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스터디를 결심하기 며칠 전 나는 면접에서 떨어졌다. 당신을 120자로 표현하세요 같은 것을 물었던 바로 그 회사에서 보낸 '금번의 채용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역량은....'로 시작하는 문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면접은 토요일 이른 아침에 시작했는데 추위에선지 긴장해선지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뛰다시피 면접 대기실에 도착했다. 나름대로 일찍 도착해서 성실함을 좀 어필해볼까 했는데 내가 꼴찌였다. 20여 명 정도가 둘러앉아 있었고,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면접이 시작되기 전 '채용의 결과와는 관련이 없으니 마음 편하게 풀어도 된다는'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는 인성 검사 문제를 풀었다. 인성검사 문제는 늘 비슷하고 뻔했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어쩔 수 없이 내 앞에 앉아있는 10명의 넥타이를 관찰했다.
그날 나는 엄마가 20년 전 동성로에서 맞췄다는 쓰리 버튼의 재킷에 검은색 일자 슬랙스와 굽이 낮은 로퍼를 신었다. 나도 당연히 면접용 칼 정장이라 불리는 타이트한 A라인 재킷과 미디 길이의 치마, 5cm 굽을 장착한 힐을 가지고 있었다. 숨만 쉬어도 온 몸이 조이는 옷에 살색 스타킹을 신고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를 이겨 낼 자신이 없었다. 치마가 아닌 슬랙스를 입어도 되는지, 낮은 굽의 로퍼를 신어도 괜찮은지, 일자 핏의 재킷이 준비성이 떨어져 보이지는 않는지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충분히 단정하고 전문적으로 보였다.
나를 비롯한 다수의 여성지원자는 면접을 보기 전 많은 고민을 한다. 재킷 안에 입는 블라우스로 그 고민이 시작된다. 버튼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나시 혹은 반팔, 소재와 비 침정도, 목이 보이는 길이까지 고려한다. 그다음은 하의이다. 우선 치마와 바지를 고민하고, 치마 길이의 경우 서 있을 때와 앉았있을 때를 동시에 생각하여 적정 길이를 찾아낸다. 힐을 신을지 단화를 신을지, 살색 스타킹을 신을지 검정 스타킹을 신을지, 머리는 올릴지 내릴지, 올림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을지 동그랗게 말아 올릴지, 실핀으로 앞머리를 어떻게 고정할지, 립스틱은 무슨 색을 바를지, 아이라이너 꼬리를 어디까지 그릴지, 진주 귀걸이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키가 큰데 높은 굽을 신어도 되는지를 포함한 수백 가지의 옵션이 추가된다. 정말로 합격하고 싶은 면접의 경우 면접 시간 전에 샵을 예약해 화장과 머리를 전문가 손에 맡기기도 한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10개의 넥타이를 보고 있자니, 저들도 우리만큼 어떤 넥타이를 맬지 고민하는가 궁금해졌다. 수백 가지 옵션이 있지만 사실 대충 보면 비슷한 무채색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여성정장과 다르게 넥타이에는 색을 줄 수 있다. 정장을 고를 때 네이비나 검정, 투버튼이나 쓰리 버튼, 바지의 핏 같은 차이를 고민은 하겠지만 역시 관건은 넥타이에 있는 듯했다. 채용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인성 검사를 풀고 있는 넥타이 10개를 관찰하며 나라면 어떤 넥타이를 채용할지, 내가 넥타이를 할 수 있다면 어떤 넥타이를 고를지 생각했다. 면접관들이 넥타이를 보긴 할까 싶었지만 무의식 중에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다. 삼성에 면접을 보러 가면 파란 넥타이만 줄지어 앉아있다는데, 빨간 넥타이를 하고 간다고 해서 회사에 부적합한 인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텐데 면접에서 최소한의 성의인가 궁금했다.
수험번호가 빨라 만약 삼성에 면접을 보러 가면 빨간 넥타이를 하고 갈 용기가 있을까 같은, 어차피 가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이 들쯤 면접장에 들어갔다. 면접장의 상황도 대기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마주 보고 있는 10개의 넥타이가 4개가 되고, 내가 넥타이 디자인 따위에 신경을 쏟을 틈 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자리에 앉자마자 4개의 넥타이를 쳐다볼 틈도 없이 '2분간 자신의 인생을 요약해 이야기하라' 했다. 나는 면접의 이런 점이 싫다. 심한 경우 부모님의 학력부터 직업까지 물어보면서 본인들은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내 신상 정보가 집약되어있는 이력서를 가진 그들과 대비해 내가 아는 건 그들이 넥타이를 했다는 사실뿐이다. 그럼에도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에 놓인 나는, 많은 옵션 중 넥타이를 매지 않는 사람으로 27년의 삶은 이내 2분짜리 인생이 된다.
제일 상석에 앉아있는 넥타이는 질문을 하려던 넥타이를 만류하고 이만 나가보라는 손짓을 한다. 코트를 챙겨 입고, 면접을 안내해주던 다른 넥타이에게 인사를 하고 건물 밖을 나왔다. 시간은 아직 일렀고 몸의 떨림이 멈춘걸 보니 아침의 떨림이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 며칠 전 읽었던 면접 백선 책이 생각났다.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으면서. 거짓말쟁이들.
스터디에 두 번 참석하며 스터디의 순기능을 찾았다. 첫 번째는 다들 너무 열심히 해서 같이 열심히 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자기소개서부터 면접까지 지치고 힘든 점에 대한 공감과 위로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스터디를 그만두고 싶어서 빨리 취업을 하고 싶다는 점이다. 다 같이 둘러앉아 색종이를 몇 번 접고 자른 후 펼쳤을 때 어떤 모양이 나올지 진지하게 토론하는 이들의 열정이 존경스럽고, 이런 걸 굳이 해야 하나 하는 무기력한 내가 반성스럽고, 취업을 위한 이 상황과 모습이 빨간 넥타이를 매는 것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럽다. 함께하니 좀 더 나은 것도 같고, 가끔은 재미까지 찾기도 하지만 그래도 취업은 어렵다. 일단 해보기로.. 일단 해보기로 했지만 저기요, 이게 정말 중요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