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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남동 심리카페 Jan 15. 2019

연남동 심리카페의 특별한 보물


카페에서 사람들에게 그림검사를 해주고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종이에 적으며 상담을 진행해 왔었습니다. 상담이 끝나면 그림을 그린 종이와 대화 내용을 적은 종이를 가져가시거나 버리곤 했었죠. 그렇게다 하다 보니 무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분명 저는 저대로 정성을 들인 시간을 기록한 내용이고, 상담을 받은 분들은 자신의 내용이 담겨 있는 소중한 내용일 테니까요.



어떨 땐 정말 의미 있는 대화의 순간이 너무 좋았고, 어떨 땐 같이 온 커플이나 친구들이 가진 시간을 특별하게 간직하게 해주고 싶기도 했었습니다. 마치 용건만 보고 헤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도 무언가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을 하는데 뭔가 남는 것이 없으니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비싼 술집에 가면 비싼 술을 마시고 남은 술을 술집에서 일정 기간 키핑(보관)해주는데, 비싼 술보다 더 소중한 그림과 대화 내용을 비싼 술처럼 카페에서 보관해드리면 어떨까? 하고요.


또 이런 생각도 들었죠. 커플이, 친구들이, 또는 혼자 오신 분이 자신에게 의미 있고 특별한 것을 보관했다가 생각나고 보고 싶을 때 와서 꺼내어 볼 수 있게 타임캡슐처럼 보관해드리면 어떨까? 하고요.



그래서 카페에 서류들을 보관할 수 있는 예쁜 서류함을 장만하고, 상담을 마치고 난 다음에 이렇게 물어보곤 합니다.



그림 그린 것이랑 이야기 나눈 것을 어떻게 해드릴까요?
가져가셔도 되고, 저기 보이는 연두색 함에 보관하셔도 되세요.




보관하시겠다고 하시면, 날짜랑 이름을 적어 달라고 합니다. 시간 순대로 보관하기 때문에 나중에 대략 오셨던 날짜를 얘기해주시면 찾아서 보실 수 있으세요. 또 무언가 고민이 생기거나 상담하고 싶으신 내용이 있으시면 새로 또 그림을 그리지 않고 바로 진행하실 수도 있으세요.라고 안내해드린답니다.


아무래도 섬세한 성격의 분들은 특히 더 자신의 섬세한 성격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섬세한 성격인 저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거든요. 자주 저에 대해 잘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고민 상담을 하거나 이해를 받고 싶을 때가 많으니까요.


최근에는 보관함에 종이가 가득 차서 한 차례 정리를 했죠. 좀 더 의미가 있어 보이는 것은 그대로 놔두고 오래된 것은 더 보관하기가 버거워서요. 1,2년이 지났는데 보러 오시지 않은 것들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정리하니 맨 위 한 칸 자리가 확보되더군요.


왠지 다시 그림검사와 상담한 내용을 보관할 서류함을 하나 더 사는 것에 대해 머뭇거리게 되면서도 시간이 지났다고 정리해서 버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류함을 하나 더 샀었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서류함을 하나 더 샀고, 또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서류함을 하나 더 사서 지금은 그림검사와 상담 내용을 적은 종이를 보관하는 서류함이 네 통이 되어 있답니다.



무언가 저 종이들을 보면 그동안 제가 보내온 시간에 대해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다시 와서 보시는 분들도 있나요?



네, 그럼요~



그림검사와 상담을 받았던 분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시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렇게 데리고 오시는 경우 친구분들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예전에 자신이 했던 그림과 상담 내용을 찾아서 보시고, 살짝 요즘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해 저에게 물어보곤 해요. 저는 예전에 그분이 그렸던 그림과 그 분과 나누었던 내용을 적은 글들을 읽고 저에게 물어보시는 내용에 대해 제 생각을 이야기해드리곤 한답니다.


저 역시 얼굴만 보고는 그분이 어떤 사연과 어떤 고민으로 오셨었는지를 다 기억할 수 없지만, 그린 그림과 나눈 대화 내용을 보면 기억하게 되어서 서로 이야기 나누기가 좋더라고요. 오셨던 날 이후로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보관하셨던 것을 다시 찾아서 보시면서 다들 참 신기해하고 반가워하고 재밌어하시죠.



저 역시 쌓여있는 그림들과 제가 분석하고 설명해주며 이야기 나눈 것을 생각하면서 뿌듯해지기도 하고요. 지치고 방향성을 잃어가고 있어 힘들어하고 있으실 때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 보람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참 삶을 살아내는 것은 내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좋은 기운과 영감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렇게 쌓여가는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누가 가져갈 수 없는 보물인 것 같아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이니까요.


어딘가에 섬세한 성격의 자신에 대해 다룬 내용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피상적이지 않게 살펴봐주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 외롭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힘들 때 찾아가 이야기 나눌 곳이 있다는 것이 주는 안정감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느끼는 안도감은 섬세한 성격의 분들이 좀 더 삶을 잘 살아내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이곳의 이름을 연남동에 있는 심리카페여서 '연남동 심리카페'라고 지었던 것처럼, 이곳의 정체성이 말 그대로 섬세한 사람을 위한 심리카페인 것 같아 저도 애착과 정성을 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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