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하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독서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정책에 따라 책을 읽으면 스티커를 받았고, 스티커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상을 받았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11살 인생의 최초로 받은 상이 이때 받은 독서왕이다. 잘하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도취와 함께 5학년이 되었고, 생의 두 번째로 독후감 상을 받았다. 에디슨의 전기를 읽고 쓴 소감문이었다. 사실상 그 이전부터 만화책방을 매일 같이 드나들며 각종 무협지와 순정만화를 읽었고, 이를 통해 이야기의 감각을 키웠다고 자부한다. 독후감상을 시작으로 고전과 전기, 소설이란 장르의 확장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책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재밌기도 하고 책을 읽는 스스로가 좋아서 책을 읽었다. 누군가 정성 들여 쓴 글을 읽을 때 나는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했던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책이 좋았다. 제주도에서 머물던 시기에도 방송 작가였던 사장님의 게스트하우스에는 손님을 위한 다양한 책이 즐비해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제주의 한 책방에서 문득 출판사라는 세계가 있단 사실을 깨달았고, 나는 출판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내 심장이 뛰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적인 꿈을 찾은 것이다. 신입은 잘 뽑지 않는다는 보수적인 출판업계에 발을 들이기 위해 출판 학교부터 시작했다. 출판 학교만 졸업하면 출판사에 취업이 된다는 한 문장을 믿고 취업을 하겠다고, 6개월 간 월세만 내달라고 부모님께 지원을 요청했다. 제주에서 서울로 그렇게 다시 나의 꿈이 시작되었다.
책에 한발 가까워졌단 사실이 설레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더 컸다. 산을 너무도 좋아하지만 정상에 오르기 전 산에 대한 두려움에 울음이 터지고야 만다는 한 시인의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 두려움의 이유가 사실상 무엇인지 몰랐지만, 나도 너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돼서 이런 마음이 드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을 공부하던 시기에 서울에서 잠시 살았다고는 하나 방을 구해 서울 살이를 시작한 건 처음이었다. 서울 집값이 비싸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홍대라는 점과 단기간 방을 구한다는 이유가 더해져 그렇겠지만 1인 고시원 조차도 월에 50은 기본이었다. 셰어하우스가 유행을 시작하던 시기였고, 드라마에서 봤던 셰어하우스에 대한 로망을 더해 고시원보다는 좀 더 아늑해 보이던 그곳에서 서울 살이를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홍대라는 점과 단기간 계약을 이유로, 여성전용 셰어 하우스답게 보안 업체와 계약이 되어있단 이유로 방은 넘치게 비쌌다.
싱글 사이즈 침대 하나와 옷장 하나면 한 사람이 더 누울 자리도 없이 방은 꽉 찼지만 낯선 서울 땅에서 주어진 유일한 나의 공간이었다. 나는 그 방에서 잠을 자고 글을 쓰고 밥을 먹으며 꿈을 찾아 서울에 상경한 나의 모습을 응원했다. 비싼 월세만큼, 부모님이 믿어주신 만큼, 다른 친구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 천천히 결정한 만큼 나는 잘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첫 발을 내민 게 무색하게도 얼마 안 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 꿈에도 돈이 필요했다. 박봉이라는 출판업계의 월급은 서울살이를 위해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서울에 집이 있었다면, 조금 더 집세가 저렴했다면, 애초에 책을 만드는 일을 꿈꾸지 않았다면 하는 마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누가 하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닌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그럼에도 현실 앞에 나는 지쳤고 힘들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집에서 통근을 하며 다니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와 같이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살이를 하며 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나와 다르게 여전히 책을 갈망했다. 책을 그만큼 사랑하는 거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의 마음이 부끄럽고 자책스러웠다. 꿈에 자꾸 돈을 따지는 것이 속물처럼 느껴졌고 자괴감이 들었다. 꿈과 열정이 있으면 자연스레 모든 일이 되는 줄 알았다. 책을 사랑했고, 책을 만드는 일이 즐거웠다. 그런데 월세와 공과금, 보험비와 핸드폰 값, 교통비와 식비를 더하고 빼며 계산기를 두드릴 때마다 나는 작아졌다. 꿈만 꾸면 된다고 배웠는데,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그걸 위해서만 살아가던데 나는 그것도 안 되는 사람인가 싶었다.
책을 만드는 일이 마냥 꿈꾸던 이상적인 일이 아니란 것도 한몫했다. 이전의 내가 순진했다고 느껴질 만큼 세상은 정말로 현실이었다.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 아니어도 잘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충돌했고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 하기가 어려웠다. 책을 만드는 좋은 사람이 많았지만, 간혹 가다 만난 좋은 책을 만든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닌 사실도 나를 괴롭게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는 걸 몰랐고 알았더라도 그걸 하기가 싫었다. 지금이라면 적당한 타협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그게 안됐다. 나는 무지했고 어렸다.
너무나 시시하게도 나는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갑작스레 가족이 아프다거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급박한 일이 생겼다거나 꿈꿨던 일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거나 하는, 누구에게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드라마틱한 이유 없이 끝이 났다. 그만큼 좋아했던 게 아닌 거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나는 정말로 좋아했다.
마냥 신이나 산의 초입에서 서성이다 나뭇가지에 살짝 긁힌 것뿐이지만, 긁힌 상처를 가지고도 오르는 대단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오르지 못한 그 산을 여전히 동경하지만 나는 까마득하게 앞이 보이지 않는 울창함에 뒤롤 돌아 그만 내려왔을 뿐이다. 고작 살짝 긁혔다고 하는 그 상처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산에 오르기 전 무서워서 눈물이 난다던 시의 주인공과 다르게 나는 오르지도 못한 채 눈물만 흘리고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