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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Oct 04. 2020

같이 산다는 것

무언갈 사는 것은 그 무언가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지난 주말엔가 아내와 같이 꽃시장에 화분 고르러 갔다가, 유난히도 풀빛을 좋아하는 아내가 딱 내 가슴께만큼 큰 뱅갈고무나무라는 것에 꽂혀 버렸다. 나는 보잘것없는 우리 집에 그 큰 나무가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 다른 화분들은 다 흰색인데 꼭 보도블럭의 회색 같은 고무나무 화분이 얼마나 눈에 밟히게 튀어 보일지, 또 나무 따위에 8만원이나 써 버리면 남은 한 달 생활비가 얼마나 쪼들리게 될 지 등에 대해 얼마나 열변을 토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내가 허영 없이 순수하게 물 주고 식물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해할 모습이 떠올라 그만 뱅갈고무나무 입양에 동의하고 말았다.


1미터도 족히 넘을 나무를 힘겹게 집으로 들여놓았더니 웬걸, 나무는 계산할 동안 꽃집 사장이 바꿔치기한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아 보였고 덕분에 좁다란 우리 집 베란다에 딱 맞게 들어갔다. 아, 역시 세상에 아내 말을 들어서 나쁠 건 하나도 없구나. 라고 생각하며 잠시 거실에 걸터앉아 나무를 감상해 보았다. 덥고 비 많이 오는 데서 수입된 것이라서 그런지 이파리는 풍성했고 줄기는 꽤 두꺼워서 남자아이의 팔뚝만해 보였다. 그렇게 꼭대기서부터 찬찬히 시선을 내려가는데 딱 화분 있는 데서 멈추어 버렸다. 남은 시멘트 굳혀서 만든 것 같은 그 화분이 화이트톤의 우리 집 인테리어를 모두 잡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병원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새하얀 화이트로 도배된 실내야말로 신혼집 인테리어의 절대선이라고 믿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하고 싶었던 것인데, 고작 화분 따위가 내 삶의 균형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역시, 내 말대로 이 나무는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어. 나의 타고난 심미안은 어김없이 들어맞는구나. 생각이 거기까지 가 버리면 그때부터는 부부싸움 시작이다. 내 말대로 사지 말았어야지, 그럼 거기까지 가서 빈 손으로 오냐, 돈이 한두푼도 아닌데 마음에 꼭 안들면 사질 말아야지, 그럼 오빠는 왜 그때 좋다고 했어? .... 


한 대 얻어맏고 서재방에 들어와 가만히 생각해보니 또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쪼잔하게 군 것 같기도 싶다. 결국 아내 위한답시고 사자는 결단 내린 건 난데, 또 이제와서 딴 소리하는 걸 보니 난 아직 너무 어린 놈이구나.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저 나무에 내가 정을 붙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결국 몇 년은 같이 살아야겠지. 나랑 아내랑 함께 산 저 나무랑 나랑 아내랑 이렇게 사는 것도 기구한 운명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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