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에도 공감이 필요하다
아내는 설거지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얼마나 안하는지 두고보려고 설거지를 그득 그득 쌓아놓고 바깥에 나갔다 와 봐도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거실 리클라이너에 앉아서 과자를 먹으며 태연하게 인사를 건넨다. ‘어 왔어?’
어 왔어? 복장이 터지는 말이다. 설거지가 저렇게 쌓여있는데도 저토록 천하 태평하다니,
나는 오늘도 팀장님 비위 맞추느라 여태껏 회사에서 자릴 지키다 퇴근했는데 진작에 집에 들어와 충분히 쉬었을 아내는 도대체 여지껏 뭘 한거란 말인가?
소심해지지말자. 다 큰 어른처럼 행동하자. 아량 넓은 남편처럼 굴자. 오늘은 절대로 짜증내지 말아야지. 다짐에 다짐을 하며 고무장갑을 끼는데, 아내가 이야기한다. '오빠 오늘 나랑 넷플릭스 보기로 한거 잊었어?'
참아왔던 짜증이 한 순간에 폭발한다. 아니 너가 설거지 미리 해놨으면 좋았을텐데 이걸 놔두고 어떻게 쉬어? 넌 여태 집에서 뭐했어? 설거지 쌓인거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아? 항상 내가 하는데 가끔은 너도 집안일에 좀 신경써주면 안돼?
방아쇠의 불을 당기면 전쟁 시작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가정에 기여했는지와 정돈된 삶의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침 튀기며 역설했고 아내는 왜 설거지를 꼭 지금 해야 하는지, 내일까지 놔두면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해 따지고 든다.
설거지 그 까짓 거 내일 하면 안 되냐고?
안 된다. 설거지는 내일까지 놔두면 큰일이 난다. 아주 피치못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설거지는 눈에 보이는 즉시 해치워야만 한다. 설거지는 마치 자가증식하는 세균과도 같다. 한 번 쌓이기 시작하면 수납장이 텅 빌 때 까지 집안의 모든 그릇이 더러운 개수대 위에 켜켜이 쌓인다. 설거지는 마치 밀린 방학 숙제처럼 한 번 밀리면 영원히 하지 못할 것 처럼 밀려버린다.
개수대의 바닥이 보일 정도로만 설거지감이 쌓여 있을 때는 괜찮다. 그런데 냄비나 밥솥 같은 거대 설거지감이 추가되고 볶음 요리를 해서 눌러붙은 웍 같은 것이 그 속에 물 조차 부어져 있지 않은 채 조리대 어딘가에 널부러저 있으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진다.
이 막막한 감정을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이 공감해줬으면 좋겠는데, 남들한테는 그렇게나 공감능력이 좋고 사교적인 아내가 나의 설거지에 대한 고뇌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으니 열이 안 받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 날의 싸움은 언제나처럼 아내의 불 같은 성정을 이기지 못한 내가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것으로, 그날 밤은 설거지도 못 하고 넷플릭스도 못 보고 서로의 불편한 숨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것으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