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늦은 시간에 죄송한데요. 오늘 예약은 불가능할까요?’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하나에게서 예약문의 문자가 왔었다. 이 시간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문자를 보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답장을 드리고 오전 시간으로 예약을 잡아드렸다.
“저번에 저에게 이야기해주셨던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하나는 이 말을 하면서 함께 온 분을 소개해주었다.
“저의 엄마예요. 저희 엄마도 저 받았던 거 받고 같이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요.”
하나의 부탁대로 하나에게 해줬었던 그림검사들과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대화들을 하나의 어머님과 주고 받았다. 하나의 어머님에 관한 내용들을 알게 되고 나서 왜 하나가 어머님을 데리고 온 것인지, 왜 늦은 밤에 오죽 힘들고 답답했었으면 당일 예약이 가능한지를 물어보면서까지 오려고 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제 딸은 뭐든지 알아서 똑 부러지게 잘 하니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요즘 좀 우울한 모습이 걱정이 많이 되서요."
하나가 전에 들려주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과 그려주었던 여러 그림검사의 그림들이 떠올랐다. 하나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말처럼 하나는 뭐든지 알아서 똑 부러지게 잘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힘들고 외롭게 보낸 시간에 대해 읽을 수 있다면, 이런 말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을 것 같은데 하나의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겉으로 보여지는 하나의 모습이 당당하고 갖추고 있는 스펙들이 뛰어나서 똑 부러지고 모든 스스로 알아서 하는 모습일 뿐인데, 하나의 어머니는 그런 모습만 편식해서 먹는 아이처럼 골라서 보고 있었다. 하나는 여리고 어린 마음을 갖고 어렸을 때부터 외롭고 불안함 속에서 혼자 살아내 가고 있었는데 하나가 그랬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과도하게 분석적인 분들은 겉으로 보여지고, 들려준 것들을 바탕으로만 상황과 상대를 파악한다. 하나의 어머님은 살아오신 시간들과 그려주신 그림검사 그림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보면, 아주 많이 분석적인 분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는 엄마를 속상하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 분석적인 어머니의 마음에 들고 만족시켜줄 것들에만 집중해왔던 것이다.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손상된 채 방치된 삶을 살아온 하나는 이제 그런 생활을 그만 졸업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은 말하지 않았을 말들을 어머니에게 직접적으로 꺼내고 있었다.
"엄마, 나 그렇게 똑 부러지지도 그렇게 잘 살고 있지도 않아. 그렇게 보이려고, 엄마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던 것뿐이였어. 엄마가 나에게 신경을 써줬다면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지는 않았을 거야."
"엄마도 너 어렸을 때 많이 힘들고 바빴잖니. 나는 뭐 여유롭고 편했는지 알아? 그래도 내가 너한테 용돈을 얼마나 많이 줬었니? 어디 가서 기죽지 말라고, 동생들이 너 말 잘 따르라고 너한테 일부러 용돈을 많이 줬었어."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엄마의 마음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알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더라고. 엄마의 상황과 의도 말고,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가 중요한 것이였더라고. 엄마랑 단둘이 이야기를 하면, 그동안 쌓였던 것이 한번에 터져나오게 되어서 어제처럼 또 감정적으로 흐르게 될까봐 오늘 이렇게 여기에 온 거였어. 이 정도의 이야기라도 말하고 싶어서."
하나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는 하나의 어머니에게 전에 하나가 왔을 때 그렸던 그림검사 그림들에 대해 알려드리고 어머님이 하나에 대해 사려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게 설명해드렸다.
“지금은 이혼하셨을 때보다는 훨씬 여유와 안정감을 가지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런데 따님은 여전히 계속 혼자란 느낌 안에서 힘들어 하고 있으시네요. 무엇보다 우울해 하고 불안해 하고 있을 때에는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런데 아머님이 너무 분석적으로 말하고 반응을 해주시면, 따님을 안심할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할 거예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고 이상적인 자세를 취하시는 것보다 따님의 기분과 감정을 읽고 살펴주시는 것이 좋은 엄마의 모습 아닐까요? 지금 따님이 많이 불안해하고 힘들어하고 있으세요. 따님에게는 지금 좋은 엄마가 필요하세요.”
그날 밤, 하나에게서 문자가 왔었다.
‘혼자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도와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