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디 Oct 31. 2020

설거지에 관하여

집안일에도 공감이 필요하다

아내는 설거지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얼마나 안하는지 두고보려고 설거지를 그득 그득 쌓아놓고 바깥에 나갔다 와 봐도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거실 리클라이너에 앉아서 과자를 먹으며 태연하게 인사를 건넨다. ‘어 왔어?’


어 왔어? 복장이 터지는 말이다. 설거지가 저렇게 쌓여있는데도 저토록 천하 태평하다니,

나는 오늘도 팀장님 비위 맞추느라 여태껏 회사에서 자릴 지키다 퇴근했는데 진작에 집에 들어와 충분히 쉬었을 아내는 도대체 여지껏 뭘 한거란 말인가?


소심해지지말자. 다 큰 어른처럼 행동하자. 아량 넓은 남편처럼 굴자. 오늘은 절대로 짜증내지 말아야지. 다짐에 다짐을 하며 고무장갑을 끼는데, 아내가 이야기한다. '오빠 오늘 나랑 넷플릭스 보기로 한거 잊었어?'


참아왔던 짜증이 한 순간에 폭발한다. 아니 너가 설거지 미리 해놨으면 좋았을텐데 이걸 놔두고 어떻게 쉬어? 넌 여태 집에서 뭐했어? 설거지 쌓인거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아? 항상 내가 하는데 가끔은 너도 집안일에 좀 신경써주면 안돼?


방아쇠의 불을 당기면 전쟁 시작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가정에 기여했는지와 정돈된 삶의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침 튀기며 역설했고 아내는 왜 설거지를 꼭 지금 해야 하는지, 내일까지 놔두면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해 따지고 든다.


설거지 그 까짓 거 내일 하면 안 되냐고?

안 된다. 설거지는 내일까지 놔두면 큰일이 난다. 아주 피치못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설거지는 눈에 보이는 즉시 해치워야만 한다. 설거지는 마치 자가증식하는 세균과도 같다. 한 번 쌓이기 시작하면 수납장이 텅 빌 때 까지 집안의 모든 그릇이 더러운 개수대 위에 켜켜이 쌓인다. 설거지는 마치 밀린 방학 숙제처럼 한 번 밀리면 영원히 하지 못할 것 처럼 밀려버린다.

개수대의 바닥이 보일 정도로만 설거지감이 쌓여 있을 때는 괜찮다. 그런데 냄비나 밥솥 같은 거대 설거지감이 추가되고 볶음 요리를 해서 눌러붙은 웍 같은 것이 그 속에 물 조차 부어져 있지 않은 채 조리대 어딘가에 널부러저 있으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진다.

이 막막한 감정을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이 공감해줬으면 좋겠는데, 남들한테는 그렇게나 공감능력이 좋고 사교적인 아내가 나의 설거지에 대한 고뇌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으니 열이 안 받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 날의 싸움은 언제나처럼 아내의 불 같은 성정을 이기지 못한 내가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것으로, 그날 밤은 설거지도 못 하고 넷플릭스도 못 보고 서로의 불편한 숨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것으로 끝이 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