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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봄 Jan 14. 2021

반의 반 고흐, 당신에게 해바라기를

당신의 봄을 기다리며



띵동. 경쾌한 알림음이 울린다. 누군가 나의 그림을 구입하려나보다. “또 해바라기겠지?”



집안에 걸어두면 풍요와 부를 불러들인다는 속설 때문인지, 그림을 구매하겠다는 분의 대다수가 <해바라기>를 선택한다. 새파란 하늘 아래 흐드러지게 피어난 노랗고 탐스런 꽃송이들을 몇 점씩이나 그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반의 반 고흐’라고 놀리듯 웃는다. 처음 그림을 판매하게 되었을 때  남편이 이미 예언했기 때문이다. “판매를 하면 아무래도 당신이 그리고 싶은 것보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게 될 거야. 매일 해바라기만 그리고 있을 수도 있다니까.”



역시, 이번 주문도 해바라기다. 주문자와 받는 사람의 이름이 다른 걸 보니 선물인가 보다. 습관처럼 주문서를 스윽 읽어내리다가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주문을 하면 그려서 보내주시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희망이 느껴지는 밝은 해바라기 그림을 부탁드립니다. 요즘 집안 분위기가 너무나 어두워서요. 감사합니다.>





내가 뭐라고...  


대단한 예술가도 아닌 그저 이름 없는 작가의 그림을 보고 가녀린 신음처럼 마음을 토해낸 그녀의 목소리가, 어두운 집안 분위기를 밝혀줄 무언가를 찾아다녔을 그녀의 마음이, 무엇에라도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아득한 어둠 같은 슬픔과 절망이, 한 글자 한 글자 속에서 뚝뚝 묻어난다. “작가님, 도와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마음속 깊은 우물에 눈물이 또르륵 떨어진다.



어깨너머로 힐끗 주문 내용을 본 남편이 말했다. “돈 벌려고 하는 일도 아닌데, 좀 더 크고 화사하고 예쁜 그림으로 그려서 보내 드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고작 조그마한 그림 한 점이 컴컴한 마음에 희망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마음이 나에게 와 닿았다고, 당신의 슬픔을 내가 보았다고, 끄덕끄덕 공감하며 다정하게 위로를 전할 수는 있겠지.  



주문서에 기재된 그녀의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냈다.  


<요즘 집안 분위기가 어둡다는 말씀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저의 작품이 어두운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밝혀드릴 수 있다면, 000님의 마음에 잔잔한 위로와 기쁨을 더해드릴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주문하신 크기보다 조금 큰 캔버스로 작업해서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을, 밝고 희망찬 기운을 꾹꾹 실어 예쁘게 작업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답신이 왔다.  


<저는 작가님이 보내주시는 어떤 그림이든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선뜻 마음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 어머니께서 그림을 좋아하세요. 선물처럼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가족들에게 속마음을 잘 얘기하지는 못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가족이 굴레가 아니라 버팀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래서 이 힘든 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제 3월이면, 갑작스러운 투병 끝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제 동생의 네 번째 기일입니다. 집 분위기도 그렇고 동생 생각도 많이 나던 차에, 작가님 메시지를 보고 따뜻함에 울컥했습니다. 그러나 제 얘기가 작가님께 부담이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이미 보내주신 마음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나이도, 얼굴도 알 수 없는 그녀의 단정한 문장들이 쿵... 쿵... 마음속에 떨어진다. 그녀를 위해, 그녀의 어머니를 위해, 꽃을 준비해야겠다. 그 언제 그렸던 것보다 밝고 화사하게 빛나는, 해를 닮은 그 꽃에 햇살 같은 따스함을 담아 보내주고 싶다. 찰랑찰랑 차오르는 눈물을 꾸욱 삼키며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힘을 내야만 할 때, 정말 힘이라는 게 간절하게 필요한 순간에, 다른 누군가가 건네는 “힘내!”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고 쓸 데 없는 지를 알기에 무어라 섣불리 건넬 말이 없지만, 그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이 즐비한 사이트에서 나의 그림 앞에 멈추어 선 그녀의 마음을, 가만히 꼬옥 안아주고 싶다.



<가족 중 한 사람이 떠나가는 건, 어느 한 부분의 결핍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가장 작고도 견고한 세계가 깨어지는 아픔이죠. 살아가는 모든 순간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를 가슴속에 품은 채 살아가야 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시리고 아플지, 저도 조금은 알고 있답니다.


때론 가까운 사람보다, 잘 모르는, 적당한 거리의 누군가에게서 위로를 받게 될 때가 있죠. 제 작품이 부디 작게나마 000님과 어머님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새하얀 캔버스를 집어 들고 가만히 내려다본다. 봄빛... 봄빛을 담아야겠다. 하늘하늘 살랑이는 바람이 포근하게 불어오는 하늘 아래 계절을 모르고 소담하게 피어난, 금빛보다 찬란한 해바라기를 캔버스 밖으로 빠져나올 만큼 가득가득 채워야지. 작은 빛에도 반짝일 수 있도록 금가루를 더해야겠다. 포장을 여는 순간, 그 찰나만큼이라도 그녀가, 그녀들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잠시라도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모이고 또 모여서, 조금씩 조금씩 새 힘을 낼 수만 있다면, 슬픔에서 한 걸음 한 걸음 헤어 나올 수만 있다면...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도화지를 꺼낸다. 봄빛을 머금은 알록달록 화려한 꽃다발을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따님의 다정하고 따뜻한 사랑을 전해드릴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작업한 그림이라고. 짧은 메시지만을 주고받았지만, 어머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염려하는 따님의 마음을, 더욱 따스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드리고픈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고. 나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감히 가늠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머님의 깊은 슬픔과 아픔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노라고. 하늘의 위로가, 새 봄의 희망과 생명력이 함께하시기를 바라고 기도하겠다고,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며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또 한 장, 투명한 꽃잎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싱그러운 봄의 정원을, 그녀를 위해 그린다. 힘든 마음을 안고 나를 찾아주어, 문을 두드려주어 고맙다고. 당신이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게 얼마나 쑥스럽고 어려운지 나도 잘 안다고, 그럴 때 살며시 마음을 전하는 핑계가 되면 좋겠다며 아주 조그마한 그림엽서 몇 장을 그려서 함께 넣었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축하해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있다는 그녀와 가족들이, 깊은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잘 해결되기 바란다’ 던 바로 그 일이 바람대로 잘 흘러갔을 때, 그 순간에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요’ 카드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가장 화려하고 반짝이는 빛이 가득한 축하 엽서를 마지막에 끼워 넣었다. 머지않은 시간에 이 엽서가 꼭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연노랑 편지 봉투 안에 조심스레 마음을 쏟아부었다.






꽃을 많이 그리다 보니, 때론 꽃집 아가씨, 아니 아줌마가 된 것만 같다. 그림을 주문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꽃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나를 찾아온다. 사랑과 감사, 축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나를 찾던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결의 마음을 안고 찾아온 그녀에게 어쩐지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이제 그녀에게 이 해바라기를 보내 주어야겠다. 예쁜 포장지로 감싸고 포근한 색동실로 리본을 묶어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에게 나의 마음을 실어 보낸다. 한 겨울임에도 왠지 한낮의 햇살이 따사로운 오늘 오후, 저 멀리서 봄기운이 다가오는 것만 같다. 그녀들에게도 이 포근한 햇살이, 둥글어진 바람이 가 닿기를. 시리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곧 봄이 찾아오겠지. 봄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으니...  



당신에게 해바라기를, 한 조각 이른 봄을 전한다. 

“곧 올 거예요, 새봄이. 희망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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