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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글씨 Oct 29. 2020

당신이 꿈꾸는 안정성에 대하여, 공기업 인턴생활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처럼

본격적인 취업준비생이 되려 하니 막막했다. 졸업하고 2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뚜렷하게 내세울만한 이력은 없었다. 전 세계 어디에서 일을 해도 상관없다는 이전의 마음은 사라졌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마주하는 것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가능한 가족이 있는 곳에서, 나의 공간이라 생각되는 곳에서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상대적으로 관심 있는 기업과 직무는 대부분 서울, 경기권에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였음에도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

 지방대, 문과, 여자. 취준생 신분으로 내가 가진 타이틀은 참 작았고 특색도 없었다. 3번 참석을 하면 취업 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방문한 청년 일자리 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희망 연봉에 월 200만 원을 적었더니 이런 일자리는 없다고, 이런 식이면 취업이 어려울 거라는 답변을 들었다. 나이가 너무 많다고 했다. 나는 당시 25세였고, 만으로는 23세였다.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꿈을 좇으며 살아서 돈 벌기가 어려운 줄 알았는데, 돈을 버려고 해도 돈 벌기가 어려웠다. 세상이 뭐 이렇지? 

심각한 염세주의자가 될 것 같았다. 마음을 다해하고 싶은 일은 사라졌고, 다시 찾고 싶지도 않았다. 집에서 살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 중요한 조건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기업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의 대다수가 공기업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하거나 재직 중이었다. 대부분이 공기업을 목표로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성'에 있었다. 보장된 정년과 노후, 워라밸과 복지 등 이전까지 내가 경험했던 세계에서 가질 수 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일정한 수입과 안락한 나의 집, 적당한 노동시간 같은 항목들이 '안정성'이란 이름으로 포함되었다. 매력적이었다. 보장된 무언가를 갖고 싶었다.

 공기업에 가려면 토익, 컴퓨터 활용능력 1급, 한국사 1급이 필수라고 했다. 차근차근 자격증을 따고 NCS (공기업 인적성) 공부를 해서 합격을 했습니다가 수순처럼 흘러가야 하는데, 일단 나는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 취득에 실패했다. 공기업에 지원하는 수만 명이 도대체 어떻게 이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만큼 어렵고 지루했다. 다들 이렇게 치열하게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만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살았나 하는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취업지원센터의 말처럼 25살이 취업을 준비하기에 너무 많은 나이처럼 보였고, 나이에 비해 준비된 것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컴퓨터 자격증은 따기 싫었다.

 공기업 입사자 대부분은 인턴 경력이 있다고 해서 일단은 인턴부터 하기로 했다. 25살에 인턴을 시작해도 될까 싶었지만, 자격증보다는 나아 보였다. (돌이켜 보니 인턴 시작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공기업을 준비한다면 서른이 넘어가도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토익과 컴퓨터 자격증, 한국사 시험을 위한 교재와 인터넷 강의, 응시비도 너무 비쌌다. 마침 모은 돈도 바닥이 나기 시작했기에 시험비라도 벌어보자는 마음이었다.


특출 나게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글을 좋아하니까 자기소개서에도 자신이 있었다. 자격증이 없으니 글이라도 정성 들여 쓰자 다짐하며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인턴 자리는 전부 지원했다. 쓴다고는 열심히 썼는데 방향이 잘못된 건지 어떤 건지 몰라도 서류 합격도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인턴부터 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실상은 서류 합격도 못했다. 오만했던 태도와 실상을 몰랐던 무지함을 반성하며, 인생이 열정이면 모든 다 가능할 거라 믿었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마침내 공기업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인턴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반듯한 사원증과 직원들만 접속 가능한 인트라넷, 메신저 프로그램 같은 대수롭지 않은 것들 조차 감격스러웠다. 거대한 조직 속에 소속감을 부여받은 듯했다. 전환형 인턴은 아니었지만 인턴 생활은 좋았다. 원래가 어떤 일이여도 처음 배우고 시작할 때 '아니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게 있었어?' 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처음 배정받은 부서의 사수가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어딘가 한 템포 여유로운 분위기의 조직을 경험하며 사람들이 목놓아 부르던 안정성이란 이런 것일까 생각했다. 예민하거나 신경질 적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견제하거나 시기하고 경쟁에서 이겨내야 하는 것도 없었다. 주어진 책임에 집중하면 충분했다. 모든 공기업의 분위기라 특정 지을 수 없겠지만 5개월간 경험했던 공기업이란 조직은 잔잔히 흐르는 강 같은 곳이었다. 


 잔잔한 물결이 삶의 형태를 안정적이게 만들어 주었을지는 몰라도 마음속에서는 태풍이 불었다. 좋은 조직이었고 좋은 삶이었다. 그런데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인문학 공부를 하던 시절 문득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나도 그랬다. 거꾸로 향해 가더라도 나의 길을 가고 싶었다. 사회적 소속감, 일정한 임금, 적당한 노동시간과 퇴근 후의 삶 모두가 값진 것이었지만 당장의 내가 바라던 안정성은 아니었다. 어딘가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마음이 불안했다. 마음의 안정성을 갖고 싶었다. 취업의 현실을 경험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쓴소리가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길을 잃는다면 돌아오면 되니까 하는 막연한 이상적인 생각과 공기업은 만 34세까지 블라인드로 신입 지원이 가능하니까 괜찮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위안으로 마음의 안정성이 있는 곳으로 헤엄쳐보기로 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도 나한테 묻고 싶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도대체 어쩌라고! 하는 분노 섞인물음이 울컥 쏟아져 나왔고, 네 인생인데 어쩌겠냐 성격인걸 받아들여야지 하는 답변만 돌아왔다. 성격이 왜 이런 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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