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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Apr 03. 2024

남들과는 다른 우리들의 자기소개

I AM NOT FINE. AND YOU?

입학 신청은 해 놓고 몇 주간 결석을 하던 친구가 드디어 등원을 했다. 그리고 지난주에 만난 한 친구는 결석을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자퇴를 했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가 들어왔다. 그렇게 3월 한 달이 지났고 꽃샘추위도 끝났고 봄이 왔다.


오늘 아침 학교 가는 길에는 벚꽃과 개나리 꽃이 활짝 피어올랐다. 내가 사는 곳은 전국에서 가장 벚꽃이 늦게 피는 진안이다. 그만큼 다른 곳 보다 기온이 낮고 춥다는 이야기다. 버스로는 30-40 분 거리에 있는 학교로 출근을 하지만 시골에서 도시로, 겨울에서 봄으로 이동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오늘 아이들의 얼굴도 마음도 옷차림도 겨울과 봄 사이 잔뜩 황사가 하늘에 낀 것처럼 희미했고 겨울바람처럼 매서웠고 싸늘했다. 어떤 즐거움도 어떤 의욕도 어떤 싱그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도 무겁고 공기도 무겁고 입도 무거웠다.



아이들은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했고

내 질문에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시큰둥했다.



마음을 말랑 말랑 하게 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재미있게 놀거리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아이들은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며 무엇을 할 건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결국 한 아이가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 선생님 오늘 뭐 하는 거예요? "


일단 나는 오늘 색이 필요할 것 같았다. 색을 쓰면서 놀고 싶었다.


사인펜, 크레파스, 색연필 물감등을 잔뜩 꺼내서 지금의 내 마음을 그려보거나 색으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 어떤 반응이 아이들에게서 나올지 내심 걱정되었다. 의욕이 없는 아이들의 텐션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끌어올려야 된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텐션 하나하나를 조율하듯 천천히 연주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의 에너지는 과하지 않게 아이들도 숨 가쁘거나 벅차지 않게. 서로 다른 텐션을 맞춰가다 보면 어느 순간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무엇을 하기 위한 일을 하거나 무엇이 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자리에 있는 아이들이 아니기에 어떤 수행을 해야 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그날그날 각자의 기분과 감정과 텐션과 마음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며 그때그때 즉흥적이고 창조적인 직관적인 수업을 이끌어 가기로 마음먹었다.


매 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행히도 아이들 모두 MBTI 성향 중에 "P" 유형이다. 어쩌면 남들보다 조금은 자유롭고 싶고 통제받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괜찮은 학교를 선택하는 이유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다.



핸드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아이들은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핸드폰을 한쪽으로 치워두는 척을 한다. 그리고 자세를 바로 잡으며 무언가를 할 태세를 갖추려고 한다. 나는 한 시간 반 동안의 이 수업시간에는 우리 모두 핸드폰은 잠시 치워 두자고 제안했다. 반발심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아이들은 하나둘씩 핸드폰을 옆으로 밀치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과감하게 하얀 종위 위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거침없이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금 열린 틈을 타서 자연스럽게 한 주간의 일상들을 질문했고 최근 있었던 이슈들에 대해 표현해 보라고 했다.


새로 들어온 아이에게는 어떤 이유 때문에 괜찮은 학교를 선택했냐고 물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이는 고개를 들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 잠시 동안 내 눈을 응시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침묵 속에서 전달되는 아이의 무겁고 답답한 마음이 전해졌다.


나는 따듯한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며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이곳은 안전한 곳이야. 괜찮아. 나는 너를 판단하지 않을 거야. “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워서 학교를 더 이상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참지 못하고 죽도록 패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잠시 침묵을 하더니 이런 말을 했다.


“ 폭력은 어떤 것도 정당화될 수가 없다”


나는 다시 차분하게 아이에게 질문했다.

