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의 날들‘을 보고 떠올린 그날. >
<<옥스퍼드의 날들,
그리고 나의 스코틀랜드>>
영화 제목을 보고 시작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옥스퍼드의 날들> 그리고 어제 그 영화를 봤다.
낡은 책들이 가득한 옥스퍼드의 도서관, 그 공간의 공기마저 느껴지는 듯한 감각. 오래된 책 냄새와 무채색 빛이 스민 창틀 사이로 고요히 흐르던 시간. 나는 그 순간, 나의 유학 시절로 돌아갔다. 나의 스코틀랜드의 날들로.
유학은 내 삶의 오랜 꿈이었다. 단순한 목표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내 인생의 한 장면’이어야만 하는 어떤 장엄한 서사처럼 느껴졌다. 음악을 공부하는 이로서, 세계 무대에서 나를 다듬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딸과 함께였다. 나의 꿈은 곧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서른아홉, 학생이 되다”ㅡ
서른아홉 살, 나는 다시 학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한겨울, 십이월에 비행기를 타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런던, 버밍엄, 그리고 스코틀랜드.
그 계절의 하늘은 마치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잿빛으로 가득했고, 도시의 공기는 서늘함을 넘어 싸늘했다. 낯선 거리의 풍경은 내 어깨 위에 알 수 없는 무게를 얹었지만, 마음속 어딘가엔 이상하게 따뜻한 온기가 피어 있었다.
정성스레 준비한 곡을 누군가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준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설레었다. 오디션임에도, 마치 무대처럼 마음이 들떴다.
그리고 마침내—스코틀랜드 왕립음악원. 그곳이 내 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그렇게 조용히 열렸다.
현실은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나는 인텐시브 코스를 택했다. 오케스트라 과정과 솔리스트 과정, 연주와 콘서트, 쉴 새 없이 하루 열 시간 넘게 연습을 하다 보니 몸이 무너졌다. 결국 어느 날 이가 너무 부어 입조차 벌어지지 않았다. 중요한 무대가 있는 그때, 그 막막함. 그 외로움.
거기에 더해, 100년 동안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다는 공립학교에 들어간 딸.
낯선 환경에서 불안해하며 적응에 힘들어하던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스스로 서기도 힘들었던 내게,
엄마로서, 학생으로서, 연주자로서의 삶은 내 선택이었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내 마음 어딘가에는 늘 안개 같은 감정이 피어난다. 부드럽고 여릿하게, 때로는 아프게. 그 시절을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내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걸 안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희생’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억’이라 부른다. 사랑과 고통이 묘하게 겹쳐진 이름으로.
영화 <옥스퍼드의 날들>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도서관의 냄새였다. 옥스퍼드의 도서관에서 나는 그 오래된 종이 냄새 속에서, 문득 스코틀랜드 왕립음악원 도서관의 향기를 떠올렸다. 인상 좋고 풍채가 좋은 노란 머리의 여유 있는 그녀의 웃는 표정, 낡은 악보, 바스락거리는 종이, 눅눅한 나무 책장들.
“녹음실의 기억”ㅡ
감사하게도 내가 다니던 스코틀랜드 왕립음악원에는 훌륭한 녹음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그 공간은 단순한 연습실이 아닌, 나의 음악을 ‘기록’하고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였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가장 깊이 마음에 남아 있는 건 바로 그 녹음실이다.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곡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그리스에서 온 피아니스트와 함께 마음이 뜨겁게 반응하는 곡들에 몰입했다. 우리는 때로 말보다 음악으로 더 많은 것을 나누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연습하고, 녹음하고, 또다시 연습했다.
녹음실의 공기엔 늘 약간의 긴장감과 벅참이 공존했고, 나의 모든 감정과 호흡, 시간이 마이크 앞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그 과정은 때론 고단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이 모든 순간이 언젠가 하나의 음반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꿈.
그 꿈은 내 유학생활을 지탱해 준 빛이었다.
스코틀랜드의 가을이 서서히 겨울을 향해 걸어가던 시절, 북반구에 가까운 그곳의 하늘은 오후 세 시 반만 되어도 어둠을 품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공기는 금세 싸늘해졌고, 우리는 짧은 해를 아껴가며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딸과 걷는 시간은 소중한 여백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엔 좋아하는 모리슨에 들렸다. 집 근처의 노란 간판의 슈퍼. 우리가 유일하게 자유로와 지는 곳. 영어나 이방인에 대한 압박이 없는 그곳을 우린 좋아했다. 한없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엄마이자 음악가이자 유학생으로 살아가던 나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가끔은 창밖 어둠 속에서 내 안의 공허함과 고요히 마주해야 했지만, 그 공허 속에서도 따뜻함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딸과 함께한 이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순간들 덕분이었다.
그 장면은 이제, 내 인생에서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 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나도 음악을 통해 삶을 이해해 갔다. 어떤 시구보다 더 깊이 스며드는 선율들이 있었다. 외국인으로서, 엄마로서, 음악인으로서, 매 순간이 경계였다. 그럼에도 어떤 날은 바흐의 선율 한 구절이 나를 구원해주곤 했다. 그 음악은 사랑이었고, 말 없는 시였다.
<옥스퍼드의 날들>은 사랑과 시, 낭만과 상실, 삶의 깊이에 대해 말하는 영화였다. 사랑은 그들을 성장시키지만, 동시에 이별로 이끈다. 그 애틋함. 그 아름다움.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좀 더 젊었을 때 유학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덜 힘들었을까. 더 빛났을까.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때여서 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엄마였기 때문에, 연륜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시간을 껴안을 수 있었다.
그곳, 글라스고의 백파이프 소리는 그 풍경을 더욱 서정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낭만 속에서도, 내 마음은 쓸쓸했다.
비와 바람, 작은 튜브를 타고 학교와 집을 오가던 파틱거리. 그리고 고독한 음악 연습실.
오케스트라 생활 18년 차의 연주자이자,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
나는 그 모든 정체성을 지닌 채, 다시 학생이 되었다.
‘프로 연주자’였지만, ‘학생’으로 돌아갔고, ‘엄마’였지만, 혼자 버텨야 할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외국인’이라는 자리.
나는 그 고독 속에서, 비로소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견뎠다. 한 곡, 한 곡, 나를 꿰매듯 그렇게 음악을 이어나갔다.
그 시간은 사랑이었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아름다웠던 시간.
이제 그 시절은 내 안에 뿌옇게 남아 있다. 안개처럼 흐리고, 때로는 아프고, 종종 그립다.
나는 그날들을 사랑한다. 스코틀랜드의 나날들. 나만의 옥스퍼드였다.
25.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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