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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글씨 Nov 01. 2020

바람직한 취업준비생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울기는 뭘 안 우나요, 가만히만 있어도 눈물이 나는데

 한번 해봤다고 준비만 하면 금방 붙을 거라고 생각했던 취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솔직히 시작만 하면 금방 취업이 될 것 같았다. 자신감은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를 준비할 때쯤 점점 사라졌다. 마침 평소에 '아 이런 곳이라면 일을 해보고 싶다' 느꼈던 출판사에 채용공고가 있었다.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곳이 그쪽이라 그런지 취업이 잘 안될 때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출판사 공고를 찾아봤다.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한 채 질척거렸다.

 막상 지원을 하고 면접 준비를 하면, 처음 출판인이 되고자 했을 때 느꼈던 그 두려움이 다시 떠올랐다. 진짜 합격을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으로 면접에 응했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꿈은 없다고 답했다. 면접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연히 떨어졌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 후 정말로 좋아하는 곳에서 두어 번 면접을 더 봤지만 역시나 떨어졌다.  


 공기업 인턴 경험이 있으니 공기업 위주로 취업 준비를 해볼까도 했지만, 좀 더 변화가 많고 바빠 보이는 사기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컴퓨터 자격증을 따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한몫했다. 만료된 영어 성적을 만들기 위해 다시 토익부터 시작했다. 졸업만 하면 토익 시험을 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지겨웠다 정말. 사기업은 대부분 스피킹 성적을 요구했기에 토익스피킹이나 오픽 시험도 준비해야 했다. 20-40 분간 시험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토익보다는 나아 보였다. 솔직히 120분이나 시험을 그것도 영어로 쳐야 하는 건 정말로 힘든 일이다. 짧아진 시험시간에 대비해 시험 응시비용은 두배 가까이 비쌌다. 토익이나 토익스피킹 같은 시험은 보통 연달아 두세 번 쳐서 컨디션과 운에 따라 제일 잘 나온 점수를 사용하는데, 시험 응시비용만 30-40을 훌쩍 넘어갔다. 


 영어 성적이 준비되면 본격적으로 공채를 기다린다. 요즘은 수시채용을 하는 기업이 많아졌지만 보통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기회가 주어진다. 상반기에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만 지원했고, 하반기에는 세상에 정말로 많은 기업이 있구나 깨달으며 내실 있는 중견기업을 찾기 시작했다. 서류 통과를 하면 인적성 시험을 쳐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삼성그룹에서 진행하는 GSAT가 있다. 인적성 시험은 서울에서만 진행하거나 대전, 광주, 부산 등의 지역에서 함께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오전 9시 20-30분까지 입실해야 하는 인적성을 치기 위해 5시에 일어나 6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시험장을 찾아가야 한다. 지리를 잘 몰라도 괜찮다. 그 시간쯤 지하철 역사에는 후드티에 운동복 바지를 입고 백팩을 든,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한 뱡향으로 가고 있으니 그들을 따라가면 된다. 보통 시험은 직무적성 검사라 불리는 언어, 추리, 수리, 도형 등 관련 과목과 인성 검사로 나뉘어 진행된다. 경우에 따라 전공 시험이 있을 때는 3-4시간 시험을 치는 경우도 있으니 간식이 필수다. 간혹 시험장에서 자사의 푸딩이나 음료를, 대형 프랜차이즈의 커피 음료권을 주는 경우도 있으나 물과 초콜릿 등은 챙겨가는 게 좋다. 우스갯소리로 어차피 시험 통과는 안되니 푸딩을 먹으러 시험 치러 간다는 말도 있다. 


사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인적성 검사를 한번 치기 위해서는 고속버스 비용 혹은 KTX 비용, 시험 시간과 교통편 시간이 안 맞을 경우 하루의 숙박비와 그만큼의 식비가 추가된다. 다른 회사의 시험이 해당 지역에서 양일간 진행되거나 오전 오후로 진행되어 한번에 두 곳에 참가할 수 있다면 운이 좋다. 나의 경우에는 당일로 시험을 치러 가는 경우 대략 15만 원-20만 원이 필요했다. 거의 매주 주말 다른 지역으로 인적성 시험을 치러가면서 시험에 붙을 확신도 없는데 괜히 돈을 땅에 버리는 거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고 시험을 안칠 수도 없고, 차라리 취업 준비도 안 하고 그냥 집에서 숨만 쉬는 게 돈을 버는 방법 같아 보일 정도였다. 전국 어디서라도 교통이 편리한 서울에서 시험을 진행한다는 사실이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지역 거점에서 진행하거나 시험 시간만이라도 오후로 조정해주는 배려는 없었다. 서울에 사는 자체가 스펙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이해가 되었다. 

 회사마다 비슷하다고는 하나 유형이 다른 시험을 매주 치기 위해서 종류별로 모의고사를 구입해 풀고, 주말마다 새벽에 일어나 몇 시간씩 기차를 탔다. 혹시 늦지나 않을까 하는 긴장상태로 시험장을 찾는 일은 정말로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렇게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지만 시험을 통과하기도 쉽지 않다. 만약 시험에서 전부 떨어졌다면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넘어가는 공백의 시간 동안 부족했던 어학성적이나 자기소개서, 인적성 스킬 같은 것들을 익히며 다음 시즌을 기다린다. 


 통상적인 취업 준비생의 루틴이다. 물론 나는 이렇지 않았다. 이렇게 시험을 치는 것도 서류를 통과한 대단한 사람들의 경우다. 첫 시즌에는 취업 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도서관에 가서 그동안 못 읽은 책을 읽고 가끔 자기소개서를 썼다. 취업은 역시 꼭 해야 하나? 하는 도돌이표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여전히 취업이 무서운데 어쩌지 고민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취업에 대한 두려움의 원천임을 깨달았고,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3년 안에 그만둘 수 있다고 스스로와 약속하며 취업 준비를 했다. 국내 대기업은 어쩐지 너무 허들이 높아 보여 나이나 학력과 성별을 보지 않는다고 소문난 몇몇에만 지원했다. 영어에 대한 장벽을 느끼면서도 해외취업 사이트를 즐겨찾기에 넣어두고 인도나 헝가리, 스웨덴과 스위스 등에 있는 국내 대기업의 해외법인이나 공공기관의 지사 자리에 지원했다. 운 좋게 몇 번 면접도 봤지만 역시 떨어졌다. 


 이렇게 취업을 준비하다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아서 최후의 수단으로 취업 스터디를 시작했다. 자소서를 보여주는 것도 부담스럽고, 규칙적인 스케줄이 생기는 것도 싫어 어영부영 미뤄왔던 일이다. 몇몇 스터디는 어학성적, 인적성 시험이나 면접 경험 등의 경력 사항을 요구하기도 했다. 취업 스터디를 들어가기 위한 스터디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래저래 하기 싫은 이유야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일도 일단 해보자' 하고 마음먹은 게 취업준비를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었다. 취업준비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하기 싫은 일의 시작이었으니까,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일단 해보기로 했다. 일단 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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