“이번 사건 계기로 깨달은 것을 이야기하는 거니?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들은 구절인 거야? “


오늘 아침 국어시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라고 했다. 아이는 산소가 부족한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느리게 숨을 내뱉으며 겨우 겨우 한마디 한마디를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이고 온 집중을 다해 입을 쳐다보며 아이가 내뱉는 말들을 짐작하며 헤아려야 했다. 바짝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 거렸다. 그런 아이가 누군가를 죽도록 때렸다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화나게 했을까. 하지만 아이는 뉘우치고 있었고 반성하고 있었고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면 폭력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는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다른 길을 가기로 선택하고 이곳에 와있었다. 더 이상 이야기가 무겁지 않게 흘러가지 않기 위해 직관적으로 이 이 아이에게는 네 컷 만화 같은 단순함과 유쾌함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한번 네 컷 만화로 스토리를 짜보겠냐고 제안하니 무거운 입술을 꾹 닫은 채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폭력의 순간들. 네 컷 만화.


3월 내내 얼굴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한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동안 학교에 올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학교에 올 수 있었냐고 물으니 밤을 꼴딱 세고 왔다고 했다. 평소 때 수면제 아니면 잠을 못 자서 잠을 자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은 담담하고 조금은 시니컬하게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흘리듯 내뱉었다.


“ 그럼 네 의지대로 잘 안 되겠네”

무심결에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아이는 보통 다른 사람들은 의지박약이라고 하면서 이게 얼마나 힘든 병인지 모르고 공감해주지 못하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갑자기 아이의 말에 가슴이 시큰거렸다.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아서.



‘사실… 나도 우울증이야..’

그 말을 내뱉는 대신 나는 과거형으로 되받았다.

“ 알지.. 그 마음.. 나도 우울증이었거든”


처음 만난 아이에게

나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아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자신은 가면을 쓰고 있다고. 남들에게는 괜찮은 척 웃고 있지만 진짜 내 모습은 웃고 있지 않다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초록색으로 보지만 내가 보는 나는 검은색이라고.



아이는 어떤 성인보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실되기 위해 애쓰는 아이 앞에서 나는 얼마큼 나를 보여 줄 수 있을까. 얼마큼 나를 보여 주는 게 옳은 것일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괜찮은 척하는 사람이 되기는

부끄러운데..‘

하지만 서로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가슴이 텅 빈 거 같고 굶주려 있는 거 같은 느낌이라는 한 아이는 자신의 마음과 현재의 감정 상태를 그림 한 장에 멋지게 담아냈다.


복잡한 머릿속. 그리고 무언가를 갈망하듯 땅 속에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맨 손으로 땅을 파며 손가락에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담담하게 아이는 내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그림을 설명했다. 

가슴이 찢기는 듯한 고통과 아픔이 느껴졌고 간절함이 전해졌다.

자유롭게 손이 가는 대로 그려본 내 마음속의 파편의 감정과 생각들.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입을 벌리는 둥 마는 둥 하며 앉아있던 한 아이는 한참 동안 하얀 종이를 바라보더니 무언가를 끄적끄적거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티브이 벚꽃나무가 있었다.


