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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Jun 20. 2020

문장 수집가의 책 일기 4

실패에 관하여

무슨 일이든 처음에는 낯설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곧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쉽고 편안해지지만 그만큼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욕심이 생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실패가 나타난다. 왠지 자신이 없어지고, 두려움은 커지고... 그러다 보면 악수를 두게 된다. 이번 그리고 (아마도) 다음번까지는 이런 실패작들의 연속이다.


일적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할 수 있지만, 디자이너는 아니다. 그런데 직접 하려다 보니 안 되는 기술에 구체성도 없는 눈만 높아서 점점 산으로 가게 된다. (실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제야 무언가 잡히기 시작할 것이라고 믿지만, 대체로 이 지점에서 일들은 끝나고 만다.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무의식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잡아 두는 것은 도움이 된다. 실패를 하는 것도 극복하는 것도... 다 목표의 문제다.

도쿄에 몇 번 가면서도 진보초에 갈 생각은 못했는지... 모르겠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다만 솔직하게 일본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별로 취향은 아니긴 하다.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은 그 진보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말랑말랑한 이야기다. 


나는 음악과 관련해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보통 그렇다.

'내 친구 아무개입니다. 음악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알아요.'라는 식으로 대신 자랑은 해주는 데, 그게 영 닭살 돋는 이야기라서... '아니에요...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덧붙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논현동 가구 거리 끄트머리의 골목길에 작은 디자인 서점이 하나 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사진을 찾다가 눈이 아파서 그냥 대충 골랐다. 사진 자체로는 나쁘지 않은데, 별로 글하고도, 전체적인 레이 아웃하고도 어울리지 않아서... 후에 재작업을 한다면 힘들더라도 서점 사진으로 교체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데, 디자인 관련한 정보나 책을 많이 봤다. 그림을 그린다거나 하는 데 전혀 기술이 없기 때문에 말발이라도 세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몰라도... 아무튼 그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늘 디자이너 하고 일하기를 원했지만, 동시에 가장 일하기 힘든 파트너가 디자이너인 것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 어렸을 때에 딱 하나 내가 개입하려고 했던 것이 '미술학원'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하기 싫으면 그만두어도 괜찮지만, 그림 그리는 것만큼은 강제로라도 가리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과제한다고 집에서 태블릿으로 그림 그리고 있는 것을 보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에이미와 이저벨]은 최근(5년 기준)에 읽은 작품 중에 가장 내 취향의 작품이다. 여기서 '내 취향'이라 함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은 작품?? 그래서 사람들에게 권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 것 같은 그런 것들이다. 작가 입장에서는 전혀 반길 일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나에게 닿을 정도라면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작은 마을의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런 믿음을 증명해 주는 그런 작품이다. 두 번 읽기는 좀 곤란한...

'천재'나 '명언' 같은 단어들은 이제는 보편화된 말이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자라면서 왠지 우러러보게 되었던 그런 말들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말이 되었다. 요즘에 내가 정의하는 '명언'은 '그나마 의미가 전달이 되는 짧은 문장'이다. 그만큼 의미 전달이 쉽지 않게 되었고, 느리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해간다면 우선은 적응할 일이다. 그렇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취향으로 돌리면 된다.


기욤 뮈소의 작품들은 많이 읽었다. 괜찮은 것도 있었는데, 아마도 [종이 여자]를 읽을 때, '자신을 파괴해 가는 것'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었나 보다고 짐작해 본다. 그렇지 않다면 이 문장을 따로 빼놓았을 리가 없다.

기존의 템플릿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템플릿을 써보기로 했는데, 완전 폭망 한 케이스. 그나마 문장이 짧고, 여러 가지 연관된 이미지 요소들이 많았다면 모르겠는데, 하필 좀 긴 것을 가져와서... 해 놓고 보니 정말 중요한 글이 안 보여서 참담했다. 그래도 바꾸지 않은 것은... 조금 익숙해지면 다른 문장을 고려할 때 도움이 될까 봐... 는 핑계고... 그냥 귀차니즘의 결과다.


테드 창의 작품집을 읽는데, 짧든 길든 한 편한 편이 논문 수준이어서 계속 밑줄 그어가면서 읽고 있다. 지난달부터 글쓰기와 말하기에 대한 비교글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 그런 얘기들이 담겨 있다. 먼저 글을 올려놨다면 모를까... 이제는 그냥 후기가 돼버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할 일과 연관된 이야기들이어서 좋았다.


과거의 사실을 통해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얘기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영화 및 소설)'에서도 등장한다. 어쨌거나 우리 모두가 '과거의 여러 시점에서 틀린 적이 있고, 잔인했거나, 위선적으로 행동한 적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걸 실패라고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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