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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촌네글다방 Mar 25. 2024

소멸의 방법론: 난 어떻게 죽고 싶을까?

감상문


0. 인트로

소개글: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소개글: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1. 할아버지는 기와지붕 아래에서

 초등학교때부터 고3까지,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나, 누나로 구성된 대가족이었다. 할아버지는 32년생치곤 꽤나 정정하셨다. 한국전쟁을 미군 통역장교로 참전 하셨던 할아버지는 모국어, 영어, 일어에 능통하셨다. 나는 그 수혜를 톡톡히 받았다. 할아버지께 엄하게 조기교육을 받은 탓인지, 지금까지 영어로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으니까. 그분의 취미는 낚시였다. 날씨가 좋을 때면 낚싯대를 메고 혼다 오토바이에 올라타 국도를 달릴 정도의 마니아셨다.


  언제부턴가 그분은 아프셨다. 대학교 학기를 마치면 집에 내려와 가족과 같이 지냈다. 한 번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동네병원을 간 적이 있다. 그때 할아버지는 걷는 것도 힘들어했으나, 담배가게 수준의 동네 내과에 가서 약만 타왔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어느덧 난 30살이 되었고, 회사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었다. 따르르릉. 엄마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 속 엄마의 목소리는 침울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전 날밤에, 할아버지께선 평소와 다름없이 이불속에 몸을 뉘이셨더란다. 그리고 당일 아침 7시 30분경, 식사하시라는 엄마의 한 마디에 미동도 없이 이불속을 지키고 계셨다더라. 그때,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괴롭힌 병이 전립선암이었다는 것과 수년간 항암치료를 거부한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그분은 기와지붕 아래의 안방 바닥에서, 일상적인 죽음을 맞이하셨다.


2. 외할아버지는 흰색병실 안에서  

  외할아버지는 유교학자에 농사꾼이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으셨다. 당시에 7명이나 되는 외가 친척들의 효심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자식들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외할아버지는 생명을 연장의 꿈을 등에 짊어 지시고 서울의 유명 병원에서 수술 및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당시에 외삼촌의 요청으로 병실 간호를 한 적이 있었다. 가까이서 본 그분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지역에서 유명한 유교학자에 대쪽 같은 성격, 몸은 말랐지만 목소리는 범 같았던 그분의 육체는 한 손으로 쥘 수 있을것처럼 말랐고, 눈에 서려있던 강직한 학자의 총기는 썰물처럼 빠져 나간지 오래였다. 길어지는 항임 치료로 머리카락은 이미 존재를 감췄고, 밥을 넘기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한 번은 그분의 면도를 해드린 적이 있었다. 따뜻한 물을 분홍색 대야에 담아서, 충분히 수염을 불리고 면도기를 따뜻하게 데웠다. 쓰걱쓰걱, 면도기에 썰려 나가는 수염에 집중하니 그동안 지나쳤던 그분의 비쩍 마른 얼굴이 유달리 선명했다. '외할아버지는 스스로 선택 하셔서 이러한 고난을 견디시는 건가? 아니면 자식들이 원해서 인가?'라는 질문이 머리에 스쳤다.


  하지만 그 질문의 답을 찾진 못했다. 그분은 병실 침대에서 호흡을 멈추셨고, 그의 육체는 순식간에 영안실 안의 차가운 철제 침대로 옮겨졌다. 울진 않았다. 이미 그곳엔 슬픔과 눈물, 그리고 절규가 넘쳐흘렀으니까. 굳이 내 것까지 더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에 '이제는 진짜로, 편히 쉬세요.'라는 소리 없는 인사만을 전해 드렸다.


3. 두 할아버지의 질문: 너는 어떻게 죽을래?

  비슷한 원인,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맞이한 죽음. 두 분의 사례를 맞이한 뒤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뇌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선, 먼저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히 정의 내려야겠다.


  나에게 '인생'이란 '강제된 의무'와 동의어이다. 수정, 착상 및 출산에 이르는 과정에서 의견을 행사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삶이란 엄청나게 무거운 의무이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일까? 신체적 행동의 측면에서 보자면, 숨을 쉬는 게 삶이고 멈추는 게 죽음인 듯하다. 개념적 측면에서 생각하면 삶은 강제적으로 지켜야 하는 의무만을 던져 주지만, 죽음은 순수한 나의 의지로, 그것을 맞이하는 과정과 모양새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듯 하다.


  이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지를 수 년간 고민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중에서 점점 '어떻게'에 집중하게 됐다. 나의 소멸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 과정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심리적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해답을 찾을 순 없었다. 무릇 해답이란 시도와 실패를 양분으로 삼는데, 죽음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자연현상이지 않는가?


  이번에 감상한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와 '딕 존슨은 죽었습니다.'가 이를 찾을 수 있는 방향선을 제시해 준 듯하다. 책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영화는 죽음을 맞이하는 부녀의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죽음을 평범한 생의 요소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습을 탐구할 수 있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주변은 지켜내야 하는 것들과 앞으로 획득해야 하는 것들이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세상이 살만한 것 같다. 예전에는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 떨쳐내고 싶은 짐이었다면, 지금은 삶이 주는 아름다운 가치중 하나로 받아일 수 있으니 말이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를 한 번이라도 웃게 했다면, 그 자체로 삶의 가치는 무한대라고 믿고싶다. 그리고 찰리 채플린의 구절을 하나 외우고 다녀야 겠다. 나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삶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할때, 자연스럽게 건넬 수 있게.


The world cannot be wrong if in this world there'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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