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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이불 Nov 16. 2019

울 곳이 없는 시대

겨울 제주 바다와 눈 쌓인 숲


실려온 짯짯한 바다 바람에

차창은 금세 얼룩이 졌다.

홀로 있던 집을 바라본다.

'매일 얼마만큼 얼룩이 지고 있는 걸까.' 싶다가

속절없이 매일 조금씩 달라져

사라져 버린 얼굴들이 그립다.


마음을 비운다.


집은 소리 없이 바다가 되어가고 있다.

그 풍경 속에서 우리도 오늘만큼의 바다가 되어가고 있었다.


1. 파란 방, 어떻게 이렇게 슬플까.

2. 가혹한 문장들이 부수어지는 순간을 목도한다.

3. 해 뜨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 밤의 시간을 살아내는 자가 있다.

4. 손이 시리다.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가득 붓고 얼그레이 티를 만든다.

5. 곁에 있어. 함께 있어.


5번에 담은 것은 의지(依支)가 아니다.

의지(意志)이다.   


순환하는 물의 기억을 읽다 보면

흩어질 육신 안에서 얼마나 작고 좁았는지

깨닫게 된다.


파도와 파도 사이.

푸르게 찢어지던 소금.


빠르게 헤엄쳐 오던 적막이 부수어진다.

산으로 가면 눈이 쌓여 있을 거야.


기상청은 세시부터 눈이 내린다고 했다.

폭설이었다.

길 위엔 버스 하나 다니지 않았다.

구름은 빠르게 흘렀다.

낮은 담으로 이루어진 마을을 지나자,

이내 높이 솟은 나무들이 시야로 뛰어들었다.


낮은 채도의 황록색 나무들,

아무도 발 디딘 적 없는 너른 눈밭.

꿈인 듯했다.



차를 세우고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숨을 따라 하얀 입김이 터져 나왔다.

가까이 있던 감정들이 숲 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솜조각

사진 글 솜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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