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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un 29. 2023

뭐라도 쓰면 무엇이라도 될 것 같아

널 위해 숨 쉬고 있을게  #1

  "선배, 튀었어요."

  영란은 이 말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한 마디 뱉고는 전화를 끊었다. 영란이 말하는 튀었다는 주체는 최근 행사를 진행한 기획사를 말한다. 가끔 아르바이트로 어쩌면 이것이 본업인지도 모를 행사 일을 할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한류 아이돌 가수까지 참여하는 규모가 큰 행사였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보배에게는 모처럼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길만한 일이었다. 힘든 줄도 모르고 밤을 새우고 밥을 거르며 일에 몰두했다. 무사히 잘 치러냈는데 정산시기가 지났는데도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영란이 알아보니 기획사가 사기를 쳤고, 회사는 사라져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몸과 마음만 축나는 일이 돼 버렸다.


  작가 일을 하면서 이런 일은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벼랑 끝에 서서 했었던 일인지라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기운이 빠져 멍하니 작업실에 앉아 있는데 다시 또 보배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숨이 가빠지면서 토가 나올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이름을 봤지만 통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문자메시지와 SNS 메시지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휴대폰은 긴급재난문자처럼 울려댔다. 보배는 전화기를 끄려다 메시지 창에 보이는 붉은 대게 사진을 보고는 작업실을 나왔다.  

  울진대게였다. 속이 꽉 차고 달디 단 대게 사진이었다. 대게철은 입맛 없다는 할머니의 입맛이 돌아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보배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울진이라는 곳에 가보지 않았지만 울진이 고향인 할머니는 대게로 고향을 기억하신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주방으로 달려가 대게를 찾았다. 식구들이 북적여야 할 식탁에는 할머니 혼자 차를 마시고 계셨다.  

  " 할머니, 대게 어딨 어요? "
  " 대게? 대게는 울진에 있지. "

  "뭐야? 지금 거짓말한 거예요? "
 " 누가? 내가?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주방으로 들어오는 엄마는 보배가 노려보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실은 내가 울진을 가려고 하는데 네가 나 좀 데리고 가야겠다. 알다시피 네 엄마는 운전을 못하고, 네 아버지는 일을 해야 하고........ 그래서 생각해 보니 너밖에 없어. 어차피 너는 놀면서 일을 하니까 네가 운전 좀 해야겠다. 내일 새벽에 떠날 테니까. 그리 알고 준비해. "


   "할머니, 갑자기 무슨 울진이에요? 그리고 제가 언제 놀면서 일을 했어요? 세상 그 어떤 직장인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정말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

  "그래. 그렇다고 할게. "

  "할머니, 프리랜서 작가는 시간만 자유롭지 24시간이 근무시간이라고요. 자꾸 논다고 하시는데 그 시간도 제게는 투자예요. 작가에게는 모든 시간이 영감이고, 창작이란 말이에요."


 "알았다. 그거 내가 듬뿍 줄 테니까. 잔말 말고 준비해. "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는 꼿꼿하고 기품이 넘치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에게 sos 요청을 해보지만 엄마는 대신 할머니의 짐 가방을 내밀었다.  



 ---------> 이어서 계속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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