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 유전자
이곳에는 문이 하나이다. 그 문으로 들어올 수는 있지만 쉽게 나갈 수는 없다. 심지어 이 문은 회전문이라 그 안에 갇히면 영원히 빙빙 돌게 된다.
그만 두면 그만인 것이 아닌 것이 바로 덕질이다. 왜냐하면 덕질의 유전자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덕질러들의 덕질 유전자에는 집중력과 상상력과 인내심이 뛰어나다는 특성이 있다.
운 좋게 이곳을 빠져나간다고 해도 분명 또 다른 덕질을 하고 있을 확률이 백 퍼센트이다.
최근에 뇌의 세계에 대한 책을 읽고(듣고) 있는 중이다. 내용 중 최면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최면은 우리가 흔히 알듯이 멍하니 정신이 빠져있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방의 상상력에 최대한 집중하는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없는 것도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느끼며, 상대방의 상상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덕질 역시 어쩌면 최면의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덕질러들은 덕질 대상에 최대한 집중하여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 중이기 때문이다.
동화를 쓸 때 종종 이런 최면 상태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내가 만든 인물과 공간과 사건에 최대한 집중하여 골몰하여 상상하다 보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들리며, 없는 곳이 눈앞에 보이는 착각이 든다.
그 상태에서 주인공이 하는 행동과 말을 열심히 받아 적는다. 이런 무아지경에 빠져 있다가 간신히 빠져나오면 현실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현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픽션의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다.
덕질도 일종의 상상의 세계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덕질의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고, 또 가끔은 그를 직접 대면할 수도 있고, 그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거기까지이고, 나머지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부풀어 올라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많은 감정을 만들어낸다. 집중력이 최고조로 높아지고, 그를 상상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최고조로 높아진다.
무대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집단최면의 상태에 빠진다는 말도 있다. 콘서트에서는 마치 무대 위의 스타와 나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순간적인 착각에 빠진다. 그가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것이 최면이라 할 지라도 그 황홀경에 빠져봤던 짜릿했던 경험은 잊을 수가 없다.
양준일 덕질을 하면서 한동안 그를 현실의 인물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나 행사는 계속 연기되고 취소되어서 먼발치에서라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등 화면에서만 볼 수 있었다. 이건 무슨 사이버 가수라고 해도 다를 게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행히 덕질을 시작한 지 일 년 이 조금 넘은 뒤 공연이 재개되어 실물을 보았고 실제 인물임을 인정하긴 했지만 하지만 여전히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쨌든 그는 나에게 있어서 현실의 인물은 아니니까 말이다.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연락하고 싶을 때 연락하며, 대화를 나누고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현실의 친구는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최근에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사이버 연예인들이 실제로 광고를 찍고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개인 SNS를 운영하고, 세계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올리고, 개인 생활을 공개하고...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모습과 생활을 보여준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연예인으로서, 스타로서 영상 속에서 존재한다면 현실의 인물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는 그 생각은 이런 연예인을 만들어 냈다. 그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왠지 기분이 이상하게 씁쓸하고 슬퍼진다.
양준일은 팬들을 팬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친구, 가족 같은 사람들, 자신이 설 수 있는 땅이자 부동산. 그리고 30여 년 전부터 그는 팬들을 My Queens & Kings라고 불러왔다. 그는 팬을 믿고, 존경하고, 의지하고, 존중하고 특별하게 생각한다.
최근에는 팬들을 Jenny라고 부른다.(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모자라고 부족해 놀림받던 검프에게 자기 옆 자리를 내어 주고, 항상 손잡고 다녀주던 여자 친구로 항상 검프가 그리워하고 나중에 검프에게 아들을 남겨주고 죽은...) 단짝 친구이자 평생의 연인이었던 검프와 제니와의 관계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는 친구이자 연인 같은 팬과 스타의 관계.
호칭이 뭐가 중요한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불러주고 그렇게 불림받으면 그런 존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름을 불러주자 나에게 와서 꽃이 되어 주었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이곳을 간신히 벗어난다 해도 다른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거라는, 그런 덕질의 유전자가 있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니 멀고 먼, 흐리고 흐린 비현실에 최면 당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은 오늘의 덕질에 충실하기로 했다.
잠깐이라도 누군가에게 꽃이 되어 준다면, 꽃이라고 불리워진다면... 그게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기꺼이 검프의 제니가 되고, 양준일의 Queen이 된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하고 귀한 존재가 되는 일이다. 내가 양준일 덕질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