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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남동 심리카페 Oct 21. 2024

중학생 손님, 시각장애 커플, 그리고 공기놀이


중학생 손님의 고민


제 심리카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왔었습니다. 그 다양함을 나이로 보면, 중학생부터 50대까지 그 스팩트럼이 넓습니다. 아마 연남동이라는 동네가 가지고 있는 매력도 있을 것이고, 심리카페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나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고 고민이 있는 분들이 다가오시는 데에 부담도 적었을 것 같습니다.



중학생들 같은 경우, 직접 본인들이 예약해서 오는 경우도 있고, 담임 선생님이 예약해서 반 학생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직접 예약해서 오는 중학생 같은 경우, 일반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경우들이었습니다.



중학생이라는 나이이지만, 예술 중학교라는 환경은 일반 중학교보다 좀 더 미래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당장 외국으로 유학을 갈 것인지, 국내의 학교를 다닐 것인지부터 고민을 하더군요. 각 분야와 종목마다 전성기는 다르고, 몇몇 분야와 종목은 고등학생과 20대 초반이 전성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심리카페를 하면서 다양한 직업과 직장, 분야의 분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다양한 분들을 만나면서 느끼게 된 것이 있습니다. 각자 보내는 삶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었죠. 보내고 놓이게 되는 삶의 시간이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예술 중학교와 예술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을 만날 때입니다. 그 경쟁의 상황이,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경쟁이 있는 관계가 우리네 20~30대의 삶보다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과 선택으로 상황을 직면하고 도전하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제 심리카페를 예약해서 오는 적극성을 보여주죠.



그리고 심리카페를 하다 보면 마흔의 나이에도, 쉰의 나이에도, 직면이 아닌 회피로, 실재가 아닌 말과 이미지로, 자신이 쓴 이야기가 아닌 남이 쓴 이야기로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때론 부모님보다 자녀가 더 어른스럽고 성숙된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들도 보게 되죠.



중학생이지만 누구보다 진지하고, 누구보다 진심이며, 누구보다 직면해서 고민하고 있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절대 중학생이 하는 고민이 어리고 철없고 뭘 모르지만은 없습니다. 미숙함은 성인이 되어도 얼마든지 나오게 되는 모습이고요. 시도하지 않아서 미숙함을 노출시키고 있지 않은 것이 성숙됨은 아니니까요. 누군가의 고민을 어리게만 보는 것은 무례한 사람이 보이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심리카페를 하면서 오신 분들에게 배우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중학생 손님들을 통해 되돌아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 수도 있구나 하고요.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커플


당신은 얼마큼 도전적인 삶을 살고 있나요? 우선 저는 그렇게 도전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치는 게 겁나고, 어떻게 보여질 지를 의식하고 신경 쓰게 되니까요. 그런데 그런 저에 대해 반성해보게 해 준 손님들이 있습니다. 바로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셨죠.



한 번은 커플 상담을 신청해서 오신 시각 장애인 커플이 있었습니다. 두 분 다 시각 장애를 가지고 계셨었죠. 그래서 택시에서 내려 제 카페에 오실 때 택시 기사 님의 도움을 받아서 오셨었죠. 기사님에게 전화를 건네서 저에게 제 심리카페의 위치를 물어보셨고, 저는 계단을 내려가 1층에서 기사님에게 손님을 인계받듯 그렇게 만나게 되었죠. 2층에 있는 제 카페까지 계단 옆에 있는 난간을 잡으며 올라오셨었고요.



남자분과 여자분, 두 분 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정도의 시각 장애를 가지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림검사와 컬러 테라피는 생략하고 대신 상담의 시간을 더 길게 확보를 했고, 예약 시에 제가 상담 진행하면서 물어보는 질문들을 먼저 보내드려서 방문 전에 질문에 대해 답해주시는 내용을 받아보는 것으로 최대한 유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드리려고 했었습니다.



시각 장애라는 부분의 특수성은 있지만, 두 분의 모습은 여느 커플 상담할 때 접하게 되고 겪게 되는 모습과 비슷했었어요. 여자분은 시각장애라는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호기심도 많고 공감능력도 높으신 분이었고, 남자분은 시각장애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능력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성공한 모습이었지만 여자분에게 너무 무례했었습니다. 그러한 무례함은 여자분 한테만이 아니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러했었죠.



