기웃거리다가 급류에 휩쓸려가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온몸에 멍이 들었는데 긴급한 상황에서 수영 기술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물위의 생존을 위한 요건으로, 수영 능력이 아니라 안전과 관련된 다른 당연한 것들이 최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한다는 것을 나도 가슴 속에 아프게 새기게 되었으니까.


우리들은 이제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수영이 아니라 안전에 더욱 민감해져야 생존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난 수영하러 가는 게 참 싫었다.
물에서 노는 것은 항상 좋아라 했는데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루는 자유수영을 하러 갔다가 옆라인에서 유치원 애들이 수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본 적이 있다. 그 조그마한 몸뚱이로 소금쟁이처럼 둥둥 꽤 빠르게 떠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나도 저땐 저런 모습이었을까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한 아이가 레인 계속 도는 게 힘들었던지 나처럼 스타트 부근으로 와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러자 수영 선생님한테 바로 혼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다독임이 아니라 꾸중이었다.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누군가를 특별히 가르쳐 본 적이 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성이라면 군대에서 후임들을 교육시켰던 경험이 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탓하지 않는다. 군대에서는 '여유를 가지고 재미있게 즐겨라'와 같은 마인드가 아니라 '왜 더 열심히 빠르게 하지 못하냐, 네가 나태해서 그런거다, 될 때까지 더 노력해라' 하는 마인드이니 말이다. 제대를 하고 나 또한 저런 실수를 저질렀던 적이 있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많은 것들이 군대 베이스인 나라!



지금은 아이들을 잘 존중해주고 재밌게 수업을 이끄는 선생님들도 몇번 봤기 때문에 다행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조금은 엄격한 분위기에서 수영을 배웠다. 수영을 하며(아니 "수영 학원"을 다니며)  '아 아직 7 바퀴 째인가. 20바퀴까진 얼마나 더 남은거지.' 그런 생각을 자주 했던 것이 생각난다. 배영을 하며 천장 유리 밖 하늘을 볼 때면 물 속안의 자유로움 대신 답답함을 느끼곤 했고, 음파를 하는 순간에는 시계를 힐끗 보며 계속 끝날 시간을 머리속으로 계산하곤 하였다.


물론 장거리를 하는 게 수영 실력을 늘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수영 실력을 늘려야 한다는 목적의식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 내 친구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는 초등학교 때까지 전국 대회에 나가서 우승할 정도로 수영을 잘했던 촉망받던 수영 꿈나무였다. 어느정도였나하면 수영 센터 팀 코치가 초등학생였던 그에게 꼭 자기 팀에 남아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Dash 기록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수영장 물을 먹어가면서 수영을 하곤 했다. 시간을 단축하는 데 숨을 한번이라도 덜쉬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그의 신장은 또래 경쟁자들에 비해 더디게 컸고 키와 팔 길이, 다리 길이가 차이 나면서 스타트 라인에선 항상 빨랐지만 어느 순간부터 턴하면 옆라인 친구의 모습을 먼저 보게 됐다 .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매번 1등을 했던 그가 자기보다 못했던 친구에게 계속 지게 되었으니 알만도 하다. 어느새 코치도 이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하였고 그렇게 그는 중학교 2학년이 되고 수영을 그만 두었다. 그 때 그는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이후로 일반 수영장에는 잘 가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하드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서, 과연 정말 의미가 있는 효율적인 접근 방식인지 의심스럽다. 그 친구를 보니 적어도 수영에 있어서 그런 것 같진 않다. 다행이도, 그는 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내서 지금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적어도 금전적인 면에서는 훨씬 더 말이다.

역시 인생은 길게 봐야 된다.




USC 수영장 시설이 가장 부러웠다.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수영하자.



수영은 자유를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운동,  

그래서 수영은 진짜 재밌다.


난 재미주의 교육관을 지향한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것이 반드시 옳은 교육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수영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수영은 진짜 재밌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재미를 놓친 수영을 했던 것 같다.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수영하러 가는 것을 싫어했었다.  


