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0. 인트로
1. 연애, 격렬한 감정으로의 입장권
우리는 다양한 존재를 통해서 감정을 느낀다. 문득 아침에 '오늘 방이 유난히 춥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의 원인은 고장 난 '보일러', 유난히 차가운 '바깥 온도', 나도 모르게 새벽 이불을 걷어차게 만든 누군가와의 언짢았던 ‘기억’ 일지도 모른다. 즉, 오롯이 내가 주도한다고 생각한 감정은 바깥의 존재가 결정하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희로애락을 선사하며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존재는 연인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연인 사이의 갈등을 상반된 방식으로 묘사한 두 작품이 있다.
2. 로코코 느낌의 첫인상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섬세한 묘사로 삼각관계에 놓인 이들의 감정을 풀어낸다. 이는 흡사 로코코 양식의 회화작품이 주는 인상과 비슷하다. 그런 양식이 내포하는 기교적 특징에는 취향이 없기에 작품에 몰입하는 것이 힘들었다.
책은 30대 후반 여성인 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관계의 권태기를 느끼고 있는 2살 연상의 로제이다. 14살 연하인 시몽은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폴에게 구애한다. 삼자관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폴과 시몽의 연애 이야기였다.
3. 젊음은 영원을 원하지만
시몽과 폴만큼의 나이차이는 아니었지만, 나도 꽤 연하의 연인이 있었다. 그녀는 시몽처럼 젊었고, 관계의 시작에 주저함이 없었으며, 항상 자신의 감정에 확신이 있었고 시몽이 폴에게 으레 읊조린 '영원'이 담긴 상투적인 표현도 자주 사용했다. 그때 너무 많이 ‘영원히’라는 부사를 들어서인지, 그 단어가 담긴 문장이 이제는 좀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폴은 자신이 늙었다고 자책하며 한창 피어나는 꽃과 같은 시몽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끊임없이 고민한다. 관계의 기승전, 그리고 결에서조차. 나 또한 그녀와의 관계를 시작하는 것부터 주저했다. 보통의 나였다면 관계가 가져다줄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했겠지만, 이 만남의 끝은 나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비극적 결말일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그리고 이별에 직면했을 때, 내가 했던 말은 폴이 아파트를 떠나는 시몽의 뒷모습에 외친 대사와 비슷했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p.237)"
4. 넌 직진해, 난 머물러야 해.
난 그녀에게 "너와 나는 삶의 템포가 맞지 않아. 너는 앞만 보고 일직선으로 달리고 싶은 나이지만, 나는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무거워졌어."라고 말했다. 나이 차이는 신체적 노화가 누군가에겐 빨리 시작됨을 뜻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그것)이 어떤 속도로 나가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내가 그녀의 나이 때는 중고차를 구매해 북중미 여행을 했지만 삼십의 중반을 넘긴 지금은 소유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존재이다.
나와 함께라면 그녀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걸린 스포츠카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고, 좌절하며 그녀의 인생, 나, 그리고 예전의 추억이 오염되기 전에 그녀를 떠나야만 했다.
