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제나봄 Feb 10. 2021

아이를 돌보듯, 식물을 가꾸듯

새 봄의 문턱에서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우리 집 베란다에는 제법 큰 화단이 있었다. 그 집으로 처음 이사를 할 때는 첫 아이 출산을 앞둔 만삭의 임산부였기에 화단을 일구는 일엔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다. 한창 추운 회색빛 겨울날이어서 베란다 문을 여는 것조차 싫은 시기이기도 했고. 화단 위엔 친정엄마가 때때로 가져다주시는 화분들이 통째로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 마저도 물 주기를 잊어서 말려 버리기 일쑤였다.  


일 년 내내 이 상태로 방치되었던 화단



살랑이는 바람에도 꽃비가 우수수 흩날리던 봄날 아이가 태어났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며 아기는 몸을 뒤집고 기어 다니게 되었고, 가을이 되자 무언가를 붙잡고 간신히 일어서 토실한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렇게 계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봄의 문턱, 아이는 한 발 한 발 온몸의 관절을 다 동원해 걸음마를 시작했다. 그 무렵이었다. 버려진 듯 베란다 한 켠에 있던 흙더미에, 겨우내 죽은 듯 앙상하게 버티던 나뭇가지를 뚫고 올라오는 꽃눈에 눈길이 머문 것은.  



집 근처 화원에서 조그마한 포트에 든 꽃모종을 한 아름 사들였다. 알록달록 오동통한 줄기의 칼랑코에부터 천 겹의 꽃잎을 품은 듯 소담스런 라넌큘러스, 수줍은 듯 살짝 숙인 고개가 그림책 속 종을 닮은 캄파눌라, 하늘하늘 여린 줄기마다 눈꽃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로벨리아, 절로 코를 벌름거리게 되는 레몬 향의 노란 꽃 애니시다까지, 양 손 가득 이고 지고 돌아오는 길은 걸음마다 꽃향기가 넘실댔다.  



집에 있는 줄도 몰랐던 조그마한 모종삽을 들고 화단의 흙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조그마한 구덩이를 파고 포트에 있던 식물들을 뽑아 화단에 옮겨 심었다. 색깔 맞춰 키 맞춰 줄 맞춰 꽃을 심는 동안 조그마한 꽃송이들이 후두둑 떨어지기도, 뿌리 근처에 숨어있던 벌레들이 기어 나와 기겁하기도 여러 번, 그렇게 우리 집에 봄이 피어났다. 심다가 부러지고 떨어진 꽃들은 컵에 담아 주방 창가에 올려 두었다. 눈길 닿는 곳마다 봄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화려한 봄꽃은 쉬이 시들고 떨어지며, 여릿한 허브들은 하루만 물 주기를 놓쳐도 누렇게 고개를 숙였다. 화단 위엔 때때로 줄 맞춰 기어가는 조그마한 벌레들이 출몰했고, 어떤 건 물을 줘서, 어떤 건 물을 안 줘서, 괴롭다 힘들다 아우성을 쳤다. 이 녀석들도 생명이라고, 사랑과 관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돌보고 기르는 수고로움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아이가 잠든 밤이면 집에 있는 식물들의 관리법을 찾아 검색창을 헤매었다. 이른 아침이면 아이가 깨지 않게 살곰살곰 화단으로 나가 안부를 묻고, 물을 주고 마른 가지를 정리하고 아픈 데는 없는지 벌레는 없는지 잎을 하나하나 뒤집어 가며 살폈다. 그저 보기에 예쁜 것만 생각하고 심었던 꽃들을, 물을 좋아하는 녀석과 안 좋아하는 녀석들로 구역을 나누어 옮겨 심고, 햇볕과 바람이 잘 통할 수 있게 베란다 큰 창을 활짝 열어 두었다. 사랑과 관심과 노력이 시간과 함께 켜켜이 쌓이면서 화단은 나날이 무성해지고 풍성해졌다.  



꽃과 풀과 나무를 친구 삼아 또 한 바퀴의 계절을 지나 보낸 아이는, 이듬해 봄이 되자 아침마다 “엄마! 꼬~ 아암~”하며 눈을 떴다. 꽃에 물 주러 가자는 말이다. (아이는 ‘물’을 ‘아암’이라고 아주 오랫동안 발음했다.) 일찍이 화단에서 기른 새싹이며 어린잎 채소를, 허브를 곁들인 요리들을 많이 먹고 지낸 아이는 푸른 생명력을 품고 자라났고,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열리는 모습에 함께 웃고 손뼉 치며 꽃처럼 밝은 아이로 성장했다. 여름에 블루베리 열매를 따먹기 위해선 이른 봄 하얀 꽃이 피어날 때 조그마한 붓으로 꽃가루를 여기저기 묻혀줘야 한다는 것과, 아무것도 없는 흙에 조그마한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나고 줄기가 돋아 초록색 열매가 열린다는 걸, 너무나 귀엽고 신기해도 만지지 않고 빨갛게 익을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려야 입안에서 톡 터지는 방울토마토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아는 아이로, 이름처럼 ‘봄’을 담은, 봄을 닮은 아이로.



그렇게 식물과 아이와 몇 해를 함께 지내다 보니 나 또한 여린 생명들이 내는 소리와 몸짓에, 조그마한 변화에 눈과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잎 끝이 살짝 말린다면 분무기를 가져와 공중 습도를 높여주고, 줄기가 뻗는 방향을 보고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 성장 속도에 균형을 맞춘다.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땐 한없이 너른 품으로 안아주고 눈 맞추고 마주 앉아 있지만,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 때는 한 걸음 물러나 아이만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해준다. 처음 막 싹을 틔우고 피어나기 시작할 때는 섬세한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줄기와 목대가 굵어지고 뿌리가 깊어지면 오히려 무심한 듯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볼 때 스스로 더 잘 자라난다는 걸, 믿고 기다리는 여유만큼 아이도 식물도 너르고 단단하게 자라난다는 걸, 아이와 식물을 함께 기르며 배워가는 중이다.  



새 집으로 이사한 후, 더 이상 너른 화단에서 허브와 토마토를 길러먹거나 알록달록 나만의 꽃밭을 만들기는 어려워졌지만,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커다란 관엽식물들을 들여놓았다. 아기자기하게 피고 지는 맛은 없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무던하게 사계절을 보낸 싱그러운 초록이들을 보며, 솜털 같고 꽃잎 같던 아이의 유아기에 이별을 고한다. 조금 더 너른 화분을 준비해두어야지. 갑작스러운 변화에 몸살 하지 않도록 햇살을 한 겹 걸러줄 수 있는 하늘하늘한 커튼도 미리 걸어 두고. 괜히 불안한 마음에 새로 틔우는 잎을 만지작거려 녹아버리지 않게,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지. 그리고 싱그럽게 자라나는 초록빛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며 기념해야겠다. 네가 자라나는 모든 순간이 봄날일 수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때를 따라 싹을 틔우고 잎을 드리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테니. 가을빛에 물드는 단풍도 황홀할 테고, 모든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추위를 견디는 순간에도 깊은 뿌리로 물을 끌어올려 마침내 마른 가지 끝에서 잎눈을 꽃눈을 틔워낼 테니. 그렇게 또 한 계절을, 모든 날들을, 아름답게 살아낼 테니. 그렇게 아직 채 오지 않았지만 이미 성큼 와 버린 봄을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맞이한다. 새 봄의 문턱에서.


이전 03화 "한 때는 예쁘고 날씬했잖아."라는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