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나
요즘 들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을 느낀다.
일을 하면서도 5~10분, 심하면 1~2분 간격으로 인터넷 창을 띄우고 유머 글을 보고 있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이미 다 읽었으면서도, 툭하면 들어가서 새로 나온 글이 없나, 새로고침이나 하고 앉았다.
쉴 때는 어떤가? 마찬가지다. 도무지 하나의 활동에 집중하지 못한다. 진득한 시리즈물은 고사하고, 유튜브에 단편적으로 올라오는 영상 하나 보는 데에도 집중을 하기 어렵다. 재생시간이 10분을 넘어가는 영상은 일단 예선통과도 못하고 버려진다. 간신히 고른 영상 하나 시청하자니, 10분이 채 안 되는 그 재생시간마저도 지겹게 느껴지는지라 2배속 적용은 이제 필수가 되어버렸다.
나는 직업 특성상 글을 많이 읽는다. 작가이기에 좋은 아웃풋을 내려면 일단 다양한 경로의 인풋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책이나 논문, 보고서 등 전문자료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까지 두루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 본업과 연관된 '글 읽기'에서마저 마치 유튜브 영상을 보듯 스킵과 건너뛰기를 남발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시간을 들여 정독해 본 게 도대체 언제인지 모르겠다. 요즘 나는 대부분의 글을 훑어보는 편이다. 핵심을 빨리 파악하고자 각 문단의 앞부분과 뒷부분만 볼 때도 많다. 논문을 볼 때? 습관적으로 초록abstract 아니면, 논의general disscussion 부분을 본다. 거기에 연구 목적, 실험 결과 등 요약이 다 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는 내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만 읽고 나머지는 그냥 버리고 만다. 핵심 주장만 챙기고, 나머지 자잘한 사례들이라거나 저자의 경험담 같은 건 그냥 흘린다.
설마 나도 성인ADHD가 아닐까?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니까, 이제는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정신의학과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 스스로 해결은 고사하고, 이제 전문가의 상담과 약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가 된 건 아닐까? 그런 두려움 때문에 '성인ADHD 진단', '성인ADHD 특징' 같은 걸 검색해보게 된다.
난 왜 한 가지에 집중을 못할까? 하루는 진득하게 뭐 하나 붙들지 못하고 헤매고만 있는 나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봤다. 내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발견한 나의 생각과 감정은 다음과 같았다.
생각: '아, 재밌는 게 하나도 없네', '이것도 시시하고 저것도 시시해', '대체 뭐부터 해야 정답인 걸까'
감정: '무기력', '지루함', '권태감', '혼란' (그렇다고 우울한 정도까지는 아님)
크게 두 가지 원인을 찾은 것 같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우선순위 결정의 어려움), 그리고 뭘 해도 재미없는 것 같은 느낌(빈약한 기호). 이 두 가지다.
이는 내 직업의 특성 및 일할 때의 습관과 관련이 있다. 우선 나는 프리랜서다. 정형화된 Job description 같은 게 없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칼럼도 쓰고, 강연도 하고, 검사도 만들고, 코칭도 하고, 자문도 하고, 집필도 하고, 분석도 하고, 개발도 하고, 설계도 하고, 노가다도 한다. 아직 확실한 수입 루트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내 머릿속은 늘 바쁘다. 프리랜서로서 살아남으려면 뭐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일에 도무지 연속성이라는 게 없다. 이번 주는 강연을 했다가, 다음 주는 외주 업무에만 집중한다. 그다음 주에는 책을 쓰느라 바쁘고, 또 그다음 주에는 검사를 개발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런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과 정신없음이, 일의 영역을 넘어 내 일상 전반을 지배하게 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회사원으로 살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회사 내에서는 내 직무가 있었고 직책이 있었다. 그에 맞게 해야 할 일을 정돈하고, 정해진 목표대로 나아가면 됐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계속 그런 식으로 일관성 있게 살아도 된다는 긍정적 시그널이었다. 그러나 프리랜서로서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나의 인생 여정을 돌이켜본다. 지난날을 반추하면서 내가 느끼는 교훈은 '역시 젊었을 때 하나라도 새로운 걸 더 많이 해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이든, 취미든, 악기든, 사교이든, 도전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하지만 더 어렸을 때는 그걸 깨닫지 못했고 내 인생은 단조로움의 연속이었다.
외모는 평범하고, 그냥 학교에서 공부 좀 했고, 그저 그런 학생이었고, 친한 친구들이 좀 있으며, 컴퓨터게임을 좋아했고, 치킨을 좋아하고, 술도 가끔 마셨고, 주말엔 인터넷이나 하며 낄낄댔고, ...
음악에도, 요리에도, 예술에도, 운동에도, 그 어디에도 깊은 조예가 없는 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거늘, 현재까지 인생의 상당수를 인터넷하고, 게임하고, 뒹굴거리는 데 소비해 버렸으니, 젊었을 때 충분히 '재미'를 발굴하지 못한 것이다. 단조로운 내 기호관은 점점 굳어져 새로운 재미의 가능성을 거부하고 있다. 이제 와서 쩌는 음악, 쩌는 음식, 쩌는 그림 본다고 해도 '확 빠져드는' 경험 같은 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익숙한 것만 자꾸 찾는 거다. 늘 하던 게임이나, 늘 보던 장르의 유튜브, 늘 보던 사람들, 늘 가던 장소, 뭐 그런 것들에서 깊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맛을 노리는 것이다. 딱히 다른 대안은 없는데, 기존의 것에는 질려버렸으니 나는 오늘도 유튜브를 켜지만 섣불리 뭐 하나 고르지 못하고 목록만 훑고 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순위 결정의 어려움'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고 믿고 있다. 프리랜서로서 경력과 노하우가 생기다 보면, 그리고 내가 어떤 분야에서 수익을 잘 내는지 경험으로 알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가짓수를 줄여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빈약한 기호'의 문제는 여러모로 골치가 아팠다. 무언가 새롭게 시도할 용기나 의지는 안 나는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다 너무 익숙하고 진부해서... 도통 진득하게 붙잡고 있을 만한 게 없다.
그나마 그런 와중에 육아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육체적인 피로는 말할 수 없이 커졌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은 이전보다 줄어든 것을 느낀다. 쉽게 말하면, 심심할 틈 따위가 어딨겠는가. 기저귀 갈고, 밥 주고, 우는 거 달래줘야 한다. 유튜브 켜놓고 이 영상 볼까, 저 영상 볼까 고민하며 수십 분 날릴 여유 따위는 없다.
쓰고 보니 글의 흐름이 요상하다. 사실 나는
집중력 부족의 문제 →
내 본업인 글을 다룰 때에도 그런 문제가 있음 →
눈 말고, '입으로 읽었더니' 좀 낫더라.
여러분도 눈과 입을 동시에 사용하여 글을 읽어보시라,
그럼 한결 나을 것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의식의 흐름대로 써 재낀 결과, 자아성찰만 실컷 하고 말았다.
아무튼,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다면
1) 우선순위의 문제를 고민해보고,
2) 빈약한 기호의 문제를 돌이켜볼 일이다.
3) 글을 읽을 때는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도 보면 좋다!
그리고 나처럼 육아를 시작하게 되면 어느 정도 문제가 해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