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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Apr 10. 2024

진짜 중요한 것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과 얼굴의 간극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지갑이 책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 지갑 주인?"

" 제거요"


"왜 지갑이 여기 있어?"

"친구 00 한테 팔려고요"

"왜?"

" 담배값이 없어서요..

아이는 전혀 스스럼없이 당당하게 대답한다.


이럴 때 교사는 어떤 반응을 하는 게 옳을까? 아니 좋을까?

나는 시간이 지난 후,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는 반응을 하지 말걸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반응했다.


"얼마에 팔려고"

"만원이요."

"차라리 당근에 팔지 그래?"

"만원보다는 더 받을 수 있을 텐데.."

"당근 정지 당했어요."

"왜?"

"당근에 사람들이 원하는 거 주문받아서 그림 그려줬는데

신고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정지당했어요."


"아 그래? 그런 경우가 있구나."

"그럼 한옥마을에서 관광객들 캐리커쳐 같은 거 그려보는 건 어때?"

"귀찮아요. 이것저것 준비하고 사야 되고.."

나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아이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아이는 자기 만의 돈을 버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스쳤다.

' 미성년자가 담배를 사기 위해 나는 도와주는 사람인가...'


한 달 전 첫 만남, 그 아이는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다.

정확하게는 자신의 과거를. 그리고 아이는 절실한 눈빛으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시 나는 적잖은 놀라움과 내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이해하기 어려움을 느꼈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큰 일 있은 듯 반응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아이를 비난하거나 심판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님의 상황, 현재의 처해있는 상황, 아이를 다 각도로 유심히 바라보면

아이의 선택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보였다.  미성년자인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적었고

주변에 함께 어울리는 이들에게 쉽게 휩 쓸릴 수 있기에 아이의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했을 수도 있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파 헤치기보다 나는  아이가 미래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나아가는 길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했다. 함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 좋아하고 현재 입시학원을 다니면서 미대 진학을 꿈꾸고 있는 아이에게 꾸준히 그림 그리는 작업에 몰두하고 그림에 감정을 담아보라고 했다. 너만의 것을 그리는 날에는 꼭 전시하자고.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첫 만남이 강렬하고도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지만, 나는 그 아이가 경험한 아주 작은 일부만 들었을 뿐 완전한 이해와 공감을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아이는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음이 굳게 닫혀있거나 상처와 아픔으로 오랫동안 굳어져있는 사람들은 다시 마음을 열고 말랑 말랑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애정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를 온전히 믿어주고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뢰와 안전감이 바탕이 되었을 때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을 테니까.


적극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거침없이 말하는 아이는 수업의 분위기를 자지 우지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의욕이 없고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이다. 나의 반응에 따라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편이다. 너무 과하지 않게, 너무 가라앉지 않도록 텐션을 유지하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아이들의 반응과 기분과 감정을 살피며 먼저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업을 하다 보면 감정이 정화되지 못하고 고여있다가 수업이 마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수업 초반에 담배 값을 벌기 위해 지갑을 판다는 아이는 수업 내내 금단현상인지 불안과 초조함을 교실 내에 스멀 스멀 뿜어냈다. 평소보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수업의 흐름이 끊기고 튕겨 나가는 듯 했다. 여러분 말이 었다.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와 행동이 나를 유난히도 거슬리게 했다. 최대한 반응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를 썼다.


"배고파요"

"선생님 쉬어요"

"쉬는 시간 없어요?"

"아 지루해"

.

.

.


"아 답답해"


감정카드로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 들여다보기,


아이들에게 감정 카드를 뽑아보아서 감정을 그려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설레면서도 불안하고 귀찮으면서도 신나고 뿌듯하면서도 기쁘기도 했다.

그렇게 동시에 여러 감정을 느끼며 괜찮은 듯 괜찮지 않은 듯, 버티면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 듯했다.



영어 시간에 왜 감정 나누기를 하냐고 아이들은 묻지는 않았지만 영어가 입 밖으로 한마디라도 나오기 위해서는 내가 틀려도 된다는 자신감과 상대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마음이 먼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내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을 때, 내 감정을 나눌 수 있을 때, 영어는 언어로써 소통의 수단이 되고 활용될 수 있으니까.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도 있었고, 긍정하듯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아이도 있었고, 관심 없는 듯 딴짓을 하는 아이도 있었고, 온몸으로 지루함을 표현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고 마음을 들여다보면 가끔 버퍼링이 걸릴 때가 있다.

내가 상대의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한 버퍼링일 수도 있고, 내 마음에 감정이 물들어서 일렁거림일 수도 있고, 일렁거리는 마음을 다시 고요하게 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이 때때로 다르게 반응하고 작용한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아이의 감정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고 변화하는 것이며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간에는 지루한 듯 무심한 듯 무표정이었던 아이가 오늘은 살짝 미소 지으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며 뿌듯하다고 감정을 표현했고, 항상 적극적으로 자신감 있게 영어를 하던 아이가 오늘은 잔뜩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못마땅하듯 나를 쳐다보았고, 무기력해 보이고 피곤해 보이는 아이는 의외로 설레고 즐겁다는 감정을 표현했듯이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마음을 나눴다고 가까워진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아이들이 아이들의 길을 걸어가듯, 나는 내 길을 걸어가며 감정에 물들거나 흔들리거나 주저앉지 말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분과 감정을 선택하며 긍정적이고 건강한 에너지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문득 나는 요즘 어떤 표정을 자주 짓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저는 전주에 소재하고 있는 청소년 대안학교 <괜찮은 학교>에서의 아이들의 생각과 질문과 감정 나누기를 통해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행,영어> 수업을 맡고 있는 교사 쉘위 입니다. 교실 안에서 소화 시키지 못한 감정과 생각을 한발짝 떨어져서 숨을 고른 후  여러 각도로 바라보며 아이들과 제 자신을 보다 깊게 이해 해보기 위해 글을 써내려갑니다.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있는 교사들이나 청소년 상담을 지도하고 계시는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지혜와 경험을 나눠주세요. 괜찮은 학교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에 연재 됩니다. 여러분의 응원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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