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절 통증만 남기고 떠난 말들
태어난 지 여섯 해 만에 처음 엄마 품을 떠나 ‘유치원’이라는 사회에 들어선 딸아이 덕분에 나에게도 출산 이후 처음으로 자유로운 오전 시간이라는 게 생겼다. 이 금쪽같은 시간을 어찌 보낼까 고민하던 중, 아이가 입학한 숲 유치원의 산자락에서 발견한 것이 있었으니 그 이름부터 고급스럽고 어딘가 위화감도 살짝 주는 듯한 ‘승마장’. “여보, 나 저거 한 번 배워볼까?” 농담처럼 던진 말에 남편은 너무도 흔쾌히, 고민할 여지도 주지 않고 등을 떠밀었다. 운동이라면 딱 싫어하는 나를 너무도 잘 알았던 그는 이렇게 '우아한 운동'이 또 어디 있겠겠냐며 내 마음을 정확히 조준했고, 아이 유치원 보내 놓고 다녀오면 시간도 딱 맞겠다며 쐐기를 박았다. “지금 당장 전화해봐! 어서!”
엉겁결에 광고판에 적힌 전화번호를 누르며 스을쩍 민망한 기운이 들었다. “저... 승마를 한 번 배워보고 싶은데... 혹시 강습료가... 저어... 혹시 수강하는 데 어떤 제한이 있나요?”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한껏 무거워진 나를 말이 부담스러워하는 건 아닌지가 제일 걱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갑옷 입은 장수들도 태우는 게 말이 아니었던가!) 어쨌든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요즘 한창 유행하는 골프나 필라테스 강좌에 비하면 승마 강습료는 오히려 저렴한 편이었고, ‘특별한 제한-이라고 쓰고 체중이라 읽는다-’도 없다는 답을 받은 뒤, 나는 큰 용기를 내어 승마장으로 향했다.
나지막한 산속 좁은 흙길로 굽이굽이 들어가다 보니 저 멀리 한가로이 서 있는 말들이 보였다. 이름에서 주는 귀족스러운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산기슭을 다져 만든 시골 목장 같은 곳. 게다가 평일 아침 승마장은 대체로 텅 비어서 나는 첫날부터 원장님 직강으로, 무려 1:1 개인교습을 받게 되었다.
말똥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습장 한편에 쌓여있는 헬멧을 골라 쓰고 턱 건네주시는 목장갑을 끼고 나니 새까만 말 한 마리가 눈앞에 와 있다. 쏟아지는 봄볕 아래 기름이라도 바른 듯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흑마의 늘씬한 자태, 길고 긴 속눈썹 아래 그윽하게 반짝이는 깊고 검은 눈동자는 순둥순둥 선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나와 함께 할 이 아름다운 말의 이름은 페가수스. 콧등을 슬며시 쓸어주니 커다란 녀석이 응석을 부리는 듯 콧김을 쏴아아 내뿜는다.
말의 갈기와 고삐를 휘어잡고 한쪽 발을 안장에 올린 채 힘차게 굴러 올라타라는 설명은 참으로 간단했으나 말은 생각보다 키가 컸고 내 다리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갈기를 휘어잡는 건 어쩐지 머리채를 잡는 느낌이라 말이 아프지는 않을까 짜증 내진 않을까 괜한 걱정도 들었고. 두어 번의 시도 끝에 멋지게 말의 등에 안착은 했으나 문제는 지금부터. 제주도에서 체험용으로 타던 조랑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높이, 다리 사이로 느껴지는 말의 울끈불끈 근육과 언제라도 땅을 힘차게 구르며 치고 나갈 것만 같은 불안함이 뒤엉켜 말 그대로 심장이 쪼그라들고 간이 콩알만 해졌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우아하게 시선을 멀리 두라는 원장님의 말씀은 잘 들리지도 않았고, 페가수스가 그저 나를 땅바닥에 내팽개치지만 않기를 간절히 또 바라고 바랐다. 씩씩한 척 용감한 척 살아왔으나 알고 보면 뼛속까지 ‘쫄보’였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으로 점철된 4시간 같은 40분이었다.
“오늘은 천천히 걷기만 해서 운동한 것 같은 기분도 안 들겠지만, 오늘 집에 가시면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내일모레 꼭 다시 나오세요!”