핸드폰을 왜 그렸냐고 하니까 지금 너무 핸드폰이 하고 싶다고 했다.  무엇이 하고 싶냐고 하니까 인스타가 보고 싶단다. 조금 참아볼 수 있냐고 하니까 고개를 조용히 한번 끄덕인다. 마지못해. 하지만 나에 대한 존중이 조금은 느껴져서 고마웠다. 고마운 마음에 조용히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서 내 질문에 조곤 조곤 하게 말을 이어간다. 티브이는 왜 그렸냐고 하니까 어제는 티브이를 너무 많이 봐서 눈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렌즈를 낄 수가 없어서 안경을 썼단다. 그리고 낮잠을 많이 자서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꺼내서 손이 가는 대로 그려보니 아이들의 머릿속이 보이고 입 밖으로 생각들을 꺼내고 보니 아이들의 마음들이 넌지시 보였다.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자는 게 가능하냐고 물으니까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 자기 전에 핸드폰 보지 말고 가능한 자는 곳에서 멀리 충전하고 자라고 하니까 나지막이 "네"라고 대답을 한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나와의 약속을 자기만의 언어로 적어보라고 하니 11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겠다는 다짐과 점심 먹고 나서 햇빛 쬐면서 걷기, 낮잠은 30분 이내 자겠다는 약속을 메모해 놓았다. 일단 일주일만 한번 지켜보기 위해 노력해 보라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 모두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앞이 보이지 않고 깜깜해 보였다. 깜깜한 터널 속에서 누구에게 의지하고 싶지만 의지 할 곳이 없고 기대고 싶지만 비빌 언덕이 없어서 이곳을 언덕 삼아 버티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이곳이 인생에서 넘어야 할 작은 언덕 일 수도 있고 큰 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선생님 표현으로는 이곳은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관이라고 하셨다. 제도권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 마지막 희망을 갖고 오는 곳이란다. 지금 이곳을 나가면 아이들을 앞으로 더 험난하고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아이들 저마다 갖고 있는 희망과 자신 안에 있는 열정과 꿈은 달랐지만 언제 꺼져버릴지 모르는 작은 촛불하나를 의지하며 위태 위태 새로운 길 위에 서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의지가 없는 듯이 보였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아서 답답해하고 있었고 계속되는 좌절로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과 자책은 혐오와 분노로 변해가거나 나태와 권태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게 더 많은 미성년자 시기에 분노는 당연한 거 같다. 어느 것 하나 내 의지대로 결정할 수 없거나 선택할 수 없다면 더더욱. 분노가 커지면 커질수록 무기력도 그만큼 비례해서 찾아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실망감이 클수록 내 자신이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잔뜩  부풀려서 센 척을 하고 싶거나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듯 작아져서 비하하고 포기하고 싶어진다. 



나 또한 깊은 절망감과 우울증에 허덕이고 있을 때 아무것도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불 밖을 박차고 나오는 것이 히말라야를 오르던 때 보다 더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좌절하고 자책했다. '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 ' 이것도 못하면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 내가 잘하는 게 있을까' '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지' 혼자 앉아 있거나 누워있으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고 차라리 눈을 감고 자는 게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서 잠시나마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다 가끔씩 올라오는 자살 충동이 나를 미친 듯이 괴롭혔다. 자꾸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극단적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삶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살려준 것은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공감해 주는 친구들, 위로해 주는 책의 한 구절, 그리고 나를 보며 이쁜 짓을 하는 내 앞에 아이를 보며 다시 나를 다독이고 달래고 위로하고 응원하며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향해 던지는 가혹한 비난과 질책과 평가와 판단을 멈췄다. 이불속에서 나와서 이불 정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나를 칭찬했고 아침 루틴을 새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부터 성공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기분과 에너지는 달라졌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기 위해 나 자신을 향해 건네는 칭찬과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나아질 거야."

"괜찮아질 거야"

"잘하고 있어."

"대단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나에게 해주기 시작했다.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여행이야. 무슨 일이 생기든 상관없어. 때로는 무계획으로 살아도 후회할 건 없고, 때로는 노력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수 있어. 그렇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에 내 기분은 내가 선택하고 바꿀 수 있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해보는 거야. 그러면 하루하루 조금씩 내가 변하고 성장하는 걸 느낄 거야.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세계를 넓혀가야 해.


지금 힘든 일이 나중에는 너무나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어. 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나 자신이 변하는 걸 느낄 거야. 우리는 함께 이 여정을 떠나고 있어, 서로 다른 삶의 색깔을 그려가면서 더 아름다워질 거야.


그러니까, 함께 여행을 즐겨보자. 함께 무지개가 되어가는 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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