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디 Oct 11. 2020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바라만 보기로 했다

입 발린 위로의 말은 느슨한 인간관계가 주는 여러 불행 중 하나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던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별로 친하지 않은 같은 반 친구가 갑작스럽게 부친상을 당했는데, 교복을 입고 쭈뼛쭈뼛하게 다녀온 상가집에서 씩씩하게 상주 역할을 하던 그 친구더러 '넌 참 대단하다, 나 같으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라는 당치도 않은 말을 해버린 것이다. 당시 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 같은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로선 어떻게든 쥐어짜내 위로의 말을 꺼낸 것인데 나중에서야 그 땐 참 실수했구나, 라고 두고두고 후회했던 일이다.


어른이 되서도 남을 위로할 일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실수했다. 학교 선배의 모친상에 가서 오랜만에 본 반가움에 웃음기 띤 얼굴로 인사를 한 것도 모자라 '저희 아버지도 위암이 있으셨는데 다 나아서 지금은 멀쩡하세요'라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선배의 어머님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약속한 결혼을 앞두고 깨지는 커플을 볼 때마다, 그래도 결혼까지 안가고 헤어져서 천만 다행이네요, 라는 말은 예사로 했고 건강이 나빠 퇴사한다는 책임님께는 '회사원보다 다른 일이 더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라고 해맑게 작별 인사드렸던 적도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 책임님은 권고 사직으로 원치 않게 회사를 떠났던 것이었다.


우리는 이처럼 다른 사람을 위한답시고 영혼 없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그리고 이 중에 진심인 것은 얼마나 있을까. 누가 무슨 일을 당하기만 하면 온갖 위로의 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식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한 동료에게 '그래도 애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라던가, '혼인신고 안해서 천만 다행'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는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우리의 위로 방식이라는 것이 과연 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기 위해 의무적으로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그 일을 직접 겪지 않고서야 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자신이 없다. 전후 사정도 모르면서, 그렇다고 진득하게 앉아 들을 생각도 없으면서 건넨다는 위로의 말이 도대체 얼마나 영양가가 있는 것인지. 


비로소 나는 그 누구의 어떤 슬픈 일에도 한 마디도 거들지 않기로 했다.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아무 쓸데없는 말잔치 대신 진지한 눈빛으로, 나는 당신의 힘듦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애먼 소리로 당신을 더 불행하게 만들진 않을게요, 라고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은 위로의 마음을 표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아이가 아파서 회사를 그만 두신다는 김 대리님,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마음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서가 아니랍니다. 얼마나 힘든 사정인지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없겠지만 다른 곳에서 더 잘 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이전 05화 점심 메뉴 고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