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절반을 채운 하얀 네모 상자. 우리는 매일 이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함께 일하는 상사동료 후배는 물론 마주친 적 없는 클라이언트, 옆 부서의 어느 팀원, 모 사업부의 담당자까지. 나는 이따금 화면 너머에 있을 그들의 얼굴을 그려보곤 한다. 상상의 시작점은 바로 그들이 보낸 업무 메일이다.
업무 메일에는 발신자의 얼굴이 담겨 있다. 단 몇 줄의 문장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과 태도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된다. 불필요한 수식어 없이 핵심만 담긴 메일을 읽으며 ‘참 효율적인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거나, 꼼꼼하고 정중한 문체에 ‘세심하고 배려심이 깊은 분이네’하며 감탄하기도 한다. 때로는 차갑고 무뚝뚝한 문장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따뜻한 안부 인사 한 줄에 미소 짓기도 한다.
업무 메일 속 따뜻한 한마디가 관계의 온도를 높여준 경험도 있다. 기사 게재 이후 ‘기사 너무 잘 읽었어요. 우리 사업부의 자랑이 될 거예요’라고 답장을 보내온 담당자의 어느 메일. 형식적인 인사일 수도 있지만 내겐 그 한 줄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1년 뒤, 취재 현장에서 메일의 주인공을 만났을 때, 글에서 느꼈던 다정함은 실제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 만났지만 그는 이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친근했다.
반면, 예상치 못한 인상이 메일을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늘 유쾌한 웃음을 머금고 인사를 나누던 모 사업부 팀장님이 메일을 통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 적이 있다. 취재 협조를 부탁했던 모 브랜드 담당자가 보낸 딱딱한 거절 메일에 대한 답장이었다. 겉보기엔 정제된 조언처럼 보였지만, 문장 사이에 숨은 불편한 기색이 고스란히 읽혔다. 그분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날 메일 속에서 낯선 표정을 마주했다.
우리는 글을 통해 소통하지만, 실은 글에 담긴 상대방의 얼굴과 대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얼굴은 종종 실제 모습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수많은 이메일이 오가는 복잡한 업무 환경 속에서, 메일은 단순한 정보 전달의 도구를 넘어 그 사람 자체를 대변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쓴 메일은 사람들에게 어떤 얼굴로 다가가고 있을까?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나의 어떤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까? 바쁜 일상에서 무심코 써 내려간 나의 글이, 혹 상대방에게 차갑거나 무례한 얼굴로 비치진 않았을까?
글의 목적은 대화다. 하지만 글쓰기란 단순한 대화를 넘어, 나라는 사람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가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단순히 ‘업무’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향한 배려와 존중, 그리고 진심이 담겨 있다.
editor 빈
언론사 기자와 사보 에디터로 6년간 일하며 살아있는 목소리가 담긴 콘텐츠를 만들어왔습니다. 서울을 탈출하고픈 30대 여성의 싱글라이프를 기록하며 일상 속 스쳐가는 생각과 감정들을 붙잡아두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