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가 그리고 간 궤적을 따라서
1.
안녕, 우리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날 땐 따뜻한 남쪽나라 이야기를 들려주어.
2.
스치는 바람이 대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순한 살결을 지녔다고.
가을 한 입 마시고 눈을 감으면 들을 수 있다.
언제나 품어지고 있다는 감각을.
3.
오래 지니고 있던 관성이 물러져간다.
방 한 구석에 앉아있던 복숭아처럼.
데리고 올 땐 몰랐던 것처럼.
가을은 방문을 넘었고 나는 푹 익는다.
4.
같이 들어요.
혼자 추는 춤 - 언니네 이발관
미안하다 - 백자
꿈 - 김윤아
넌 쉽게 말했지만 - 조원선
5.
안녕이라고 발음되는 순간들은
거의 시리고도 아릿하지만 또 씩씩하게
우리는 우리의 겨울을 향해 걷고,
봄을 향해 먼저 유연하게 날아가는 이를 봅니다.
다시 볼 날 그리 멀진 않겠지요.
네, 적당한 날 애틋하게요.
6. 눈, 코, 입술. 너의 얼굴. 혹은 나의 얼굴.
7.
꿈에서도 전할 수 없었던 마음이 공중에 흩어져 나부낀다.
8.
그대는 내 사진에서 다(茶) 향이 난다고 했다.
깊게 우린 차향이. 나는 헤아린다.
우리 함께 차를 우리던 시간들을.
그대가 전한 한마디로 쉬이 시간을 넘나 든다.
시간 속 우리의 대화에 새겨진 다정을 마신다.
9.
창문을 여니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로 방 안이 금세 가득 찬다.
혼자 방 안을 걷던 감정이 잠시 눈을 감는다.
차가운 공기가 발목을 훑는다.
으아, 푹 끓인 바지락 국이 먹고 싶다.
10.
끝.
11.
그리고 다시, 다시.
12.
안녕.
안녕하세요.
*
이번 글은 쓰면서 조금 힘들었는데
아직 그 순간에 남아있는 감정들이
몸에 새겨져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새에게서 배운 것처럼
우리는 순환하고 있고
이토록 귀한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
다시 만날 아름다운 나날을 위해
그대 편안한 곳에서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또 만나요.
https://brunch.co.kr/@apieceofsom/9
#솜조각
사진 글 솜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