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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글씨 Oct 11. 2020

공백기에 뭐 했어요?

그냥 좀 놀면 안 되나요..? 

공백기. 

취업준비생에게 정말 불편한 단어다. 많은 인담자(인사담당자를 이렇게 줄여 부른다.)는 공백기 질문에 방어하는 것이 (그렇다 방어라고 한다! 마치 질문이 공격인 듯! 취업은 전쟁이란 뜻인가?) 중요하다 입을 모아 말한다. 유튜브나 취업준비를 대비하는 책만 봐도 어떻게 공백기를 방어해야 하는지 모범답안이 줄줄 쏟아진다. 아무리 모범 답변을 봐도 기나긴 공백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취업준비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공백기가 없는 게 좋다고 믿었다. 경험사항이 터져라 줄줄이 적어댔던 나의 공백기는 직무와 관련도 없고 그렇다고 뭐 하나 진득한 것도 없었다. 이를 나열하는 자체로 마이너스라는 걸 깨달은 순간 공백기는 말 그대로 텅 빈 공백기가 되었다. 소속이 불분명하거나, 분명하다 해도 회사에서 요구하는 직무와는 전혀 무관한 일련의 나의 활동들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다. 나를 찾고자 떠났던 제주 한 달 살이나 인문학을 공부하며 깨달은 시간,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자 출판 공부를 하고 책방을 운영했던 일들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무언가 열정을 가지고 도전했던 경험, 창의적으로 시도했다 실패한 경험, 협업을 통해 새롭게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될 수 없었다. 이력서의 세계에서 나는 그저 기업이라는 조직에 적응이 어렵고 헛바람만 가득해 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하기에 제주 한달살이로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처럼 제주에 공방을 차리거나, 출판 공부를 토대로 출판사나 서점에 취업을 하기에도 나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만큼의 용기나 재능이 모자랐고 열정과 돈이 없었다. 우습게도 열정이니 꿈이니 노래를 부르던 나는 졸업과 동시에 다가온 현실의 벽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 제주도로 떠난 건 인문학 공부가 끝난 뒤 취업이 하기 싫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취업을 하는게 두려웠다. 졸업하고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꿈을 찾고 싶었고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일자리를 찾아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자리에 들어가는 게 무서웠다. 그 당시 취업에 대한 나의 마음은 정말 딱 그랬다. 나는 취업이 무서웠다. 평생직장은 없다지만 막상 어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막연히 꿈꾸었던 00살의 나는 없고, 그 자리에서 제자리걸음만 하는 나만 남을 것 같았다. 일을 하면서도 멋지게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쩐지 나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의 루틴 한 일상이 내 삶에 영영 고정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일을 해본 적도 없는 주제에 나는 겪어보지 못한 그 일상이 무섭다는 이유로 취업에 뛰어들지 못했고 그 보다는 자유로워 보였던 제주도를 선택했다. 


 처음 제주에 가겠다고 선언을 했을 때 대부분은 용기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용기가 있어 제주도를 선택한 게 아니었다. 취업보다는 제주도를 가는 게 덜 무서운 일이었다. 취업을 선택한 이들은 취업이 덜 무서운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취업을 선택한 사람들이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진 대단한 사람들로 느껴졌다. 나에게 제주도는 용기라기 보단 사실상 회피였다.

  제주로 떠날 당시 펜으로 그림 그리는 것에 재미를 붙인 상태였고 제주도에서 공방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한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인문학 공부를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막연히 제주에 가면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뚜렷해질 것 같았다. 반년 정도 제주 생활을 하며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며 살아보자, 이렇게 사는 삶을 동경해왔으니 그렇게 한번 살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제주 생활을 시작했다. 


 잠옷 차림으로 새벽의 제주 바다를 향해 자전거를 타거나, 관광객으로 가득한 힙한 카페의 단골이 되어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요구르트 맛이 나는 제주의 막걸리를 마시며 그림을 그리는 일상은 상상하던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본 투 비 힙스터라도 된 것 마냥 제주도에 취해있었다. 제주에서 그림을 그리며 공방을 차리는 삶이나, 플리마켓에 엽서를 만들어 팔다 부자가 되는 삶을 상상했지만 사실상 그만큼의 재능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초자금이라고 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육지를 떠나 제주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카페를 차리며 자유로이 사는 듯 해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상 루틴 한 삶을 버텨내며 모은 기반이 있었다. 

 부족한 부분이 돈 뿐만은 아니었다. 선뜻 시도할만한 용기도 없었다. 자유로운 제주의 삶을 꿈꾸었지만, 제주의 삶이 다시금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육지를 떠나 제주에 온 사람들에게 제주의 삶은 곧 다시 현실이었다. 취업이 무서워 도망쳐온 장기 여행객이 아니었다. 제주의 삶이 다시 밥벌이를 시작하고 생계를 지속해야 하는 현실임을 깨달은 순간 제주도는 더 이상 자유로운 도피처가 아니었다. 막연히 꿈같아 보이던 그 삶도 결국 현실 안에 있었다. 


나는 곧 미뤄둔 나의 현실로 돌아가야 했고 제주도의 생활은 내가 지켜내야할 삶이 아니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그림일기를 그리고서는 돈을 벌 수 없었다. 꿈만 있는 삶은 없었다. 나는 나의 현실을 찾아야 했고, 타협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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