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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봄 Oct 28. 2020

엄마의 우아한 취미생활

내 맘대로 예술가, 김보보의 그림 놀이

“작가님은 어쩜 그림을 이렇게 슥슥 쉽게 잘 그리세요? 밥 아저씨 같아요!”


몇 명 안 되는 내 인스타그램 팔로워 중 한 명인 어느 미대생의 한마디에 푸훕 웃음이 터졌다. 누구나 빛나는 과거 하나쯤은 있듯이, 나 또한 소싯적에 ‘그림 좀 그린다’는 학생으로 친구들이 다이어리나 노트를 새로 사면 맨 앞장을 펼쳐 들고 와서 “예쁜 거 하나 그려줘.”, “귀여운 거 하나 그려줘.”하고 줄을 서던 때가 있었다. 당연히 전공을 하거나 제대로 공부를 한 건 아니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딱히 다시 그림을 그릴 일은 없었고, 가끔 일기장 한 귀퉁이에 낙서처럼 끄적이던 일러스트 비슷한 것이 전부였달까. 그런 내가 요즘, 그림을 그리며 ‘작가님’ 소리를 듣고 산다.


이른바 ‘엄마의 우아한 취미생활’이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 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이가 네 살 정도 되었을 때, 생일 선물로 뭐 해줄까 묻는 남편에게 “물감!”이라고 외치듯이 답했던 그 날 이후, 나는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고,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오랜만에 잡은 붓은 마음과 달리 얼룩덜룩 물자국을 남기기 일쑤였고, 귀염귀염한 동물 캐릭터나 눈이 얼굴의 반 정도 차지하는 아기 얼굴 같은 캐릭터는 완전히 감을 잃은 것 같진 않으나 왠지 모르게 어딘가 어색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아이와 남편이 잠든 새벽, 새하얀 대리석 식탁에 알록달록 물감이며 색연필을 가득 늘어놓고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그리고 끄적이는 밤과 새벽 사이의 시간들이, 그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나만의 순간들이, 행복했다.


보통 이 정도 상태면 새벽 두 시경... 잠과 바꾼 그림 놀이


나이 들어 시작하는 취미생활의 문제는, ‘장비병’이다. “취미는 장비빨”이라는 말은 대체 누가 지어낸 건지 (혹시 나였던가?) 21세기에 마주한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 사이에서 이토록 나의 생각과 욕망과 만족감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짧고도 강렬한 문구는 없었다. 그림이 잘 안 되는 건, 묘하게 어딘가 이상했던 건, 다 장비가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라 믿으며 그때부터 난 새로운 세계에 빠져 들었다. 동네 어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름의 대형 인터넷 화방이 아니라, 개인이 이탈리아나 프랑스, 인도 등에서 이름난 붓과 종이, 물감 등을 수입해오는 세련된 편집샵 느낌의 작은 화방들을 찾게 되었고, 이 종이엔 코튼이 얼마 정도 함유되었는지, 종이가 얼마 정도의 그람 수를 가져야 마음 놓고 물칠을 할 수 있을지, 족제비 털로 만든 붓과 청설모 털로 만든 붓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마르면서 고운 입자로 의도치 않은 멋진 효과를 더해주는 그라뉼레이션이 좋은 물감은 어느 회사의 어떤 색상인지 등등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보는 게 있고 아는 게 있으면 갖고 싶어 지고 , 갖고 싶어 지면 사야 하는데, 굳이 소비를 말리지 않는 남편의 관대함 덕분에 나는 점점 장비 부자가 되어갔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장비를 사는 건지, 장비를 사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건지 애매해지는 순간이었다.


장비병의 끝판왕 까렌다쉬... 색연필과 크레용계의 샤넬


 화실이나 학원을 다니며 전문가의 지도를 받았다면 더 근사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 내가 미대 입시를 준비할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만 열면 전 세계 방방곡곡에 있는 작가며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작품과 작업 과정들을, 혹은 무료 강의들을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매일매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지켜보고 흉내도 내보며 작은 시간들을 쌓아가다 보니, 점점 그럴듯한 그림들이 완성되기 시작했다. 지루할 틈도 없었다. 취미 미술 세계에도 트렌드 같은 게 있다 보니, 어느 해에는 수채화 일러스트가, 어느 해에는 과슈나 아크릴화가 유행하듯 번졌고, 요즘은 ‘오일파스텔’로 그리는 동화 같은 그림들이 이 시장을 평정하다시피 했다. 아이패드로’만’ 할 수 있는 ‘프로 크리에이트’ 앱을 활용한 디지털 드로잉들과 함께 말이다. 그때마다 난 여기 필요한 모든 장비들을 사 모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재료와 소재를 바꿔가며 그림놀이를 즐겼다. 그럴듯한 그림들은 벽에 걸기 시작했다. 우아한 인테리어 소품이 되었다. 집에 걸어두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투박하게 찍어 올린 사진과 영상들에 ‘하트’가 조금씩 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그림을 제가 좀 사고 싶습니다.”



“작가님 그림은 묘하게 행복해지는 힘이 있어요.” 


처음 그림을 사러 오신 분의 말씀에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걱정과 고민 하나 없이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즐거운 기억’들만 떠올리며 ‘놀이하듯’ 그린 그림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만, 나의 그런 생각과 마음들이 이 조그마한 캔버스에 오롯이 담겨서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느낌을 선물할 수 있다니, 짜릿했다. 많지는 않지만 소비로 점철된 취미가 소득이 되기 시작했다. 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돈을 지불하고도 소장하고 싶을 만큼의 아름다움을 내 손끝에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입점 문턱이 높기로 소문난 스토어 두 곳에 제안서를 보냈다. 금세 연락이 왔다. “작가님, 입점 심사에 통과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때부터 그림을 그릴 땐 누가 받을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선물을 준비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 나의 이 평화롭고도 고요한 순간의 마음이 캔버스에 고이 담겨 누군가의 공간에 따스하고 다정한 위로처럼 자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 잘하려고 고민하고 애쓰고 끙끙거리며 완성해 낸 그림이 아니라, 그저 바라보면 예쁘고 즐겁고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그림을, 나는 오늘도 그리고 있다.



꼭 그림이 아니어도 좋다. 사람들이 전공이나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그냥 오롯이 즐겁게 행복하게 몰입할 수 있는 취미 하나쯤은 가졌으면 좋겠다. 힘든 하루 지친 모습으로 털썩 자리에 누워 의미 없이 스마트폰 쥔 검지만 하염없이 위로위로 올리고 있을 그 시각, 나를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 실수해도 괜찮고 잘하지 않아도 좋은 그 무언가, 그저 재미있고 행복한 것으로 점철된 그 무언가를 찾아서 말이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작은 행복이 켜켜이 쌓이면 우리들의 팍팍하고 무미건조한 일상도 조금은 더 예쁘게 빛을 내지 않을까. 나를 오롯이 채운 행복이 슬며시 흘러넘쳐 주위를 행복으로 촉촉하게 적시듯이 말이다. 그래서 엄마의 우아한 취미생활은 계속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요즘 핫하다는 오일파스텔과 디지털드로잉, 다 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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