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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Jul 04. 2020

문장 수집가의 책 일기 7

남과 여 그리고 다름

이번 주 일정이 생각보다 빡빡합니다. 한창 때는 휴일 없이 100일도 일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이틀만 해도 몸이 제대로 작동하지가 않습니다. 체력이 방전되가면서 자연스럽게 정신도 아무 생각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가끔씩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나름 필요하고 괜찮은 일입니다.


그래도 손톱만큼의 나만의 하루 일과(문장 수집)를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어찌어찌 수집이야 하면 되는데... 뭔가 흐름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문장들인가 싶더니 살짝 다른 부분도 있고... 어느 한쪽이 더 재미있다면 하나를 고를 텐데 둘 다 재미있습니다. (그거면 된 거죠. 뭐)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앞으로 고전으로 남을 가능성이 충분하죠. 책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다 보니, 책을 읽는다는 것,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읽은 지 꽤 되어서 다시 읽으려고 준비 중입니다. 사실 저는 영화 완전 별로였는데, 새로 나온 책은 영화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네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눈 사람들이 전부 남자들이어서 뭔가 이 책은 남자들의 로망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ㅎㅎ 그냥 제 환경이 그런 거여서... 아무튼 여자들도 이 작품을 좋아하는지, 어떤 느낌인지 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초창기 더글라스 케네디에 대해서 놀란 것이 [위험한 관계]를 읽으면서 였는데요, 여자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숨이 막힐 정도로 디테일합니다. 실제로 많은 답답함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읽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었는 데,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정유정 작가의 [29]를 읽고 나서도 그런 생생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거의 일주일을 찝찝함과 메스꺼움 그리고 세상에 대한 환멸 속에 지냈던 것 같습니다. 정유정 작가의 작품들이 대체로 그런데... 좀 밝은 작품을 읽으면 달라질까요? 그런 면에서 밝은 기운을 주는 그런 책들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공감 능력 좀 되는 건가요? ㅋㅋ)

김애란 작가의 이 문장을 발견하기 전에도 이런 생각을 꽤 했었습니다. 특히 버스를 타고 학교 앞을 지나가면서 학생들을 바라보다 보면 절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의 윤회라는 걸 개인 수준이 아니라 사회 수준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서 태어나고 자라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이렇게 명료하게 문장으로 옮기는 것... 그것이 작가의 몫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장들을 찾아내는 건 독자의 몫이겠지요.


김애란 작가는 제게는 정말 놀라움의 연속인 작가입니다. 섬세함과 위태로움 그리고 강인함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작품들... 처음에는 지독하게 절망적인데, 묘한 게 작품이 끝나고 나면 '의지(평범하게 말하면 희망?)' 같은 것이  희미하게 살아오릅니다. 그래서 오래 기억하고 오래 간직하게 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제게는 No.1 작가입니다.

이 이미지 작업을 하는데 뒤에서 아들 녀석이 그러더군요. '아빠, 왜 그래요, 무섭게...' 그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죽음이 두렵다면 삶도 두려워야 하는 것 아닐까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가 선택하지 못한다는 그런 이유가 작용한다면... 역으로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죽음 역시 무서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겠죠. 가장 편한 방법은 잊고 사는 것이겠죠. 하루 살아 내는 일도 바쁜데... 언제 죽음까지 걱정할 수 있겠습니까? ㅎㅎ


저는 이 질문이 '다름'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논리적으로 풀어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그렇습니다.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지? = 이게 왜 이상한 거지?

이런 식으로요...

역시나 다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제가 좀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오히려 그 책을 읽고 나서 전 그다지 내성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긴 하지만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사람들 간의 차이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괘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어쩌면 내가 닮아 가거나 나를 닮게 하거나 하는 일이 훨씬 더 편하고 빠른 방법이니까...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래저래 '조금 다른' 사람들의 삶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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