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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Jan 03. 2021

겨울 숲의 위로

정직한 겨울 숲 속 풍경에 대하여

해가 드니 숲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다 꽁꽁 언 듯해도 생기가 돈다. 비탈에 선 참나무 그룹이 모두 기지개를 켜고, 숲길 좌우로 자리 잡은 국수나무도 국수 가락마냥 꿈틀거린다. 아직 붉은기가 선명한 열매가 몇 알 남은 찔레나무는 찔레꽃 향기마저 날 듯하고 빽빽한 가시가 살벌한 곰딸기 줄기도 냉정하리만큼 무섭지는 않다.

골짜기를 넘어온 빛줄기가 길바닥에 떨어지면 바닥에서 온기가 올라온다. 처음에는 두어 뼘 땅에 든 빛이 금방 자라서 사람 몸뚱이 하나 정도는 비출 정도로 커진다. 하지만 이 정도 햇살로는 언감생심 언 땅을 조금이라도 녹일 수나 있을까? 그렇다고 믿자. 햇살이 얼음판을 비추는 것을 가만히 보다가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나뭇잎이 그 광선으로 광합성을 하거나 얼음이 그 열로 슬그머니 녹거나 햇살은 개의치 않고 그냥 내리 비춘다.

겨울 숲에 뭐 볼 게 있을까, 백설이 장관인 설경이라면 또 몰라도. 먼데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으로 겨울 산을 걸어온 적이 대부분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숲 속의 생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목적을 가지고 관찰을 할 때부터였던 것은 확실하다. 꽁꽁 언 땅과 물가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얼마나 되나 찾아 헤아리는 과정에서 알았는데, 이제는 제자리에서 꼼짝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숲은 겨울이 되어야 속을 내놓는다. 곱던 단풍이 낙엽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숲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마침내 속이 훤해진다. 저쪽까지 대체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던 계곡이 그야말로 백일하에 드러난다. 우뚝 솟은 나무와 크고 작은 바위, 바위들을 끼고도는 가느다란 물줄기까지 멀리서도 잘 보인다. 숨을 곳 없으니 당황스러울 텐가.

빛을 받은 겨울나무의 가지는 외로운 듯 찬란하다. 빛나는 5월의 신록이 뽐낼지언정 틀림없이 겨울 가지의 그것일 터이니 지금 내 눈 앞의 마른 가지는 찬양할만하다. 이파리 한 장도 없이 이렇게 빛나는 것은 아마도 정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본능으로 모든 것을 덜어낸 겨울나무의 가지가 정직하지 않다면 세상에 진실이란 게 있기나 할까.


그렇다고 가지가 한 조각 희망도 믿음도 없이 ‘나무막대’가 된 것은 아니다. 가까이 가 보면 나무의 모든 원기가 집합한 실체들을 볼 수 있으니 '눈'이다. 내 어릴 적 눈으로는 이들의 눈을 볼 수 없었는데, 이제 내 눈은 나무의 눈과 시선을 마주친다. 사실 나의 시력은 나날이 어두워지는데, 눈이 점점 눈에 들어오는 이 타이밍이란 절묘한 걸까 안타까운 걸까. 겨울눈은 겨울이 깊어질수록 깨어나고 싶어 한다마는 내 눈은 점점 선명함도 줄고 졸리다.


숲길을 걸으며 수많은 눈과 마주친다. 호랑이의 눈처럼 붉고 선명한 호랑버들의 눈을 볼 때, 호숫가 버드나무의 축축 늘어진 유약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그런 건 개나 주어란 듯이 두 눈을 부릅뜬 호랑이. 작살나무의 눈은 그 이름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작살을 들고 꼿꼿하게 섰다. 위로 치켜든 층층나무의 눈을 보면 대번에 총총 솟아나는 그 새순이 떠오른다. 귀룽나무 잎이 피고, 생각나무 꽃이 필 때쯤이면 나도 한번 보란 듯 고개를 들고 터지는 그것들이 연둣빛 꽃인 줄 알던 때도 있었다. 생강나무 겨울눈도 크고 뚜렷해 막 지금이라도 꽃이 터질 듯하다. 가시 돋친 두릅나무의 정아를 본다면 이건 뭐랄까 인정사정없는 직진 본능에 아, 쩐다. 이처럼 크고 특별한 모양이 아니더라도 저마다 겨울눈으로 생을 이어가는 수많은 나무는 매년 환생을 맞이한다.


오르다 보니 가까운 데서 나무를 쫒는 딱따구리 소리가 들린다. 따닥 따닥 규칙적으로 또는 불규칙적으로 들리는 그 소리에 자동적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것은 손님을 맞이 하는 숲의 방식인가? 한 마리가 아니다. 두 군데 아니 세 군데에서 삼 중주로 연주한다. 두 군데는 맑고 높은 소리지만 한 군데는 좀 낮은음이다. 도구는 같지만 재목이 달라서 일 거다. 결국 그중의 두 마리를 목도했으니, 한 녀석은 쇠딱따구리, 또 한 녀석은 청딱따구리. 적당히 떨어져서 보면 제 일에 몰두하느라 사람을 피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없으니까 나만 정지하고 귀를 쫑긋 세우면 된다. 딱따구리 소리뿐 아니라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며 작은 새들이 관목 안에서 파닥 거리는 소리, 마른 잎을 흔드는 겨울바람 소리, 두두 둑 하고 나뭇가지가 떨어지는 소리... 큰 동물이 작은 무엇인가를 공격하는 그런 소리까지 들렸는데,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신경을 곤두세울수록 여러 소리가 들린다. 누구는 이럴 때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소리까지 들렸다지만(뻥일 걸), 심장도 그닥 좋지 않은 나에게는 안 들리는 게 좋은 거다. 잘못하면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수가 있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서 숲으로 들어왔건만, 딱따구리 소리가 이리 반가운 것은 무엇일까. 혼자이고 싶어 왔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데서 오는 이 안도감은 무엇인가. 겨울 숲의 위로? 그 마음 알 수 있었다면 이 숲 속에서 매서운 겨울바람맞지도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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