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하루에 몇 시간 글을 써요?"
초등학교나 도서관 특강을 가면 질의응답 시간에 아이들이 꼭 묻는 질문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작가는 매일매일 책상에 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몇 시간씩 글을 쓸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나도 작가가 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답하곤 했다. "사실... 매일은 안 씁니다. 쓰고 싶을 때만 씁니다."
계획적인 무계획자인 나는 글도 충동적으로 썼다.(과거형에 주목!) 써지면 쓰고 안 써지면 안 쓴다가 나의 모토였다. 즐겁게 글을 쓰자가 나의 목표였으니까.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연수 작가 같은 사람들이 회사원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분량의 글을 꼬박꼬박 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기도 했지만 그건 그들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중 문득 돌아보니 양준일 덕질을 시작하면서부터 2년 가까이 거의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팬카페에, 유튜브에, 인스타에 그리고 일기에...
덕질 초반에는 유튜브 영상에 댓글 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바로바로 좋아요 반응이 나타나는 것도 재미있었고,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여러 영상들을 보는 일도 즐거웠고, 영상들에 댓글을 달고 댓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해서 하루 종일 유튜브에 매달려 있곤 했다.
지금 그때 글을 보면 얼굴이 화끈화끈하다. 무슨 댓글에 길고 긴 감상적 펜레터를 그렇게 장황하게 써댔는지.
그래도 유일한 소통 창구인 유튜브 댓글로 같은 덕질러들과 생각과 감상을 마음껏 나눌 수도 있고, 어쩌면 나의 스타가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성을 다해 쓰곤 했다. 그때의 감정과 생각들이 발자국처럼 남아 있어서 가끔씩 다시 돌아볼 수 있다는 점도 유튜브 댓글의 장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댓글의 그 짧은 글 안에 수많은 것이 담길 수 있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댓글에 대한 무슨 문학적 비평서? 같은 것도 있다고 듣기도 했다. 그 짧은 댓글 안에 내포 독자, 시점, 기승전결, 반전, 문체, 행과 연 나눔, 문단 나누기, 스타일,구성... 웬만한 문학이론에서 다룰 법한 것들을 다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다 댓글 작가라는 말도 나오겠다 싶기도 했고, 댓글로 배우는 창작 이론 뭐 이런 것도 가능하겠다 싶기도 했다.
짧은 글 안에 사실과 생각과 감동과 재치와 모든 걸 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걸 잘 담아낸 댓글을 보면 감탄한다. 의외로 양준일 덕질러 중에는 숨은 실력자 댓글 작가들이 꽤 많다.
양준일에게 누군가가 덕질이 무엇인지 아냐고 물었을 때 '덕질은 글을 많이 쓰는 것'이란 답을 한 적이 있다. 현답이다.
양준일이 한국에 다시 오게 된 계기는 그 댓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튜브 댓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양준일을 궁금해했고, 보고 싶어 했고, 다시 오길 희망했고, 그는 그런 팬들의 부름에 응답했으니까.
나는 덕질을 한다. 글을 많이 쓴다.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바로 글을 쓰는 일이다. 그러니 나처럼 덕질에 최적화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덕질이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 스타에 그 팬, 그 팬에 그 스타.
양준일은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오피셜 유튜브에 월요병 스트레스를 날리는 노스트레스먼데이 노래를 올려준다.
공연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피곤해서 쉴 만하다 싶은 날도 그는 어김없이 노래를 올린다. 목이 가라앉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그는 노래를 부른다.
팬들이 월요일 아침에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일주일을 힘차게 시작하라고 그는 화면이 출렁일 만큼 열정적으로 흥겨운 팝송을 불러준다.
매번 고맙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곧 보자...는 말을 남기며 손가락 하트를 날려준다.
그의 성실성과 꾸준함을 팬들도 닮아간다.
양준일 덕질을 하면서 나도 그를 닮아 점점 더 성실하고 꾸준해지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매일 글 쓰는 습관이 생겼다. 덕질의 글이 마중물이 되어 요즘엔 SF장편 동화를 꾸준히 쓰고 있다. 도저히 만들기 어렵던 습관이 저절로 생긴 것이다.
2년이란 덕질의 시간이 허투루 흐르지는 않았나 보다. 어쨌든 이전보다는 좀 더 작가다워진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꾸준히 쓰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