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친구 사귀는 거 아니라는 말을 왕왕 듣는다. 나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함께한 동료와의 관계에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는 다른 결의 돈독함이 깃든다. 같은 어려움을 겪어보고, 직장과 일을 대하는 가치관을 공유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가깝게 지내던 선배와 같은 회사 인턴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와 선배는 아주 끔찍한 상사를 만나게 됐다. 매일 이어지는 도 넘은 인신공격과 학대 속에서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하루하루 썩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추운 겨울 새벽 취재 현장에 나가 있던 우리는 극한의 추위와 밀려오는 졸음을 참아내며 릴레이 기자회견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몸은 녹초가 됐지만 신경은 잔뜩 날이 섰다. 그러던 중 사소하게 건넨 말 한마디가 화근이 됐고, 감정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나와 선배는 분노와 추위로 몸을 바들바들 떨며 한참을 싸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많이 지쳐있다는걸. 누적된 스트레스와 예민함이 가장 편하고 가까운 사람을 향해 표출되고 있다는걸. 우리는 한기가 맴도는 건물 비상계단에서 양손을 꼭 붙들고 울며 화해했다. “우리 이럴 때일수록 서로 더 의지하고 보듬어줘야 해, 화를 낼 게 아니라.”
인턴 이후 선배와 나는 한층 더 가까워졌다. 강의 끝나고 어디 놀러 갈지, 점심 뭐 시켜 먹을지만 고민하던 사이에 진득한 전우애가 생겼기 때문이다. 선배는 내게 ‘그때 보호막이 못 되어줘서 미안했다’며 대학 생활 내내, 졸업 후 수년이 지난 뒤에도 나를 살뜰히 챙겼다. 나도 선배를 생각하면 늘 고맙고 짠하다.
4년 가까이 일했던 잡지사에서는 은인 같은 선배를 만났다. 바깥에선 취재원들에게 치이고, 안에서는 마감과 실적 압박에 치이던 나는 입사 2개월 만에 퇴사를 고민하게 됐다. 머리가 복잡해진 후로는 직원들과 다 같이 먹는 식사 자리에서 입을 열지 않았고, 사무실로 돌아갈 때도 동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나의 방황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맞은편에 앉은 한 선배였다. 모두가 좋아하고 따르던 그 선배와 나는,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잘 통했다. 퇴근 후 수많은 술자리를 함께하며 관계를 유연하게 풀어가는 법, 대화하는 방식, 사람과 일을 대하는 자세까지. 나는 모든 걸 선배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퇴사 후에도 선배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그러나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직장에서처럼 서로를 ‘기자님’이라 부를지, 아니면 새로운 호칭을 써야 할지였다. 그때 선배가 말했다.
“우리 그냥 그대로 ‘기자님’이라고 해요. 같이 일했던 시절을 계속 기억하고 싶거든.”
선배와 함께한 잡지사에서의 4년은 참 다사다난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늘 사람에게 시달리고 데이고 실망했지만, 사람을 통해 치유받고 감동 받았던 날들이기도 했다. 힘겹게 버텨내던 이 시기도, 선배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내 인생에 꼭 필요했을 감사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함께 일한 동료와의 인연은 가족이나 친구와는 다른 차원의 끈끈함을 지닌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그 과정에서 함께 부딪히고 견디며 얻은 시간들이 우정과는 또 다른 결을 만들어낸다. 이들과 함께한 기억 역시,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고 오래도록 내 삶에 남아 있을 것이다.
editor 빈
언론사 기자와 사보 에디터로 6년간 일하며 살아있는 목소리가 담긴 콘텐츠를 만들어왔습니다. 서울을 탈출하고픈 30대 여성의 싱글라이프를 기록하며 일상 속 스쳐가는 생각과 감정들을 붙잡아두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