그날 저녁, 정말 온몸이 아팠다. 평생 있는 줄도 몰랐던 기립근도, 두툼한 지방 사이에 남몰래 숨어있던 대퇴근도, 부드럽게 리듬을 타고 있다 생각했지만 분명 뻣뻣하게 꼭 쥐고 있었을 손가락 사이사이와 손목 팔목 어깨까지. 하지만 자꾸자꾸 생각이 났다. 느릿느릿 나를 태우고 걷던 페가수스의 뜨뜻한 등이, 그 위에서 바라보던 봄기운이 스며드는 숲의 아침이. 다음 강습일이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봄볕이 진해지는 만큼 말과 함께 하는 시간이 익숙해져 갔다. 언제나처럼 텅 빈 평일 아침 승마장에는 내가 늘 즐겨 듣는 클래식 FM이 흘러나왔고, 벚꽃이 흩날릴 때 즈음엔 ‘설마 내가 저걸 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경속보를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땅 위에서는 절대로 못하는 스쾃 자세를 말 위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모습이랄까. 우아한 전신 운동의 정수로 나아가는 시간들, 저 멀리 피고 지는 꽃잎과 연둣빛으로 변해가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누워 쉬는 말들도 바라보며, 아 이토록 여유롭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운동이 정말 또 있을까 싶었던 그 해 봄, 나는 승마와 사랑에 빠진 애마부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좀 편안히 말에 오를 수 있게 되자, 원장님은 새로운 과제를 던져 주셨다. 좀 더 너른 연습 트랙으로 자리를 옮겨 일렬로 쭉 세워진 기둥 사이를 좌우로 오가며 통과하는 것, 말과의 호흡도 어느 정도 맞춰졌고 이제 제대로 말을 ‘몰아보라’는 것이었다. 고삐를 잡은 두 손에 전해지는 팽팽한 긴장감에 가슴이 쫄아들었지만, 기수가 긴장하면 말이 얕잡아본다는 원장님의 경고를 기억하며 마음을 굳게 먹고 출발. 초반에는 약간의 기싸움을 하며 비척거리다 무사히 모든 기둥을 지그재그로 돌며 통과해냈다. ‘내가 이런 걸 해내다니!’ 우쭐한 마음이 들면서 살짝 긴장이 풀려 고삐를 쥔 손의 힘을 풀고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발끝에 느껴지는 말의 근육이 탁 하고 단단하게 뭉치더니 말이 너른 트랙의 바깥쪽을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속력으로.
“조심! 속도 낮춰요!” 원장님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들으며 고삐를 말아 쥔 순간, 부웅, 몸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쿵.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인생의 모든 순간이 영화처럼 스쳐간다더니, 정말 그랬다. 모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그 순간, 많고 많은 취미 생활 중에 하필 승마를 고른 나와 그걸 흔쾌히 응원해 준 남편의 얼굴이 떠오르며, 아 나는 영영 다시 걷지 못하게 되겠구나 싶은 두려움과 후회와 그리고 다리에서 엉덩이, 허리를 타고 오르는 엄청난 고통과 저 말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민망함과 기타 등등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나를 집어삼켰다.
다행히도 내 몸을 둘러싼 폭신하고 포근한 지방들 덕분에 심각한 부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악명 높은 낙마 트라우마는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갑자기 말이 치고 나가던 순간 팽팽하게 쫙 당겨지던 말 근육의 움직임이 서늘하게 떠오르곤 한다. 흙먼지 뒤집어쓰고 처참하게 나타난 나를 진료하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다행히 뼈나 관절엔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이게 아마 진단으로 나오지 않는 골병이 될 확률이 큽니다.”라고 말씀하셨듯, 가끔씩 스멀스멀 신경통처럼 올라오는 고관절 통증도 여전하고 말이다.
진단에도 나오지 않는 골병을 다스리기 위해 통증 클리닉을 한 달간 매일 출석하다시피 한 뒤 돌아간 승마장, 원장님은 내 앞에 더 이상 페가수스를 데려오지 않으셨다. 그 대신 내 앞에 나타난 건 눈부시게 하얀 백마 프레스토. 이 말들이 언제고 나를 비웃으며 내팽개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움찔거리면서도 나는 다시 말에 올랐다. 말과 호흡을 맞추며 통통통 리듬을 타고 슬그머니 속도를 높이던 봄날의 기억은 저 멀리 사라지고 ‘처음 그 느낌처럼’ 바짝 긴장한 채 정자세로 앉아 기는 건지 걷는 건지 애매한 속도로 타닥타닥 제일 좁은 트랙을 하염없이 도는 여름의 문턱. 애마부인이고 싶었던 낙마부인은 스스로 깨달았다. 긴 머리 휘날리며 새하얀 승마복에 검은 조끼 갖춰 입은 우아한 귀족이 되기는 틀렸다고, 우리의 인연은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몇 해가 지나고 두려움도 아픔도 슬슬 아득해지고 나니, 문득문득 말 위에서 바라보던 숲의 풍경이, 타닥타닥 발굽 소리가, 온몸을 타고 전해지던 리드미컬한 말의 움직임들이 그리워진다. 재미있던 기억만 남은 요즈음엔 새로 이사한 동네 근처에 말 달릴 만한 곳이 있나 흘깃흘깃 찾아보기도. 아는만큼 보인다더니 경험하기 전에는 도심 근처에서 승마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는데, 생각보다 승마장은 곳곳에 꽤 많이 있고 저렴한 가격에 강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많다. 다만 몇 해 전보다 아주 조금, 어쩌면 조금 많이 무거워져서 말들에게 영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서늘한 가을바람 가르며 말 달리는 아침을. 다가닥 다가닥 말발굽 소리에 맞추어 말과 함께 호흡하고 걷고 뛰고 달리는 한적하고 여유롭고 자유로운 순간을. 맨 처음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말에서 쿵 떨어지고 난 뒤 엄습한 두려움을 꿀꺽 참아내고 다시 말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결코 가질 수 없었을, 조금은 특별한 추억의 조각들이 오랜만에 마음 속에서 반짝인다. 이 가을이 지나기 전, 낙마부인은 과연 다시 애마부인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