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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글씨 Nov 01. 2020

질척이는 게 특기는 아니지만요.

책방이라니 멋있잖아! 

 공기업 인턴이 끝나고 취업이 될 때까지 계약직으로 근무할 생각이 있냐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반년이란 시간 동안 그래도 열심히 했구나 하는 뿌듯함과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신 점이 감사했지만, 좀 더 재밌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고 자란 지역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일! 책방 운영이라니!!


대학교 생활 내내 마음을 맞춰 사회공헌팀에서 활동했던 선배들을 만났다. 그들이 운영하는 문화공간에서 책방을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서울과 제주에서 자주 방문했던 주인의 색이 묻어난 안락하고 따뜻한 공간이 떠올랐다. 그런 곳이 내가 사는 지역에도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공간에서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취업과 다른 길을 또다시 선택해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책이 너무 좋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꾸려나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완성된 공간의 한편에 상상하던 책방을 꾸려나간다는 점에서 마음의 부담도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할 것 같았다. 

 


 운영 자금이 여유롭지 않아 아주 소량의 책을 선정하고 전시했다. 주제를 정하고 소개하고 싶은 책을 고르고 골라 추천글을 쓰는 그 일이 정말로 재밌었다. 어느 지역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분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결국 일상이 된다는 말이었다.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누군가 상상하는 것처럼  거창하고 항상 꿈속에 있는 특별한 날들이 아닌 일상. 매일 아침 환기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며 문을 여는 반복되고 평범한 일상. 나는 책방이 내 일상이란 사실이 못내 기뻤다. 책이 뭐라고 그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누군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활동들도 책방에서는 내가 만들면 그뿐이었다. 함께 글을 쓸 사람을 모집하고 논문이나 보고서 혹은 자기소개서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글이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글을 써 내려갔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정리해서 독립출판물을 만들었다. 독립 출판계의 베스트셀러가 될 줄 알았지만 500부를 찍었고 200부를 팔았다. 지역신문에 아주 작게 책방이 소개도 되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꼭 책을 사러 나오는 단골손님도 생겼다. 그래도 여전히 책방은 적자였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문화공간이었기 때문에 내 월급도 당연히 정부지원금으로 나왔다. 책방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월세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전국에 수많은 책방들은 어떻게 운영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책을 팔아서 어떻게 돈을 버는 걸까.  그들은 오래 살아남았고, 좋은 책을 만들고 소개했으며 꿈꾸던 지역의 문화공간을 만들어갔다. 한때 인터넷을 휩쓸었던 존버 정신이라는 말처럼, 그저 버티면, 기다리고 기다리면 가능한 일일까 싶었다. 우리 책방보다도 2년여 앞서 문을 열었던, 지역에 함께 있던 유일한 책방이 결국 문을 닫았고 이상하게 내 마음 한편이 무너져 내려갔다. 늘 적자인 현실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지원금이 끊기면 도저히 답이 없었다.


팀으로 함께 운영하던 문화공간이었기 때문에 일의 끝맺음이 나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고백했다. 돈을 더 벌고 싶다고,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지 마음이 불안하다고. 책방 일이 너무나 재밌고 신나지만 소량 입고한 책마저도 팔리지 않고 재고로 쌓일 때면 내 마음의 짐이 그만큼 늘어난다고. 



이상했다. 꿈과 현실이 늘 끝과 끝에서 대비를 이루는 일이 납득되지 않았다. 초등학생이 바라는 직업 1위가 공무원이라는 기사에 요즘 애들은 꿈이 없다고 걱정을 하면서, 책방을 하려고요 하면 아직도 철이 없다며 현실을 모르냐는 이야기를 하는 게 이상했다. 연극이니 책이니 돈이 안 되는 일을 선택하는 것만이 꿈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공무원 준비를 하려 한다 하면 '너도 결국에는 역시' 하는 눈빛을 보내는 게, 요즘 젊은 애들은 도전정신이 없다고 하는 게 이상했다. 

책방도 공무원도 용기이고 도전이며 꿈이자 현실임을 겨우 깨달았다. 4학년 2학기, 뭘 해야 할지 몰라 한 달간 함께했던 취업 스터디에서 조건에 맞춰 모든 회사에 지원서류를 넣던 이들이 떠올랐다. 그런 이들을 꿈이 없는 건가 생각했던 나의 재수 없음이 떠올랐다. 꿈이니 열정이니 하는 분야를 누가 정하는 거지? 나는 당시 왜 그런 이분법적인 생각을 했던 거지? 누가 나에게 그런 생각을 가르쳤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했고,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당연한 사실을 꿈이라는 정답지가 있는 듯 붙잡고 마치 그걸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들은 포기해도 되는 것처럼, 책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도 된 듯 모른 채 착각하고 살았다.  어떤 선택지라도 꿈과 현실은 늘 함께였다. 


 욕심쟁이처럼 하고 싶은 일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 강남에 빌딩을 사는 그런 부자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끔 보고 싶었던 공연을 보고, 읽고 싶었던 책을 사면서 그 책을 놓을 공간이 충분한 나의 공간이 있는 그만큼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책방은 마흔이 넘어가는 그쯤, 내면이 좀 단단해지고 세상을 다양한 시야로 볼 수 있는  내공을 쌓고 다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졸업하고 벌써 몇 해가 훌쩍 지났고, 취업은 더 이상 미루면 내가 가질 수 있는 자리는 없을 것 같았다. 27살 나는 다시 취업 준비생이 되었다. 그나마 빠른 년생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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