제 심리카페에는 이 커플 이전에도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이 몇 분 더 오셨던 적이 있으세요. 그래서 남자분이 보이는 모습을 단지 시각장애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까 하고 과도하게 조심스럽게 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전에 오셨던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손님 분들 중에, 회사에서 워크숍으로 다른 직원들과 함께 왔던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이 계셨었어요. 그런데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삶을 살아오고 살고 있는 모습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 함께 오셨던 다른 회사 분들보다 훨씬 자존감이 높고 유능감도 높은 모습을 보여주시는 분이셨죠.



시각장애를 가지고는 있지만,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책임감 강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모습과 함께요. 심리정서적인 안정감 역시 높은 면모를 많이 보여주셨죠.



마치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자존감과 유능감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핸디캡과 같은 어려움과 불편함을 주는 요인인 것이지 한정 짓는 것은 아닌 것처럼요. 시각장애를 가지고 계셔서 할 수 없는 것들과 어려움과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것은 있지만, 그것이 자존감과 유능감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었죠. 높은 자존감과 유능감이 받쳐주기에 삶의 질 또한 낮지 않으셨고요.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자분이 보이는 여자분에게 보이는 무례함이 속상했었고, 그런 남자분에게 과하게 감정 이입을 하고 이해를 해주고 있는 여자분이 속상했었죠. 하지만 두 분이 눈이 보이지 않으신데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본인들이 검색해서 찾아가고 이동하는 모습이 멋있게 보였답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때로는 한번 부딪혀보는 모습으로요.



다치고 싶지 않아서, 헤매고 싶지 않아서, 민망해지고 싶지 않아서 뭘 안 하는 것이 많아지는 저에게 이 커플이 보여준 모습이, 그리고 워크숍으로 다른 동료들과 온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분이 보여준 모습이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더군요.



'좀 다치면 어때, 좀 헤매면 어때, 좀 민망해지면 어때?'





공기놀이


심리카페라는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만나온 지 8년의 시간이 된다는 것을 체감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전에 오셨던 분이 다시 찾아오실 때죠.



그리고 제 심리카페에는 다섯 번, 열 번 넘게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 사연과 사정들이 있으시지만 다들 섬세하고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시죠.



어떨 때는 카페 안에 만들어 놓은 평상에 앉아서 공기놀이를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카페 안에 인테리어 소품처럼 공기놀이 공기를 사서 놓았었는데, 우연히 상담을 끝내고 이야기 나누다가 같이 평상에 앉아서 공기놀이를 하게 되었답니다.



바로 이어지는 다음 예약손님이 있지 않기도 했었지만, 그보다 여러 번 오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서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카페 소품으로 새로 산 공기를 손님이 먼저 꺼내서 공기놀이를 보여주며 가르쳐주겠다고 했었죠. 1단, 2단, 3단, 처음에는 서툴고 어색했지만 하다 보니 옛날에 했었던 감각이 살아나더군요.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자 몇 살 나이를 정하고 나이 먹기 내기를 하게 되었었답니다.


평상 자리와 공기


저는 제 심리카페에 오신 분들에게 그런 순간과 경험을 가질 수 있게 해 드릴 때가 제일 좋답니다. 단지 상담만이 아닌, 필요했던 경험을 만들어드리는 것만 같아서요. 바로 '안전기지'에 있는 경험을요. 필요했었는데,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져버린 순간이, 또 그런 공간이 백 마디 말보다 더 도움이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변화를 못하는 것은 그저 결심이 약해서, 방법을 몰라서만은 아니니까요.



긴장되어 있고, 경직되어 있고, 위축되어 있을 때는 그런 긴장과 경직과 위축됨을 이완시켜 주고 유연하게 말랑하게 있을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많이들 그런 생각을 안 하시죠. 뭘 하면 되는지를 찾고, 자아 찾기를 하고, 정신력으로 자신에 대해 다루려고 하죠.



무엇보다 안심과 안정감을 갖게 해주는 가족이 필요하신 경우들이 대부분이세요. 안전기지, 보금자리, 그런 것이 없이 살아오고 있음에 대해 알게만 되어도 평생을 자아 찾기를 하거나 뭔가 열심히 살고, 좋게 좋게 생각하며 살고, 무례한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공기놀이 같은 것을 천진난만 해맑게 웃으며 할 수 있는 안전기지들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떤 방법들을 찾으려고 애쓰시거나 아예 반대로 회피적인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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