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라나다의 꽃보다 쉰!

#그라나다의 밤 #알람브라 궁전

by 달의 노래

그라나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남자도 여자도 다 지친 상태였다.


무수한 세월을 이기고 있는 촘촘한 돌길 위로 수 백 년 전에 마차가 지나가고, 말이 지나가고, 수레가 지나갔던 그 길에, 바퀴 달린 짐가방을 끌고 900미터의 언덕길을 간다.
구글맵의 힘으로 헤매지 않고 잘 찾아왔으나 쉰의 남녀는 뜨거운 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B&B 주인장과 생각보다 좁은 방에 실망도 잠시, 벽과 문과 문고리에 깃든 고풍스러움에 경의를 표하게 되고, 옥상 테라스에서 보이는 알람브라 궁전과 하늘 위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에 긴 탄성이 새어 나온다.
아, 저 많은 별들을 본 적이 언제던가 말이다..

그래, 힘들어도 여기까지 오길 잘했어..

짐을 풀고 그라나다 알바이신 지구의 골목길을 걷는다. 이슬람 문화인 물담배, 플라멩코 음악이 좁은 골목을 뿌옇게 채우는 느낌이다. 가죽 수공예품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올 법한 항아리 바지, 화려한 색상의 스카프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골목에 들어와 있다.

11시 넘어 숙소에 돌아와 옥상 테라스에 다시 올라갔다.
남자와 여자는 알람브라 궁전을 바라보며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잠시 젖는다.



알람브라의 추억


알람브라 오후 세 시간 코스 투어를 했다.
4만 평의 궁전을 세 시간 동안 설명을 들어가며 한낮의 뜨거운 그라나다 태양 속에 걷는 것은 진짜 힘들었다.
이슬람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알람브라, 이사벨 여왕이 알람브라의 아름다움을 알았기에 궁전 밖을 봉쇄해서 물과 식량의 보급을 차단하여 무혈 항복을 받아낸 곳이다.

나도 지치고 지쳐서 항복하고 나가고 싶었다.
내게도 알람브라의 군사들처럼 물이 중요했다.
한 모금씩 잘라(?) 마시며 송사마의 입으로 들어가는 물도 내심 아까웠다.
49 마누라는 뒤쳐지는데 50 남자는 가이드 옆에 바짝 붙어 걸었다.
모름지기 가이드는 네댓 발 앞서 나가야 하는데 남자는 눈치도 없이 나란히 걸으며 자꾸 질문을 해댄다.

여자는 남자가 창피하다.

아, 정신교육 들어갈 타이밍이구나..
잠시 남자를 구석으로 불러 세운다.


자기! 가이드 옆에 바짝 좀 붙어가지마.
다른 사람들은 일행이랑 같이 걷는데 뭐가 급해서 가이드 옆에서 걷는 거야!
가이드는 말 많이 하는 직업이라 개인적으로 말 시키는 거 싫어할 거라고.
눈치는 어쨌뿠노?


세 시간 동안의 투어였지만 몸에서 뿜을 사흘의 수분을 다 배출한 것 같다.

남자까지 관리하느라 여자는 더 피로하다.

알람브라의 주인은 나자리 왕조였다.

왕이 4명의 여왕과 500명의 후궁과 살며 산책했던 정원을 쉰 부부가 함께 걸으며 일부일처가 왜 하필 너이고 나인가 생각하니 뭐, 답이 있나..
인생은 사다리 타기 아닌가.

고르고 찍었으면 끝이다.

투박한 알람브라의 외관과 화려하고 신비로운 내부..
이슬람 건축물은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평하지 말지니.
뭐, 여자도 남자도 그러하다..




"언니! 안달루시아 지역에 유일한 한식당이 그라나다에 있대요."


카톡으로 전해받은 복음!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던 동생이자 동료이자 친구의 소식에 쉰 부부 후다닥 튀어 나간다.

구글맵으로 검색하니 도보로 25분 거리다.

25분도 지체하기 싫어 택시를 탄다.


오, 김치찌개여!

오, 돌솥비빔밥이여!

오, 순두부찌개여!


고추장 양념 듬뿍 넣어 은혜롭게 잡솼다.

정순아, 고마워!


그라나다의 두 밤은 그렇게 지나고, 정든 로사 꼬마레스 B&B를 떠날 시간이다.

꼬마레스 아자씨와 손발로 의사소통해도 하나 불편한 것이 없었다.

집은 얼마나 예쁘고 아담한지.

마당의 포도 덩굴이 2층까지 이어져 청포도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하얀 담장은 액자요, 갤러리다.


'아자씨, 우리 버스 터미널까지 택시 타야 해요. 가방 끌고 못 걸어요.

올 때 죽을 뻔했어요.'


'오, 탁시? 그래. 불러줄게. 뗀 오끌락?'


열 시에 아랫 골목에 택시가 올 거란다.

지금 나가면 더우니 택시 오면 나가라는 꼬마레스 아자씨..

택시 타러 나가는 우리를 끝까지 보고 손 흔드네.

무챠스 그라시아스, 쎄뇨르 꼬마레스!


꽃보다 쉰 부부는 ALSA 버스를 타고 말라가로 간다..



keyword