시몽과 헤어지고 폴은 다시 로제와 결합하지만, 로제는 헤어지기 이전과 똑같다는 것을 암시하는 문장으로 책은 끝난다.("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좀 늦을 것 같은데…"(p.237)) 이러한 관계의 반복을 폴은 견딜 수 있을까? 나는 결국 다시 이별하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헤어진 연인과 다시 결합하고, 이전과 같은 이유로 영영 갈라선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떠오른다. 법의 최종목적은 죄인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어, 사회의 올바른 구성원으로 갱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연애에서는 두 번째 기회는 다시 두 번의 이별로 돌아올 뿐이었다. 이별의 원인인 사람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5. 꾸미지 않은 우직한 분노의 연속
영화를 이야기하자면, 맬컴과 마리는 사실주의 화풍을 담은 쿠르베의 <돌을 깨는 사람들>과 그 무드가 비슷하다. 어떠한 미적 표현도 없이 노동자의 모습을 담당하고 건조하게 담아낸 그림처럼, 이 영화는 흑백 톤으로 두 연인이 터뜨리는 감정의 활화산을 쉼 없이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영화가 흑백영화라는 것이며, 이것이 나는 연인의 감정싸움이 지니는 색깔과 일치한다고 본다. 연인 간의 감정싸움의 목적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애초에 달성 불가능하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속담의 존재가 그를 증명한다.) '네가 잘했냐? 내가 잘했냐?'로 축약할 수 있는 그 주제의 성질은 이분법이며, 서로를 헐뜯는 동안 누군가가 상대방의 도덕적, 관계적 우위를 인정하는 한마디(보통은 "내가 잘못했어.")가 나와야지만 그 다툼은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맬컴과 마리는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맬컴은 약물중독자였던 마리의 과거, 배우로서 무능함, 자신이 바람피운 상대방과의 경험을 자세하게 묘사하며 마리의 눈물샘을 터뜨리고. 마리는 맬컴이 이야기꾼으로서 갖는 가장 큰 약점, 독창성의 결여를 지독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이전 남자친구와 비교를 하며 남자친구이자 예술가인 한 남자에게 언어적 구타를 가한다. 그리고 마리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서로 뜨거운 스킨십을 나누다가 어느새 다시 싸우고 애정행각을 반복한다.
6. 이해대신에 존중해 줘. 그런데 어떻게?
나는 연인과의 싸움을 회피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처럼 '속을 게워낸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모든 감정을 쏟아부은 경험은 많진 않다. 생각해 보면, 그러한 싸움이 발생했을 때의 서사적 흐름은 이 영화와 비슷한 듯하다. 그리고 오히려 싸우기 전보다 그 사람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됨에 감사하며 서로 웃었던 적도 있었다.
극 중에서 맬컴은 마리에게 "약물 중독자였던 과거, 그리고 너의 단점들을 모두 사랑해.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너를 만든 거니까."라고 속삭이는데, 이는 내가 연애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다.
나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존중하는 연애를 이상향으로 여긴다. 나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상대방은 거의 30년 이상 나 없이 독립적으로 살아왔다. 서로를 바라보면 심장이 요동칠 정도로 좋지만, 나는 그녀의 평생에서도 정말 일부만을 같이했을 뿐이며, 둘 사이에는 생활양식, 사고방식, 가치관적 측면에서 다른 부분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서로에게 외계인과 같으며, 상대방은 자신만의 경험과 기준을 근거로 이해할 수 없는 커다랗고 위대한 존재라는 상징성을 갖게 된다.
달에 인류의 족적이 남겨진 이후로, 셀 수 없을 정도의 행성과 우주의 특성을 발견했지만, 인류가 우주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그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인생이란 수많은 경험과 서사가 구성하며, 이는 인간이라는 신성하고 복잡한 우주의 근간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섣불리 이해하려 할수록 결국 커다란 오해의 해일만이 그 사이를 덮칠 뿐이다.
7.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나에게 연애에서 필요한 존중이란 상대방의 존재, 그 자체를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빚어낸 자양분은 그녀가 생각하는 자신의 단점, 잊고 싶은 실패와 과거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녀를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바꿀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하나뿐인 걸작이며, 그럼에도 스스로 자신이란 작품을 끊임없이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맬컴과 나의 오묘하게 비슷한 연애관이 격렬한 사랑싸움의 원인일까? 그러나 본질이 다른 두 우주가 서로 결합하기 위해선 빅뱅에 필적하는 폭발이 선행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연인의 싸움은 성장통과 같다.'라는 문구를 신봉한다.
두 작품을 통해 돌이켜 본 지금까지의 연애는 도입부는 신성하고, 본론은 쓰디쓰고, 결말은 지루한 두꺼운 역사책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하는 감정적 행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어이없을 정도로 짧고 유한하다. 100세 인생에서 내가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존재할까? 그러니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여, 오늘부터라도 사랑하고 싶은 존재를 찾아보자. 그리고 그와 나누는 공기의 달콤함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