재미있게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서 재미를 빼앗진 말자. 배움의 재미와 자유의 재미, 그리고 또 창작의 재미를.

 

어렸을 때 삼촌 방에는 두개의 영화 포스터가 달려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A River Runs Through It' 이었고 다른 하나는 'Shakespeare in Love' 였다. 이젠 영화 포스터를 구매하기에는 너무 늦었나 보다.  


어렸을 때 나는 자유형, 배영, 접영, 평형 말고 새로운 영법을 개발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세상에.. 몸의 무게를 거의 느낄 수 없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영법이 네가지 밖에 안된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그래서 첫번째로 나온 게 회오리영법이었다. 온몸을 360도 돌리면서 마치 드릴이 돌아가며 앞으로 나아가는듯한 모습으로 수영하는 영법이었다. 생각보다 코에 물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재밌었다. 하지만 하고 나면 어지럽다는 단점이 있었다. 지금 그 모습을 생각해보면 웃지 않을 수가 없지만.. 당시 로보트 만화와 장난감들에 빠져있었던 나로써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수영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성인이 되고 나서 해본 적은 없다. 너무 창피하니까.


다른 하나는 해파리영법이라고, 배영 자세에서 다리는 평형처럼 개구리 발차기를 하고 팔은 양옆을 위에서 옆으로 밀어 마치 해파리처럼 앞으로 가는 영법이었다. 이건 요즘에도 배형하다가 너무 힘들면 가끔 한다. 나름 재밌다.


난 어렸을 때 내가 만든 이런 영법들을 연습해보고 싶었고 선생님과 토론해 발전시켜보고 싶었다. 시간을 재고 종목에 맞춰서 수영을 하는 것은 자유를 추구하는 우리들에게는 너무 지루하고 뻔한 수업이었다. 마치 여기 이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에 나오는 폴이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들만의 리듬을 찾고 싶었다. 



So my brother and I learned to cast preposterous style on a metronome.
He began each session with same instruction.
Casting is an art that is performed on a 4 count rhythm between 10’o clock and 2’o clock.
He had had his way nobody who did not know how to catch a fish would be allowed to disgrace a fish by catching it.


I then saw something remarkable.
For the first time, Paul broke free of our father’s instruction into a rhythm all his own.
He called it a shadow casting, keeping his line above water long enough and low enough to make a rainbow rise.
And I realized that in the time I was away, my brother had become an artist.


At that moment, I knew surely and clearly, that I was witnessing a perfection.


그 세명의 사내들이 각자 잡은 송어를 내놓으며 크기를 비교했을 때 폴의 송어는 아버지의 것을 이기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 중에 확실히 낚시꾼의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단연 폴이었다. 그는 진정 낚시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 누구도 잡지 못했던 큰 송어를 낚아채기 위해 급기야 험한 물살에 몸을 던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노먼은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것 같았다"라고 되새긴다. 자유롭게 도전적으로 낚시를 즐기는 폴의 모습은 내가 수영이란 운동을 바라보는 모습과도 같다.


수영을 하면서 옥시전의 세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무중력의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일지도 모르겠다. 무중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물속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옥시전의 세계에서 새로운 하이드로진의 세계로 다이빙을 할 때면 마치 다른 새로운 행성으로 순식간에 WARP한 것 같은 기분이다. 설레고 두근거린다. 그리고 다시 고요해진다. 스스로 차분해지는 것도 느낀다.(equable, composed, tranquil, serene, placid, calm feelings) 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물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물을 비집고 헤쳐가며 나아가지만 점점 힘이 들면서 물과 같이, 물에게 의지해가며 나아간다. 그리고 그러다 지치면 스타트 레인에 서서, 반은 옥시전, 반은 하이드로진의 세계에 담가둔 채로 가쁜 숨을 내쉬며 눈앞의 두 세계를 조용히 관망한다. 그런 신나고 벅찬 느낌에 계속 수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Health Benefits


작년 여름 이후로 헬스를 그만뒀다.

