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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촌네글다방 Mar 18. 2024

고전주의, 모더니즘, 빈티지.

감상문

0. 인트로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소개글

#. <콜럼버스> 소개글


1. 감상 계기

모임원의 상당수가 해외여행 경험이 풍부하여 다양한 문화권의 관광지를 다녀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건축은 한 번쯤 다뤄보고 싶은 키워드였다. 운이 좋게도, 폭넓은 취향을 지닌 공지 모임원들 덕분에 <건축>이라는 키워드를 지닌 두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었다. 


2. 왜 하필 '콜럼버스'인가?

<콜럼버스>는 현대건축의 메카인 콜럼버스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케이시와 진은 우연히 마주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적당한 거리감, 안정적인 대칭구도의 샷과 여유로운 템포와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의식을 물감 삼아 그려낸다. 


영화를 보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감독이 콜럼버스라는 공간적 배경에 부여한 중요도였다. 콜럼버스가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라는 것은 주연들에게서 끊임없이 언급된다. 진의 아버지인 이재용 교수는 영혼이 깃든 모더니즘 건축의 신봉자였고, 케이시가 건축가를 꿈꾸게 된 이유는 콜럼버스의 건축물이 지닌 모더니즘의 미적 정체성에 푹 빠져있다.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도시, 콜럼버스


3. 모더니즘의 의미

여기서 영화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인 ‘모더니즘’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모더니즘은 신학과 고전주의에서 탈피하여 근대인이 갖게 된 삶의 보편적인 감각을 보여줄 수 있는 주제(신의 부정, 허무주의, 분열, 예술형태의 극단적인 부정)에 집중한다. 그렇게 근대인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학적인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가 탄생하고, 이것을 진정한 고급문화로 치켜세우는 귀족계급(작품의 가치를 매기는 평론과 영향력 있는 미술집단, 그리고 구매력이 있는 자본계층)에 반발하여 탄생한 시류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다.


4. 가족, 극복하고픈 고전주의

이러한 면을 본다면, 모더니즘의 본질과 케이시와 진이 가진 딜레마의 결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가지는 딜레마는 고전주의(1세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에서 출발한다. 케이시는 건축학을 공부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열정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 문제와 약물중독으로 어려움을 겪은 엄마의 회복을 위해서 그것을 포기한다. 그렇게 케이시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성취하기 위해서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다. 모더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근대성의 발현이란 점에 비춰본다면, 케이시에게 어머니는 고전주의이다.


진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다. 진의 아버지는 유명한 건축학 교수이지만, 가족에게는 소홀했던 모양이다. 진은 그러한 아버지를 경멸한다. 아버지가 묶었던 방에서 그가 쓰던 용품의 위치를 옮기는 등의 행위도 하지 않으며 아버지와 엮이고 싶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렇게 진은 그의 아버지가 회복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희망하는 듯이 행동한다. 진에게 아버지는 벗어나고픈 그림자이며, 모더니즘이 극복해야 하는 고전주의이다.

이들에게 가족은 고전주의, 극복의 대상이다.


5. 융화의 의미를 깨닫다

그 과정에서 케이시와 진은 콜럼버스에 위치한 모더니즘 건축물(퍼스트 크리스천 교회, 어윈 콘퍼런스 센터, 콜럼버스 시청사 등)을 탐구한다. 어윈 콘퍼런스 센터는 벽돌, 돌을 이용하여 권위적인 느낌을 풍기던 기존은행 건물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미국 최초로 전면에 유리를 사용한 은행 건물이라는 특징에서 보듯이, 유리를 통해 내부와 외부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끔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전 건물과는 다른 기법과 재료를 사용했기에 아름다운 모더니즘 건축물로 불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 속 건물이 모더니즘의 정수라고 칭송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위치한 공간과의 조화를 깨트리지 않고 융화를 이룸으로 그 공간을 사용한 현대인에게 삶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레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건물에서도 동일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자신들이 벗어나고자 했던 구시대의 유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삶을 개척해 나간다. 진은 아버지의 간병을 위해 미국에 머무를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케이시는 좀 더 엄마를 믿고, 자신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건축학 공부를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모더니즘이 근대인이 지닌 내면의 신비로움과 중요성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고전주의와 르네상스 시대가 그러한 아이디어를 주었기 때문이다. 케이시와 진도 그와 비슷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닐까. 


6. 근대인을 위한 건축의 방향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저자는 올바른 모더니즘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바로 ‘그 시대의 수요와 기술에 가장 맞는 건축을 하는 것이 가장 한국적인 건축’이라는 대답으로 말이다. 건축물은 모더니즘이 핵심요소로 삼는 근대성을 갖춤과 동시에 그 시대와 공간을 누리는 현대인들이 사용할 때 의미가 있다. 수요에 알맞은 건축물이라는 것은 바로 시대정신에 어울리며 공간이 지녀야 할 기능성을 지녀야지만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일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재료와 공간적인 장점을 활용하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건축기술이 탄생하였음을 알려준다. 건축물의 재료는 통상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고, 자연 기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건축물을 지었기에 각 문화권의 거주 형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건축물은 그러한 사항을 고려한 결과물로 보인다. 건축가들은 과거-현재-미래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건물을 지은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한 모더니즘 작품에게 시간은 노화의 원인이 아니다. 현시대에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멋스러운 빈티지가 되기 위한 양분이었던 것이다. 내 주변에도 그러한 건축물이 있는지, 나라는 사람이 그러한 빈티지함을 풍길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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