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선배병을 버렸다

by 루바토 노트


회사 생활 2년차, 드디어 첫 후배가 생겼다. 업무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각자 맡은 일만 잘하면 됐었다. 동기들과 ‘오늘 점심은 뭐 먹지?’를 고민하거나 상사 눈치를 보는 게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후배 채용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고, 회사 차원에서 공식 사과를 해야 할 정도로 일이 커졌다. 당시 편집장의 권한은 박탈되었고, 동기들은 각자 후배 한 명씪을 데리고 계열사로 뿔뿔이 흩어졌다. 선배도, 리더로 없이, 나는 그저 입사 3년 차의 미숙한 사원으로서 홀로 남겨졌다. 후배와 어떻게 일해야 할지, 어떻게 지내야 할지 배운 적 없는 상황에서 막막함이 밀려왔다.


당시 나에게는 두 개의 마음이 공존했다. 후배와 업무적으로든 감정적으로도든 잘 지내고 싶은 마음. 또 다른 솔직한 마음은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떠밀려 온 부서에서 후배와 둘이서 꿋꿋하게 인정받는 직원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 선배가 된 나는 미숙했고, 사회생활이 처음인 후배는 답답했다. 나는 후배에게 습관처럼 반복하던 말이 있었다. “Y씨, 여기는 학교 동아리가 아니에요. 회사라는 걸 명심하세요.”


메일에서 수신과 참조에 누구를 넣어야 하는지 설명해줬는데 왜 뒤죽박죽인지. 첨부파일은 왜 그렇게 항상 빼먹는지. 다른 부서와 미팅하면서 왜 멋대로 할 수 있다고 본인이 결정하는지. 후배가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나는 솔직하게 피드백하지 못했다. 결국 밀려드는 업무와 후배의 실수를 처리하기 위해 혼자 야근하며 끙끙 앓기 일쑤였다.


이러한 일이 여러 번 반복되던 어느 날, 후배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후배는 침묵을 깨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는 직장생활에 안 어울리는 사람 같아요….”


나는 후배에게 물었다.

“Y씨는 이 일을 왜 해요?”


후배의 대답에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음……선배님한테 이쁨 받으려고요.”


거리 한복판에서 나는 멈춰 섰고, 후배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게 이유라고요? 하(깊은 한숨) 제발 그만 좀 해요.!!!!!”


후배의 한마디에 꾹꾹 눌러 참았던 내 안의 두려움, 분노, 불안의 정서가 터져 나왔다. 기댈 리더도, 선배도, 동료도 없는 회사에서 버거웠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리고 좋은 사람인 척하며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착한 선배’ 병을 버렸다. 후배에게 선배는 불편하고 어색한 거리가 있는 사람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선배의 역할을 다시 정립했다. '후배가 일을 잘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


회사에서는 하기 싫어도 꼭 해야만 하는 임무가 있고, 후배에게는 단순하게 업무를 지시하고 실수할 때는 솔직하게 지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피드백하는 것도 요령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직무 스킬 관한 책이나 글을 많이 읽고 실제로 적용해보기 시작했다. 업무 중에는 솔직하게 피드백하되, 업무 외 시간에는 따로 밥이나 커피를 마시며 후배의 마음을 들여보다는 노력을 했다.


10년여 간 조직에 몸 담는 동안, Y 후배는 나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일한 후배가 되었다. 후배는 출산과 육아휴직을 거쳐, 육아에 더 전념하기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 회사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날, 내게 작은 선물과 함께 편지를 건넸다.


어디로 튈지 몰랐던 자신을 붙잡아주고,

선배에게 일을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그 편지는

미숙했던 나를 '선배'라는 이름으로 한 뼘 더 자라게 했다.





editor 여

글 쓰는 일로 10년을 일했다. 대기업 에디터이자 홍보팀 파트장으로, 1,000여 명을 만나 기록하며 동기부여를 얻었던 10년 커리어가 2025년 잠시 멈췄다.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제 아이와의 만남으로 시작된 새로운 챕터 속에 성장과 동기부여를 기록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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