한동안 열심히 했을 때는 단백질 보충제를 먹으며 몸무게를 5키로까지 더 늘렸던 적도 있었다. 제대 후 피티를 잠깐 받으며 일단 몸을 키우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는 트레이너의 말에 닭가슴살을 과하게 먹다가 체해서 고생한 적도 있었다. 나도 어느 누구처럼 몸을 크게 키워서 몸짱이 되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십대 후반이 되니 그렇게 웨이트를 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아는데 내 체형에는 우락부락한 근육이 어울리는 체형이 아니였다. 강도를 무리할 정도로 높게 하여 웨이트를 든다는 것이 억지스러웠다.


이제는 무조건 편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운동이든, 인간관계든, 사랑이든, 음식이든, 옷 입는 것이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몇개월동안 운동을 안하니 몸이 뻐근해졌다. 그래서 올해 일월부터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장에 와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뚱뚱하든 배가 나오든 적어도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수영을 다시 시작해서 지금까지 3개월 정도 꾸준히 한 나의 경우, 수영을 하니 어깨와 목의 결림이 많이 사라졌고 손목과 발목의 관절 근육이 많이 좋아졌다. 접영을 많이 하면서 척주 기립근도 꽤 자극받아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에 뻐근한 느낌이 없다. 그리고 자유형도 많이 하니 날개뼈 쪽의 등근육도 많이 자극 받았다.


수영은 유산소 운동도 되고 무산소 운동도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말이 더 필요할 것 같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최대한 힘을 빼고 장거리 위주의 수영을 하면 유산소 운동을 할 수 있고 단거리 위주로 빠르게 속도를 내며 한다면 무산소 운동을 할 수 있다. 속도 위주의 수영은 생각보다 팔과 허벅지 근육의 근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웨이트와 수영을 병행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나도 웨이트의 필요성을 수영을 하며 다시 느끼게 되었다.


수영은 여러모로 좋은 운동인 거 같다. 헬스를 그만두고 대체하여 시작하였건만 매번 상체 탈의를 하고 있다보니 자연스레 그것이 자극이 되어  헬스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 박태환이나 펠프스, 쑨양 같은, 스위머들의 몸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나도 내일부터 다시 웨이트와 수영을 같이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리해서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적당히, 쉬엄쉬엄 할 생각이다. 둘다 병행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하다. 스트레칭을 많이 하고 웨이트를 하면 운동 후 근육의 질이 더 좋아진다고 들었는데 수영도 비슷한 효과가 날까?


우리가 왜 수영을 해야하는지를 실질적으로 분석한 스탠포드 대학교의 수영선수가 작성한 글(9 Good Reasons Why You Should Get in the Pool) 을 한번 읽어보자. 내가 언급한 것들 말고도 코어 근육 강화, 크로스 트레이닝(강도가 센 운동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도를 조절해서 밸런스 맞추는 것), 유연성 증가, 지구력 향상, 심장 강화, 폐활량 증가, 체중 감량, 정신 건강 등 여러가지를 간략하게 써놨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한 글은 여기있다.)


그 중에 스탠퍼드 출신답게 누구도 생각치 못한 8번 Social Outlet 이 너무 웃겨 적어본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러 나온 깨달음 같다.


Imagine meeting the man/woman of your dreams, and seeing what they look like without their clothes on for your first date! That's one benefit, at least.


한국에서도 이말이  공감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야..



그래서 결론은!

모두들 다들 렛츠 스윔.

오늘도 수영하기 참 좋~은 날씨다.  





P.S. ) 이 글이 왜 하루만에 갑자기 떴을까 궁금해하던 찰나 오늘 정지우 감독의 <4등>이 개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글의 앞부분에서 하고 싶었던 메세지와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평도 좋은 것 같아 한번 보고는 싶다. 분위기는 엄격했어도 참고로 난 저렇게 수영코치가 폭력을 휘두르거나 체벌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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